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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산책하는 비
신용목

초복 대신 감나무에 매달려 깽깽대는,

매미처럼

너를 만나면서 너로부터 잊혀질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허함을 느끼면


머리 위로 잠을 설친 구름들이 걷고 있어


공원에나 가볼까,

할아버지 파자마 입고 나와 등을 치는 아침 일찍

정발공원에

공중걷기 발판 위를 거기 전봇대 신축빌라 실입주금 이천오백 현수막을


구름은 내 머리를 징검다리로 밟는다

공허하니까,


나는 꼭 두개씩 매단 그네 오른쪽에 앉아 있는데,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빤히 쳐다본다

사는 게 귀찮다는 듯 툴툴 손수건을 부치는 할머니를 보증인처럼 세워두고,

이럴 때 나는 그네에서 내려 아이에게 자 타보렴, 웃는 착한 아저씨가 되어야 하는 걸까


매미는 울고, 왼쪽에도 그네는 있는데


아침부터 마음을 앞뒤로 밀며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를 만나는 일처럼

할머니는 손수건을 펴 아무것도 없는 입가를 훔치는데

자꾸 뭔가 묻은 것 같겠지, 뜨지도 않은 밥풀이 마시지도 않은 국물이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괜히 변명부터 해야 하는 억울함을 미리부터 감추면서


그리고 저기, 아이가 보자마자 신나서 달려가는

산책 나온 개에게


나는 속으로 짖어봐 짖어봐,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두 눈을 부릅떠 보이다가,

잠깐 잊었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다시 속으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문득 치욕으로부터 잊혀지지 않을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면


톡톡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죽었나 살았나


조금씩 비가 듣는데, 이제 제가 운 울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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