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 출판사 편집자들이 직접 고른 올해의 책입니다.
지난 1년 간 출간된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1권 골라 추천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자사 책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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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 다산북스 / 돌베개 / 동아시아 / 마음산책 / 문학과지성사 / 문학동네 / 민음사 / 반비 / 비룡소 / 사계절 / 사회평론 / 시공사 / 아이세움 / 애니북스 / 양철북 / 열린책들 / 웅진주니어 / 위즈덤하우스 / 은행나무 / 을유문화사 / 창비 / 한겨레 / 한빛비즈 / 해냄 / 휴머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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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올리버 색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저자의 등장. 앞서의 ‘글 잘 쓰는 과학자’와 달리 여성 과학자로서 부딪쳐야 했던 편견과 불공정의 높은 벽에서 좌절하고 실패한 체험이 담담하고도 진솔하게 그려진다. 그럼에도 저자 특유의 유머와 유쾌함에 웃게 된다. 과학의 미덕인 전문성, 객관성, 합리성을 압도하는 인간과 삶에 대한 감수성과 통찰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을 결국 더 좋은 삶을 연구하는 철학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은 들여다볼 수 없었던 연구실 안에서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저자 호프 자런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싹을 틔운 식물은 헤매지 않는다. 싹을 틔우기까지가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황이다. 그다음부터는 시들어 꺾이는 순간까지 꾸준히 나아가는 일뿐이다.” 과학자가 쓴 책은 차갑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책. 모든 생명의 존재 이유를 알게 하는 인생 책. 힘내라, 랩걸.
- 김영사 편집주간 김윤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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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힘은 강하다. 객관적 수치나 체계적인 분석은 상황을 보여주는 데 그칠 뿐이지만, 이야기는 그 이면에 담긴 진실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힐빌리의 노래>는 ‘러스트벨트 지역의 가난한 백인들은 왜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민주당을 거부하고 재벌 출신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이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트럼프 시대의 분노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텍스트다.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J. D. 밴스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절망이 일상으로 바뀔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폭력이 얼마나 효과적인 자기방어 수단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 구렁텅이 속에서도 삶에 희망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전한 흙수저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다산북스 편집자 이호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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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2017년 일산에서 살고 있는 현역 소설가 황석영이 자신의 20세기 생애를 거꾸로 회상한다. 무수하고 어마하여 아득한 고유 지명과 인명, 사건과 기억이 대하처럼 흘러넘친다. 마치 구글어스를 보는 듯, 한 좌표에서 출발해 세계의 안과 밖을 종횡으로 긋는 작가의 궤적이 어찔하다. 이 긴 여행의 도중에 겪는 방황과 고뇌, 자기 연민과 발산, 인연과 길항, 결단과 변호가 황석영 문체의 호르몬이 되었을 것이다. 책의 표지에 자서전 혹은 회고록이라 하지 않고 자전(自傳)이라 적었는데, 세계사와 엮이는 크고 작은 역사의 계기들과 그에 직간접으로 접속한 사람들의 복잡한 이야기가 공전하는 서사가 감동적이다. 출판사와 서점은 이 큰 이야기를 소설이라 않고 에세이로 분류했는데, 2권을 덮으며 황석영이 앞으로 써낼 만년의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은’ 이 산문보다 더 흥미롭기를 기대하였다.
- 돌베개 편집주간 김수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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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대가리. 멍청한 사람을 타박할 때 쓰는 말이다. 3초만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표정도 감정도 없는 동물. 이 정도가 우리가 물고기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이미지다. 멍청하고 하등하지만 회로 먹으면 맛있는 별미 정도.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사실 물고기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물고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고, 풍부한 감정을 지녔으며, 무리를 지어 사회생활도 하는 문화적인 동물이다. 이 책은 물고기가 가진 다양한 재능과 매력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물고기를 더 윤리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물고기도 통증을 느끼고 만만치 않은 지적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행한 환경 파괴의 결과로 고통 받는 것도 이들이다. 우리는 물고기를 잘 몰랐기 때문에 물고기에 대해 무관심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것이다.
