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명랑한, 풍기문란한 아파트"
장면 1. 알라딘 본사가 위치한 서울시 충정로 인근에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대로변에 외따로 선 아파트 정문 앞엔 '촬영 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화가 김환기가 살기도 했다는 '한반도 최초의 아파트' 충정아파트. 1930년대에는 건축주의 이름을 따 '도요타아파트'라고 불렸다. (168쪽)
장면 2. 영화 <화양연화>의 한 장면. 1960년대 홍콩의 좁은 아파트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아내들은 방에 모여 마작을 한다.
대단지, 아름다운 정원, 쾌적한 커뮤니티 시설로 무장한, 우리가 간절히 욕망하는 21세기의 아파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1930년대 경성의 아파트는 어떤 곳이었으며, 그곳엔 누가 살았을까. '명랑 시대'에 걸맞지 않은 '풍기문란'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던, 여관 혹은 호텔과 유사하게 기능하던, 아파트. 전화번호부부터 대경성사진첩과 지도 등,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성의 아파트와 그곳의 삶의 이야기를 복원한다.
<박철수의 거주박물지> 등의 작품으로 거주문화사를 연구해온 저자 박철수와 연구자 권이철, 황세원, 자유기고가 오오세 루미코가 경성의 아파트 생활을 다방면에서 살폈다. 아파트 공간을 사용해 영업하던 당구장에서 근무하며 '낮은 임금의 장기간 감정노동'(335쪽)을 감당했을 당구장 여성 노동자 '빌리어드 걸'의 삶은 2021년 서울의 독립 생계 여성 노동자의 삶과 그리 멀지 않을듯하다. 건축 전문 출판사 '집'의 멋이 느껴지는 한 권의 책으로 한 시대의 삶을 톺아본다.
- 예술 MD 김효선 (202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