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나
용감하게 걸었다는 기억을 갖고 싶어
작년에 꽃구경을 한 벚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기다릴게
만날 수 없는 사람
미친 봄날 생각 中
『나의 모험 만화』 수록
1991년 출생. 2022년 『문화일보』 등단. 시집 『나의 모험 만화』.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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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옥 시인
대표작: 온,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김보나의 화자들은 피하지 않는다. 피하지 않아서 만나게 된 것과 마음에 담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모욕과 조롱도, 슬픔과 고통도 달콤한 사탕처럼 입안에 굴릴 수 있는 것이 된다. 알사탕 같기도 하고, 팝핑 캔디 같기도 하다. 둥글게 입안 가득 퍼지는 맛. 그 각양각색의 맛을 언어로 보여준다.
김보나의 화자들은 유쾌한 용감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시간을 통과하며 얻게 된 것 같다. 다만 “용감하게 걸었다는 기억을 갖고 싶어”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사람이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그래서 김보나의 시를 읽고 있으면 내게도 재미있는 용기가 생길 것만 같다. 슬픔을 아는 농담은 트램펄린처럼 우리를 높은 곳으로 튀어 올라 전혀 다른 곳을 볼 수 있게 하니까.
오산하 시인
대표작: 첨벙 다음은 파도
2026년, 새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렇게 써붙여야 할 아침에’ 「망상 하천」이라는 시를 처음 읽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 무엇도 ‘나’를 옭아매지 않는 겨울밤, 추운 강가에 서서 ‘너’에게 새해를 말하고 싶어지는 시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붙잡고 다 풀어내지도 못할 마음을 두 손 가득 쥐고 건네고 싶은 기분. 시인이 말하는 “너희 집 앞에만 눈이 쌓일 만큼 내리게 하고 싶은”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골몰해 보아도 그 속을 전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망상 하천」은 새로운 새해를 그려보게 한다. 외국의 긴 평야를 상상하게 하고, 먼 곳까지 가보고 싶게 한다. 새해는 어지럽고, 새해는 불투명하지만, 그게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든 세차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시인의 첫 시집 『나의 모험 만화』를 읽으며 수많은 새로운 모험의 시작을 떠올려 보는 그 순간, 우리의 새해는 시작될 것이고, 김보나의 시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의 내일에 망개떡 하나를 건네면서.
유계영 시인
대표작: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온갖 것들의 낮 등
명랑한 구도자의 돌멩이
김보나는 이제 막 첫 시집을 펴낸 신인이다. 그러나 그의 언어에는 오랜 시간 시를 통해 삶의 슬픔을 연마해 온 깊은 내력이 느껴진다. 나에게 시인이란 뭐랄까...... 늘 ‘여기’가 아닌 ‘저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멀리 뻗어 높이 날기를 꿈꾸는 사람들, 현실로부터 발이 조금 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김보나의 시는 이 지점에서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날개”를 대신해 “두 팔”을 선택하고, 그 두 팔로 “사람을 안아 보자”고 말하는 명랑한 구도자의 시다. 시인의 새가 아니라 지상의 돌멩이가 되어 소원탑으로 위태롭기를 선택하는 시다. 그의 첫 시집을 완독했을 때, 나의 목전에 “검은 돌” 하나가 딱 소리 나게 놓였다. 이 돌로 말할 것 같으면, 고통스럽고 외로운 사람의 내면에서, 시인 자신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것일 테다. 삶의 슬픔을 오랫동안 응시해 온 사람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돌 하나를 쥐어볼 수 있다. 선수는 넘어갔고, 이제 우리는 어떤 고통도 겪을 수 있다. 김보나의 시가 보여주듯이 고통은 경쾌할 때도 아름다울 때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다울 때도 있기 때문에.