올해에는 물고기, 문어, 미생물 등 그동안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친구들을 다룬 책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런 책들이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한 셈이다.
- 동아시아 편집자 하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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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에서 가까스로 가난을 탈출한 사람이 황량했던 시절을 그린 회상기다. 책을 읽으며 모든 간접경험은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는데, 막막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에 먹먹해하거나 따뜻해질 수 있는 게 다 나는 저렇지 않다는 안도감이 깔렸기 때문이라고 느껴서다. 흔히들 정도의 차이를 들며 타인의 가난을, 아니 가난이든 감정이든 무엇이라도, 이해하기 쉬운 것 내지 위로하기 쉬운 것으로 치환할 때가 있지만 어떤 가난 앞에서는 슬픔도 위로도, 그 어떤 감정적인 것도 사치품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이제 그런 사치쯤 누려도 될 만큼 생존의 위협에서 멀어졌으나 끝까지 담담한 어조를 잃지 않는데, 아마 그 자리에 남겨두고 온 힐빌리들의 자존심 그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려는 최선의 예의가 아닐까. 새벽에 깬 저자가 안락한 환경을 확인하며 다시 잠드는 걸로 책은 끝난다. 정말 해피엔딩일까? 노력이 아니라 우연의 결과로 안락해진 사람의 트라우마와 아슬아슬함이 좋은 문학작품처럼 강렬하다.
- 마음산책 편집1팀장 이승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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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매번 이즈음에는 시간의 유속에 놀란다. 어쩜 세월은 이리도 빠르게 흐를까,라고 혼잣말처럼 묻게 되니까. 어제가 오늘 같으니 내일도 오늘 같겠지, 하게 된다. 문득 일 년이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고 여지껏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나, 인생 뭘까,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은 사뭇 다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그 미세한 차이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 하지만 그 미세한 차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일 것이다. 정영수 작가는 늘 그것에 관심이 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쓰고, 다 쓰고 나서야 아 이런 걸 쓰고 싶었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정영수 작가의 소설은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우리는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살고, 결국에는 다 살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될 테니까. <애호가들> 을 읽는 내내 오늘과 내일이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팀 편집자 박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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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에 들어서니 크게 아프거나 그러다 세상을 떠난 존재들이 하나둘 생긴다. 아, 이제는 자잘한 고민들이 사라진 대신 이렇게 온 삶을 지배할 슬픔과 고통이 찾아오는구나, 싶은 날이 많아진다. 죽음과 질병에 관한 책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다. 이해할 수 없는 그 세계를 책으로나마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아픈 몸을 살다>는 심장마비와 암을 겪은 사회학 교수의 질병과 돌봄의 탐사 에세이이다. 질병을 맞서 싸워야 할 일로 보지 않고, 나를 ‘돕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무언가가 바뀌어야 한다고 내 몸이 집요하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는 대목이 놀라웠다. 더불어 곁에서 돌보는 이에 대한 고찰도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생로병사’에서 ‘생’을 빼면 남는 건 ‘로병사’인 것이 인생임을 우리는 애써 외면한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 모두 가졌지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잘 쓰인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볼 뿐. 질병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일임을 절절히 배우며.
