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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애서가 집안에는 책장에 꽂힌 책의 순서를 함부로 바꾸지 말라는 철칙이 있다. 그런데 집안의 어린이 히로시가 어린이답게 철칙을 어긴다. 책 좀 어지럽게 섞어 꽂기로서니 무슨 큰일이 나기야 하겠느냐는 심보인데, 사실은 정말로 큰일이 나는 거였다. 이는 진정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비밀리에 알고 있는 지식으로, 책에도 암수가 있어서 아무렇게나 붙여 놓으면 새로운 내용을 가진 책을 잉태해버린다는 것이다.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책이 서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걸 본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이 있다. 환서라고도 불리우는 이 잉태 작업을 통해 태어난 책들은 기존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즉, 내용까지 부모 책들의 면면이 섞인 괴작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서에도 룰이 있고 법칙이 있지 않겠는가? 이를 둘러싸고 유서깊은 두 애서가 가문의 라이벌 의식이 불타오른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환서라는 설정 자체가 실존하는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게 마련인데, 오다 마사쿠니가 보여주는 책들은 그야말로 기서라고 부를 만한 신기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 중에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러한 레퍼런스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세계관이 환서를 통해 서로 뒤섞이고 또 이 환서들이 등장인물들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면서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는 현실과 책 속 세계를 뒤섞은 환상적인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인물들이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식의 흔한 설정이 아니다. 어떤 책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유라고 보는 쪽이 좋겠다. 게다가 로맨스까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모리미 토미히코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즐겁고 빙글빙글 돌고 때로 슬프며 사랑이 있고 다 아름답다. 게다가 이렇게 엉뚱하고 환상적이면서도 어쩐지 '같은 독서인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 진짜 재미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