추천작: 「윙스팬」, 「십번기」 (『나의 모험 만화』 수록)
이영은 시인
대표작: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
첫 시집 <나의 모험 만화>에서 “감당하기 힘든 마음처럼 몸이 불어나도/용감하게 걸었다는 기억을 갖고 싶”다 이야기했던 김보나 시인은 수백, 수천 가지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어딘지 귀엽고 어설픈 용사 같다. 무수한 실패도 겪어 보았지만 그랬기에 모두를 지켜 주고 싶어 하는. 자신이 태어난 작은 마을을 아주아주 사랑하는. 그래서 모두를 불행에서 완벽하게 구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삶의 편편마다 부서지는 빛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안겨 주는. 이 용사가 해 주는 나직한 모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는 아주 먼 대륙으로 향해 처음 보는 사람의 생일을 박수 치며 축하해 주고 싶기도 하고, 유명한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어 입에 피크를 문 채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기도 하고, 오랜 시간 나이를 먹어 온 할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털실로 짠 스웨터를 내가 낳은 적 없는 아이에게 입혀 주고 싶기도 하다. 나를 보다 먼 쪽으로 나아가고 싶게 해 주는 언어는 무엇일까.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김보나 시인은 꼭 그런 걸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은규 시인
대표작: 무해한 복숭아, 다정한 호칭 등
모험은 계속 된다
김보나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적 주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상상하고 만들어 낸 시적 주체들에 대해 현실의 나보다 훨씬 용감하다고 설명했다. 세상의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며 더욱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동유럽 광장에서 만난 집시 할머니와의 대화로 시작하는 시 「폴란드식 기념품」에서의 시적 주체는 남은 삶에서 마주치게 될 수 없이 많은 문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알 수 없는 미래는 두렵기도 하지만 시 「다 뜻이 있겠지」에서 화자는 결론을 내린다. 믿는다는 것. 조롱당하며 단단해지는 것도 세상엔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마음에서 비롯된 용기는 특히 사랑의 동력이 된다. 새가 양 날개를 펼쳤을 때, 한쪽 날개 끝부터 반대쪽 날개 끝까지의 폭을 뜻하는 시 「윙스팬」(Wingspan)의 시적 주체는 자신이 사랑의 전문가가 아니면서 한 사람의 손을 잡기도 한 일을 고백한다. 또한 어둠 속을 같이 걷고 싶은 사람에게는 ‘우리 같이 진화하자’라며 사랑을 위해 현실의 모든 조건을 가뿐히 초월해버리려 한다. 그러나 초월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사람과 살아가는 연습이 사랑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는 걸 그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도착한 시인의 전언처럼 시작과 모험은 끝에서 다시 계속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의 전문가가 아니며, 끝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손을 잡기도 하며 그 길을 함께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여정의 시작을 시인은 “포개지는 그림자의 윤곽”을 통해 그려낸다. “그 무엇이 강림하는” 시적 장면을 본다
정재율 시인
대표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온다는 믿음 등
잊고 있었던 나의 모험과 용기를 발견해 준 시집. 읽는 내내 조금 더 꿈꾸어도 된다고, 조금 더 거침없이 나아가 봐도 된다고 말해준다. 새해가 밝았으니 일단 움직여보자. 그러다 보면 먼저 모험을 떠난 친구가 “우리 같이 진화하자”라고, 우리 함께 어디든 가보자고 말하며 용기를 줄 것이다. 함께 하는 동안 “서늘하고 부드러운 세계 속에서” “희고 빛이 나”는 것들을 끊임없이 보여줄 것이다. 모험 후엔 언제나 더 큰 모험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무언가가 지속되기를, 끝나지 않은 모험 속을 마구 휘젓고 다니기를, 이 시집을 통해 많은 이들이 살면서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잘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온윤 시인
대표작: 자꾸만 꿈만 꾸자, 햇볕 쬐기 등
타임머신에 시인을 한 명 태워 미래로 보낼 수 있다면 누가 좋을까? 김보나 시인을 아끼는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 그는 미래에게 자랑하고 싶은 시인이다. 지금 이 시대를 회상하며 갈등과 반목이 난무하던 때였노라고 수군거릴지 모를 미래의 주민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갔는지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 혹은 지금보다 더 암울하게 변해버린 먼 훗날의 세계에도 시인은 분명 무너진 마음에 필요한 “튼튼한 부목 하나 세울”(「여기 지팡이 있어요」) 곳, 가만히 등을 밀어주는 “깨끗하고 창백한 볕”(「꼬리 연습」)을 귀신같이 찾아내 가리킬 테니까.