- 문학동네 국내문학3팀 팀장 강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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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보다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2017년이었다. 손보미의 신작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아니 그중 맨 앞에 놓고 싶은 작품이다. 서울 강남과 뉴욕의 센트럴파크, 1990년대 한국 고등학교의 교실과 전후 미국의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거짓말인 듯 참말인 듯 능청스레 문장을 짓는 작가의 필력에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을 낸다. 소설 초반, 종잡을 수 없이 흩어진 채 존재감을 발하던, 이른바 떡밥들은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극적인 방식으로 조우한다. 그 만남을 두고 Dear, 라고 할 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감격 같은 것. 이런 맛에 소설을 읽는구나 싶다. 이런 것이 새로운 한국 소설이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다. 한국 소설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 있든, 환희에 빛나든, 그 어떤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있든 상관없이, 이야기는 생겨난다. 손보미 같은 작가들에 의해서. 그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 민음사 편집부 문학2팀장 서효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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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독자로서는 돈을 많이 썼고, 업자로서는 (그런 책들과 경쟁하기 위해) 힘을 많이 써야 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기쁘다. 그 많은 책들 중에, 인문사회 분야의 책들 중에, 국내물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책은 단연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재소자, 결혼이주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경험과 건강 상태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고려대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의 첫 책이다. 이 책은 김승섭 교수의 연구자적 관심, 사회적 관심의 경로를 소개하면서,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건강’과 ‘질병’ 그리고 ‘아픔’에 대해 근본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저자의 연구와, 저자의 문장, 책의 내용, 책의 모양이 너무나 통일되어 있어서 구입해서 읽기까지 사실 조금 부담이 있었다. 그런 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할 듯한 부담이었다. 좋은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준비하게 만드는 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책이 아닐까. 이 책이 보여주는 저자의 문장, 저자의 말, 또 이 책이 예측하게 만드는 저자의 삶을 독자로서 여러 번 더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 삶을 응원한다.
- 반비 편집장 김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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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그림책은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예술 장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림책이다. 아주 근사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소재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지점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또 위로를 주는 매개체로 그림책만 한 것이 있을까.<나는 봉지>는 노란 비닐봉지가 주인공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비닐봉지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세상을 떠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인사도 건네면서, 잔잔한 풍경이 펼쳐진다. 크게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얘기를 봉지 속에 가득 담아 어떤 누군가를 위로해 주며 이야기는 흐른다. 마치 비닐봉지가 아닌 ‘비밀봉지’처럼. 물도 새지 않고, 웬만한 것들은 쑥쑥 품을 수 있는 비닐봉지로, 따듯하고 정겨운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시선이 새롭다.노란 민들레처럼 예뻐야지만, 눈에 띄는 게 아니라, 노란 비닐봉지도, 우리에겐 꽃처럼 예쁘고 정겨울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한 그림책이다.
- 비룡소 편집장 박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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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 치마만다 아디치에가 들려주는 열다섯 가지 제안을 적극 실천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이의 성별에 상관없이 더더욱 그 제안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질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더욱 평등하고 평화롭고 정의롭고 정직해질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 가득하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깊다. 쉬운 제안들이지만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을 발견하고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은 나 같은 편집자에게도 굉장히 쓸모가 있다.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면 원고를 들여다볼 때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거라 확신한다. 이 책의 제안들은 우리 모두를 기꺼이 페미니스트가 되게 한다.
- 사계절 편집장 김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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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독자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역사 저술가들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 우리 역사를 허황되게 포장하여 선전한다. 이들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틀에 갇혀 있고, 우리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 왜곡하고 있다고 매도하며 대중을 선동한다. 이들의 선동은 어느 정도 먹혀들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반영되기도 하고, 심지어 국가 예산이 투입된 역사 연구 프로젝트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이에 강단의 젊은 역사학자들이 반격에 나섰다. 젊은 역사학자들은 그동안 재야사학, 유사 역사학이라 불리던 선동 집단들을 ‘사이비역사학’으로 규정하며, 사이비역사학이 보여주고 있는 사실 관계의 오류, 논리적 모순, 불순한 배경 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쉽지 않은 싸움이지만,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역사학자들이 노력이 와닿는다. 진실에 대한 싸움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 사회평론 한국사팀 팀장 정상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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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책을 모으지는 않는다. 몇 년 전, 더는 책에 짓눌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책장의 두 칸만 남기고 싹 정리해버렸다. 따라서 이후에 구매한 책들은 독서가 끝난 뒤 책장에 꽂힐 것인가 헌책방으로 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놓이곤 했는데 <라틴어 수업>은 현재 내 책장 중 가장 꺼내기 쉬운 곳에 꽂혀 있다.
