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 고개를 넘어갔지요 서쪽 하늘에선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나는 세검정洗劍亭에 도착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지요 내가 도착해야 하는 곳은 해가 뜨는 곳이고 당신이 도착해야 하는 곳은 해가 지는 곳 해가 뜨는 곳과 해가 지는 곳 사이에 세상의 모든 아침과 저녁이 있지요 사랑은 그렇게 모든 것이죠 그녀가 맨발로 다다르고 싶어 했던 천상의 시간일지도 모르고 그가 가지 않았으나 꿰뚫어 본 0시의 어둠일지도 모르는 채 그것은 그렇게 그냥 이미 내게 도착했거나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아프지 말아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녔어라고 말해주기에 나는 당신 때문에 아픈 걸 테지요 이제 마음을 도려낸 칼을 씻고 그렇게 그냥 세검정처럼 시간을 잃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