김보나의 시를 읽으면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모험 만화’의 주인공처럼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긴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을 진단받는 날에도 “팝핑캔디를 삼킨 때처럼” 이상하고 저릿한 희망이 몸 안에 흐르고, 별안간 당당하고 멋진 괴수로 변해서는 어디서든 “송전탑처럼 씩씩하게 서 있”(「「미친 봄날 생각」」)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므로 나는 김보나의 시가 오늘과 내일을 지나 먼 미래까지 오래도록 읽히기를 바란다. 그때에도 만일 “코어 근육이 없어서”(「여름 느낌 단편」) 일어서질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김보나의 시집을 곁에 놓아주기를. 시인의 시편들이 그이에게 다정하고 가만한 ‘부목’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김보나의 시
「미친 봄날 생각」
안녕 나
갑상샘에 암이 생겨서
방사선 약을 먹은 뒤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어
팝핑캔디를 삼킨 때처럼
몸 안이 반짝거리더니
괴수로 변해버렸다?
이것 봐
광화문 사거리에
송전탑처럼 씩씩하게 서 있어
사람들이 가는 면발처럼 쏟아져 달려가는
정오의 사거리에서
텔레파시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중이야
기억해?
전학 간 너의 긴 편지에 답장하지 않은 나를
너의 연락처를 지우지 못한 나를
명동성당 뒤편에 딸린 여고에서
너는 만화부였고
나는 클래식 기타부
알고 있었어
네가 날 좋아한단 거
복도를 지나다니는 수녀님들에게도
가로막히지 않았던 너의 마음
십자가 형태의 길에서 성호를 긋지
어른이 된 네가 여기 있다면
너를 납치해 걸어갈 텐데
기자들과 카메라가 화동처럼 뒤따르는 행진이야
스물셋에 처음 간 퀴어 퍼레이드에서처럼
일생에 단 한 번
잊을 수 없는 고백을 듣고 싶었지만
나는 늘
먼저 고백하는 사람으로 자랐어
환자복을 입은 다음부턴
미안한 사람들을 병상에 모아 놓고
안녕 나 암이래
말하고 싶었어
사람 아니게 되어
모든 빚을 탕감받고 싶었어
성당에 못 들어간다면
사각사각
창밖에서라도 미사를 구경하고 싶네
고딕 첨탑에 기대 낮잠 자고 싶네
하다못해 절 마당을 비로 쓸면서
발등부터 목덜미까지
누군가 필사한 경전의 글자로 뒤덮이고 싶네
마취총을 맞고
수술대에 올라도
감당하기 힘든 마음처럼 몸이 불어나도
용감하게 걸었다는 기억을 갖고 싶어
작년에 꽃구경을 한 벚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기다릴게
만날 수 없는 사람
좋은 것만 드려요
사세요 이것은 효녀손입니다
효녀는 당신의 등을 긁고 할퀴며
영혼의 지퍼를 탐색하지요
산에서 발견된 신령한 물은 몸에서 나쁜 성분만 내보낸다고
관광객들이 길을 오릅니다
온몸으로 땀과 복을 흘리는군요
비정제 당신의 무색소 영혼이
땀구멍으로 흘러나오기 전에
수습을 합시다
마십시다 약수라도
작은 돌만 골라 쌓았는데
소원은 거대해져서
돌탑은 작은 바람에도 무너질 것 같고
컨테이너의 문을 닫을 때면
오늘 겪은 것 중에 가장 좋은 일을 떠올려봅니다
0이라는 수가 인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는 내리막을 지나고 천축모란 곤륜산 치솟아 오르고
눈이 다 밝아집니다
약수의 효능일까요
조심스레 손을 펴면 잔금이 보여서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깨졌다는 것을
기다려줍시다
이가 나간 영혼이 지퍼를 올릴 때까지
플라스틱 날개를 단 사람이 힘껏 달려 바람에 안길 때까지
어느덧 노란 꽃을 층층 피운 산수유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브이,라고 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