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숭고미에 대해 생각한다
우산을 쓰는 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
비에 젖기는 원숭이도 마찬가지다
숭고미는 흠뻑 젖기에서 나온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비가 되어버리는 것
젖는 게 아니라 젖어 있는 그 자체가 되는 것
음악을 들으며 음악이 되는 것
이때 귀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흐느끼면서 흐느낌 자체가 되는 것
우산을 쓰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비에 젖는 것
우산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우산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기법이 숭고미다
사랑은 존재를 적시는 빗줄기
이미 젖어버린 숭고미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