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는 내가 있다. 정말로 무수히 많은 내가 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열망과 좌절, 분노와 기대를 감당하며 누군가와 마주서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읽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선물하는 것이다. 따라서 책 선물의 대상은 아무래도 책이 좋아 죽는 애서가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이들에게 줄 선물로 서평계의 메시, 이수은의 따끈한 신작 <평균의 마음>이 딱이다. 이 책을 읽으면 새로 읽거나 다시 읽어야할 책이 수십 권으로 불어난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애서가 종족은 읽을 책이 폭증하는 현상을 매우 기뻐한다. 그들에겐 언제나 모든 책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읽으면 좋을까. 선물할 때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머리를 울리는 책? 가슴을 두드리는 책? 그리스 신화와 구약을 가로지르는 앤 카슨의 시는 말하는 여성, 느끼는 여성을 앞세워 경계를 넘나든다.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데 이 책이 징검돌이 되어줄 것이다.
현실의 나는 책을 추천하지도, 선물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글은 쓰지 말아야 하지만, 만약 어떤 불가능한 사건이 일어나서 정말로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게 된다면, 나는 <달걀과 닭> 말고 다른 책은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른 것이 아니라, 이 책에게 선사할 어떤 사람을 고른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지낸 한 해가 또 한번 더 지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매일 지쳤고, 끊임없이 손익을 계산했고, 서로에게 각박했다. 그런 날들이었지만 시집을 사러 오는 손님들을 기다리며 작은 서점에 날마다 불을 밝히는 시인 겸 서점지기의 산문들을 한 편씩 읽는 동안에는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사랑해야 마땅한 것을 사랑하며 사는 일은 얼마나 귀한가.
이 책은 맞는 말만 적어놓아서 놀라고, 정확해서 다시 한 번 놀란다. 시인이 시 이야기를 유려하게 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시에 관한 단단한 자극을 준다. 시인이 되는 일도, 글을 잘 쓰고자 하는 일도 결국은 쌓기보다는 깨고 부수고 하는 일이 중요할 터인데 그 방법을 잘 녹여 풀어놓았다. 매력 시인, 박연준!
시동만 걸면 가는 자동차, 휙 짊어지면 되는 배낭이 얼마나 소중한 발명품인지 체감하게 되는 여행기. 산속에서 GPS도 없이 척척 목적지에 도착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얼마나 비범했던가. 산속에서 별 이불을 덮고 잠들거나 잊힌 종교 분쟁의 유산을 고찰하기 위해 당나귀를 끌고 걷는 대신 책갈피만 넘기면 되는 행운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고 싶다.
연말이 되었지만, 지난 한 해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전히 답답했고, 새해도 희망차지 않다. 그래도 우울해져 있지만은 말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선물하겠다. 유쾌하고 수려한 문장이 독창적 아이디어와 신선한 캐릭터를 만나 정말 즐거운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