“Oh captain, my captain.”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의 의미를 알 것이다. <라틴어 수업>의 한동일 저자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 키팅 선생처럼 라틴어 수업을 통해(키팅 선생은 국어 담당이었지만)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유치한 호기심마저 ‘위대한 호기심’이라 불러주는 참 스승.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다 쉬 초라해지고 마는 나는 오늘도 참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 최고)’라 여기며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 시공사 편집자 김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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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반인격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 얘기가 쉬지 않고 들린다. 심지어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각박하기만 한 오늘날뿐 아니라, 앞으로 어찌 변할지 모르는 미래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감 능력' 아닐까 싶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출간했다. 더욱이 아이들의 소소한 생활 밀착형 예시로 똘똘 뭉쳐 있는 데에다가, 구체적인 상황으로 공감 감정을 이해하고, 실전처럼 연습해 보고, 실제 있었던 사례를 통해 공감의 힘을 느껴 보는 단계별 접근이 어떤 책보다 체계적이다. 특히 운동장 바닥에 엄마를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아이 장면은 눈물이 핑 돈다! 부디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 씨가 널리 퍼져나가기를!
- 아이세움 아동콘텐츠개발팀장 김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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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화 수준을 보고 실망했다면 그거야말로 선입견이다. 프로 만화가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신선함이 매력적인 책.본문에 등장하는 현대 과학사에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도 시작은 아마추어였으나 그 결과는 창대했다. 왠지 그런 결과를 예측하게 되는 책이다. 게다가 제목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야밤에 공대생들은 연구만 하는 줄 알았더니 문과계 정복을 위해 이런 작업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게다가 내용을 읽고 있으면 “이거(과학) 제법 재밌잖아” 라는 탄식이 절로 새어나와 매우 위험하다. 왜 위험하냐면, 공대생이 그렸기 때문이다. 출판만화 분야까지 이과 출신이 점령하면 문과 출신은 뭐 먹고 사냐고요. 문과의 것은 문과에게, 이과의 것은 이과에게.
- 애니북스 편집장 천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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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물면 가렵다. 강아지가 핥으면 간지럽다. 구수한 빵 냄새 맡으면 먹고 싶다.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더러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는 것, 감정을 느낀다는 것… 태어난다는 건 몹시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 지구에 오기는 왔다. 와서 많은 사람들이 부유하는 존재가 된다. 그저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이 책은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마침내 ‘태어난 아이’가 되어 삶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다. 왜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지, 저마다의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기로 마음먹었다면, 진짜 삶을 살아 보기로 했다면, 그 이유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부유하는 우리를 이 세상에 단단히 붙들어매 주는 것,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상처받게 하는 그 모든 관계, 상관 있는 것들 때문인지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이 모든 것들, 그 자체가 살아가는 것인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많은 청소년들과 어른들에게 권한다.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아이의 무심한 표정이, 눈을 번쩍 뜨며 태어나기로 마음먹는 순간이 가만히 우리를 다독인다.
- 양철북 편집자 김명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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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것은 나에게도 의외다. 딱히 인문서라고 하기도 그렇고, 뭔가 거창한 게 있지도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책은 그냥 사는 이야기다. 가족 얘기, 친구 얘기, 그리고 놀러 다닌 이야기다. 다들 한 꾸러미씩 갖고 있는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여기에 삶의 철학을 담았다. 거창한 것은 전혀 없다. 그냥 <나는 이렇게 살아서 즐겁다>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이렇게>가 <힘 빼기>인 셈이다.
<힘 빼기>는 대세처럼 보인다.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고, 인생을 즐기는 것 말이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물론 저자도 안다. 그는 자신을 무슨 <힘 빼기> 달인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충실한 수행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도 마음만 먹는다면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카피라이터답게 저자의 글은 군더더기 없고 단단하다. 쓸데 업이 배배꼬인 문장으로 신경 쓰이게 하지 않는다. 좋은 글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저절로 힘을 빼게 된다.
이 편안한 글을 위해, 저자는 얼마나 자주 뭉친 어깨를 풀어야 했을까. 그 노고에 세삼 감사를 전하고 싶다.
