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가 쓴 비평서이자 에세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의 남성의 심리와 여성이 처한 현실의 문제, 여성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더 나아가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진정한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그로 인한 분노를 갖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분노가 현상주의적 투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근본적인 현실 변혁의 지혜를 독자 스스로 얻을 수 있게 하는, 울프 특유의 서술 구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페미니즘 비평서들이 여성의 평등과 해방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목소리로 호소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때문에 몇몇 리얼리즘적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울프의 작품들이 갖는 이러한 다중적 관점과 다층적 구조의 형식이 바로 그녀의 문학관에 이어지고 있음을 이해할 때 울프의 페미니즘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문학 여정이 여성해방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여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다소 난해한 구성이라든가 필자의 뚜렷한 목소리로 독자를 설득하는 방식을 피하려는 태도는 기존의 남성적 글쓰기를 벗어나 울프 자신의 글쓰기, 페미니스트적 글쓰기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소설 형식을 시도하고 완성한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 문화,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울프는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자유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04년 『가디언』지에 익명으로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디딘 그녀는 곧이어 사회 전반에도 관심을 보여 1910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에 자원하기도 했다. 1917년에는 남편 레너드와 함께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T. S. 엘리엇, 캐서린 맨스필드, 지크문트 프로이트 등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저자의 도서를 펴냈다. 1935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유럽의 파시즘과 영국 내 군국주의에 의한 가부장제를 보고, 반전·반제·반파시즘적인 페미니스트 시각과 통찰을 담아내기 위해 ‘소설-에세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기도 했다.
울프는 평생 조울증, 두통, 환청 등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질병과 싸웠는데 이는 그녀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으나, 동시에 작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해 갔다. 결국 세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1941년 3월 28일, 레너드에게 작별 편지를 남기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으로 『출항』, 『등대로』, 『올랜도』, 『자기만의 방』, 『파도』, 『세월』, 『막간』 등이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1923년 6월의 어느 화창한 하루 런던을 배경으로, 저녁에 열릴 파티를 준비하는 정치가의 아내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치료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가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계급·연령·국적의 인물이 어우러져 다층적인 서사를 만들어 낸 이 작품은 오늘날 울프의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