- 열린책들 인문팀 김태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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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하나, 오직 나뿐이라는 전제가 깨지는 순간부터 <복제인간 윤봉구>가 우리의 일상에 주는 울림은 엄청나다. 동네 어디서 마주칠 법한 현실 캐릭터 윤봉구의 엉뚱 발랄 이면에는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윤봉구 자신의 내적 혼란, 자신의 건강 때문에 동생을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형 윤민구, 천재 과학자로서 한때의 판단으로 복제인간 실험이라는 엄청난 도전을 감행한 엄마 등 이들 각자의 고뇌와 관계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맛깔나게 버무려져 자연스럽게 '나라면?'을 떠올리게 한다. 일상의 유머에서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까지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복제인간의 진정성, 인간복제 찬반, 인간복제 시도에 대한 윤리성 등 꽤 가볍지 않은 이슈들을 길어올려 고민해 볼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 웅진주니어 편집자 안경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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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일상이 무너지고 국경이 사라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도리는 세상을 향해 꾸역꾸역 발을 딛는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하나뿐인 동생 미소를 지키는 일이 도리의 생에 주어진 유일한 임무가 되어버렸다. "죽지 않고 살아서, 살아남아서 이곳까지 와서 또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도리는 우연히 지나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모든 희망이 무너진 곳에서도 누군가를 믿고 싶고 또 믿고야 마는 사랑이 솟는다. 최진영 작가는 세상을 멸망시키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소멸한 뒤에도 유령처럼 떠돌게 될 사랑의 말을 나누는 존재라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독자에게 강렬하게 던진다.
끝까지 다 읽고 난 뒤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소설 속 배경은 특별한 재난도 낯선 광경도 아닌 지금 여기, 였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남는다“. 전작 <구의 증명>이 둘로 나뉜 나와 너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은 완전한 사랑을 그렸다면, <해가 지는 곳으로>는 각각 고유한 존재인 두 사람이 맞잡은 사랑의 의지가 보인다. 흔하고 뻔한 소재의 ‘사랑’ 이야기라지만 최진영 작가가 작정하고 쓴 사랑 이야기, 라니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이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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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된 역사책 중 드물게 모든 언론이 찬사를 보낸 화제의 책이다. 국내 역사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를 다루어 학술적 가치가 뚜렷하면서도 그 어떤 역사책보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책! 그 비결은 ‘인간’을 통해 역사를 보려한 저자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사료더미에서 일상적이고 익숙하고 어쩌면 자질구레하게 느껴지는 소재를 골라내 근현대 사회경제사를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재구성한 솜씨는 탁월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린 주목해야 할 서양사학자 한 명을 뇌리에 깊이 새기게 된 듯하다. 집안 곳곳에 쌓여가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면, 매일 같이 쇼핑몰을 찾아 하염없이 신용카드를 긁고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소비에 담긴 욕망과 유혹, 연대와 해방의 역사를 읽다보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소비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을 진정한 ‘호모 콘수무스’로 만들어 줄 이 책, 그야말로 ‘그뤠잇’하다!
- 은행나무 편집자 이경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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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병을 모두 치료해 주는 기계가 발명되면 과연 그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을까? 1%의 선택받은 자들만 사는 도시에만 그런 치료 기계가 있어, 불구인 딸을 필사적으로 그 도시로 보내려던 ‘버려진’ 사람이 등장한 영화 <엘리시움>이 생각난다.
미래엔 ‘쓸모없는 계급’의 인권이나 행복도 보장될까? 만약 (고맙게도) 보장된다 해도 아들러가 말한 ‘공헌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 인간이 과연 행복할까? 양극화가 훨씬 더 심해진 미래에는 어떻게 국민 복지를 유지시킬까?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을 미래에서도 여전히, 아니 끔찍할 정도로 절절히 느낄 것만 같아 오래 사는 게 축복이 아니라는 지금의 생각을 더 굳게 한다.
<대량살상 수학무기>가 다룬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의 그늘까지 보니 미래가 기다려지거나 반갑지가 않다. 그래도 하라리가 여러 분야의 학문을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해 줘서(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지만) 생각할 시간을 갖게 했기에 한 표.
- 을유문화사 편집장 김경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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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는 낯설 수 있는 사회역학 분야의 연구와 활동을 꾸준하게 해온 젊은 학자의 역작. 사실 연재 당시부터 눈여겨보며 눈독을 들였던 원고라서, 편집자로서도 독자로서도 반가운 책이었다. 자칫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질 수 있는 질병과 건강의 문제를 사회적 장으로 끌어와 탁월하고 설득력 있는 논증의 과정을 거쳐 풀어내는 글 솜씨도 대단해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이 책이 널리 읽혀, 특히 사회적 약자의 건강과 보건에 주목하고 부지런하게 활동해온 김승섭 선생에게 큰 응원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나의 아픔이 결코 나만의 아픔이 아니며, 내 탓만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공유하고, 공동체의 건강과 보건에 모두가 관심을 갖는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는, 모두에게 있으니.
- 창비 교양출판부장 황혜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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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어느 날 급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게 된 한 청년의 장기기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품격 있는 만듦새에 감탄했고, 다음으로는 번역과 편집의 성실함에, 마지막으로 소설의 독특한 문체와 주제의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적인 율동감과 풍부한 비유가 가득한 문장은 쿵쿵 울리는 심장박동처럼 수많은 쉼표들이 덧대어져 읊조리는 듯 한달음에 이어진다. 특히 문장구조와 어순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어와 대척점에 서 있는 한국어 번역자에게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예기치 못한 순간, 가장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하루라는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질문과 갈등 들이 삶과 죽음, 윤리와 생명을 둘러싼 진중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오랜만에 묵직한 소설의 힘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며 번역과 편집,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한 한 권이다.
- 한겨레출판 문학편집장 임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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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했던 책.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국부론>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에는 여성이 빠져 있다.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은 모두 남성이고, 그에게 밥을 만들어 주고, 아이를 키워주고, 밭일을 해서 남성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해준 여성은 이 경제 구조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가 범한 오류는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비경제적 존재로 남아 있게 하였다.
이 책은 사회, 경제, 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하려면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를 경제학에 포함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새삼스럽게 내 어머니의 노동과 나의 노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상의 절반을 여성의 것으로 되돌리는 아주 작은 걸음을 시작하게 해주는 책이다.
- 한빛비즈 기획1팀장 유소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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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교수를 알게 된 건 페이스북에 공유된 그의 글을 통해서였다. 참 단단했다. ‘성소수자 건강’ 연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편견에 둘러싸인 이들에 대한 연구라니, 진짜 대학교수 맞나? 하는 호기심에 솔직히 가장 먼저 그의 학력란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점차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무척 궁금해졌다. 치밀한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시각, 그러면서도 견지하고 있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듯한 시선. 최근 몇 년간 심히 비틀린 세상을 관통하며 목말라했던 전문가, 지식인의 모습을 김승섭 교수를 통해 재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가 혹독했던 현장과 연구 데이터를 치밀하게 직조하며 써내려간 생생한 보고서와 같다.
혐오, 차별, 폭력, 상처란 단어들이 일상화되어버린 세상에서 국가가, 사회가, 집단이 한 개인의 몸과 건강에 얼마나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지,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눈 뜨고 있는 시점이다. 사회적 맥락을 배제한 질병이란 과연 존재할까. 그렇기에 이 책은 대한민국이란 맥락에 놓여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읽고 토론해야 할 책이다. - 해냄 편집장 이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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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서상을 시작으로 퓰리처상, 앤드루카네기메달 등 영미권 소설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는 다 누리며 큰 화제를 낳았던 소설이다. 19세기 노예 탈출 비밀 조직 ‘지하철도’를 실제 지하철도로 상상해, 한 노예 소녀의 탈출기를 그렸다. 최근 고조되는 인종 간 출동이나 트럼프 정권 아래 미국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인종 차별에 관한 소설들이 전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많은 책들 중에 왜 이 책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는지, 그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아서클라크상 수상을 가능케 한 판타지적 요소도 그렇거니와 짧고 수식을 배제한 작가의 문장 스타일, 끊임없이 배치된 반전들까지. 이렇게 재밌다면 ‘나도 너’를 외칠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황서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