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새해
너에게 조금 더 자두라고 말하고
혼자 시작하는 하루
나는 빈 병에 물을 뜨다가
주저앉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물결들을 본다
등 中
『나도 기다리고 있어』 수록
목포에서 태어났고 신학을 전공했다.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싫음』 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동인 ‘도모’의 일원이다.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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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시인
대표작: ㅅㅜㅍ, 좋은 곳에 갈 거예요
가끔 모험을 꿈꾼다. 일상이 기억나지 않을 때, 살아가는 게 무섭게 느껴질 때, 이럴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시인이 필요하다. 이때 이새해의 시를 떠올린다. 그의 시에는 모험이 있다. 모험에는 역시 친구가 필요하지. 우리는 친구가 되고 떠들고 서로의 장래에 쉽게 푼돈을 걸지도 모른다. 위급한 순간에는 사이좋게 도륙되는 우정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건 어떤가. 모두가 죽은 밤, 홀로 검은 비단에 패장의 머리를 감싸고 시원한 멜론을 떠올리는 건? 굳은 손가락에서 빼낸 반지가 굴러간다. 어딘가 잃어버린 손가락이 움직일 것 같다.
너희는 도둑이다.
너희는 친구들이다.
그의 세계를 누비다가 돌아온 나의 세계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그의 시선은 정직하고 견고하며 무엇보다도 성실하다. 그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당신도 준비할 게 있다. 약간의 믿음과 상상력. 나는 좋았던 것들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내게 주어져 있었음을 눈치챈다.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모험의 초대장이 필요한 당신에게, 넌지시『나도 기다리고 있어』를 권한다.
민구 시인
대표작: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배가 산으로 간다
추천 요청을 받았을 때 이새해 시인이 떠올랐다. 『나도 기다리고 있어』는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계속 생각나는 시집이다. 생각의 이유 쪽으로 가다 보면 아직도 시의 장면 안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화자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영화를 보고 난 뒤 세트장을 다시 찾는 기분이었다. 이새해 시의 화자들은 눈앞의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는 파수꾼이며 동시에 불행의 예감으로 제자리에 얼어붙은 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계속 불안해하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의 문턱에 걸려서 넘어진다. 그래서 이상하게 웃기고 공감되고 마음이 쓰인다. 첫 시집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문장이 유연하며 다 읽고 나면 물속의 성게를 밟은 것처럼 시큰해진다. 새해를 맞이하여 독자들에게 「날 갈기」라는 작품을 권하고 싶다. 다들 하나씩 갖고 있는 그 칼이 나 혹은 타인에게 향하지 않고, 너무 무뎌지지도 않기를. 각자 날 갈다가 우연히 만나기를.
박소란 시인
대표작: 한 사람의 닫힌 문, 수옥
내가 이새해의 시에 매혹된 순간 그는 낯선 “요새 위”에 있었다. “먼저 죽은 자들이 그려진 카드를 / 수북하게 깔아둔 채로 / 웃고 떠들며 점을 치던 친구들”이 그 곁에 있었고, “그 친구들 전부 / 먼 들판에서 도륙되던 밤에도” 그는, 그의 화자는 요새 위를 지켰다. 시 「파수」 이야기다. 이 기묘한 시를 읽는 순간 나는 예기치 않은 모험 속으로 끌려 들어간 듯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시인이 위치한 요새란 현실 너머, 그렇지만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닌 어떤 곳이며 그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보는 자라는 사실을. 죽음, 폭력, 죄, 배교……, 그리고 연민, 사랑……. 이런 것들의 복잡다단한 얼굴을 보다 선명히 응시하기 위해 그는 자신만의 모험을 부지런히 감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비와 사색에 휩싸인 그의 시를 읽으며, 생경한 감각 속에 이따금 주춤거리며, 돌연 선득해지곤 했다. 언젠가 계시처럼 닿은 나지막한 목소리. “그대로 말해본다. 너는 죽었어.”(「숙소」)
여세실 시인
대표작: 화살기도, 휴일에 하는 용서 등
이새해 시인의 첫 시집 『나도 기다리고 있어』 에는 경계와 변두리를 끝까지 응시하는 힘이 있다. 이 힘은 세계와의 끈질기고 아름다운 불화에서 촉발한다. 특히 「열매는 새로운 본보기를 찾아다닌다」에서는 화자가 대도시에서 겪는 크고 작은 멸시와 소외가 그려진다. 생물학 교수가 열매의 종교성을 비웃거나, 친구들이 사투리를 구경하러 열매를 둘러싸는 풍경은 열매로부터 자신이 이 세계의 외부인임을 인식하게 한다. 열매가 소외와 배제의 감각을 연습장에 그림으로 그려낼 때, 열매가 깨닫게 되는 것은 “감자는 열매과가 아니”라는 것, 이러한 메타포는 시적 화자가 자신이 건너온 세계에도, 또 새롭게 편입될 세계에도 마침 맞게 어울리지 못하는 타자로서 존재하게 됨을 암시한다. 이새해 시인의 시속에는 이렇듯 변두리, 경계에 있는 인물들을 오래 응시한다. 쉬이 혐오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으면 응시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시선은 치열하다. 면밀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부드럽게 질문하기. 이런 아름다운 불화의 방식은 우리가 오래 찾아오던 새로운 본보기일 것이다.
유수연 시인
대표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새해는 이새해를 시작하세요"
이새해 시인이 기다리는 내일을 함께 기다려 봅니다. 시인이 그려내는 장면은 누군가를 오롯이 기다리는 새벽이자 저녁이며, 얇은 커튼 사이로 드리우는 햇살의 기척 같습니다. 베개 자국이 남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고요한 애틋함 같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선선한 온기로 가득합니다. 이제 막 도착한 이의 서늘한 외투처럼 마냥 얼굴을 비비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러는 동안 시인의 기다림은 가장 단단한 다정함으로 변해갑니다. "모두가 쓰러지듯 잠든 새벽"(시 「여름으로부터」 中)에도 홀로 깨어 나의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져 줍니다. 가끔은 뜨거운 이마에 얹는 서늘한 손바닥처럼, 놀라 뒤척이는 시의 간극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 만약 이새해의 시가 조금 차갑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 삶의 열병이 잠시 깊어진 탓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새해, 이새해 시인의 시가 여러분의 뜨거운 마음을 식혀주는 다정하고 서늘한 손바닥이 되어줄 거예요.
조성래 시인
대표작: 천국어 사전
이새해의 시집을 넘기다 보면, 이불과 옷깃 스치는 소리만 나는 것처럼, 매 장면이 고요합니다. 화자는 죽은 이들의 반복되는 환영 사이에 살면서,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도 언제나 그가 살고 있군요.
아무리 사랑하고 싶다 하더라도 너희를 다 숨겨줄 수는 없다는 듯, 그는 연약한 짐승의 눈을, 다친 다리를 보여줍니다. 약함과 악함에 관해. 유구히 착하지만은 않겠다는 것. 그것이 그의 선함 같군요. 어쩐지 그는 신의 모습을 따라 해 보는 것도 같습니다. 검은 돌멩이 되어 당신의 얼굴을 비춰보듯이, 그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입니다. 친구들 틈바구니에 같이 앉아 있을 뿐입니다.
이런 게 정말 당신의 모습이야? 당신께 대한 조심스러운 반항이라도 된다는 듯이. 당신보다는 윤리적일 것을 다짐이라도 하는 듯이.
그는 손으로 한 얼굴을 받힌 채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의 생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배우들이 다 떠나도, 시집이 끝나도, 그 얼굴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인입니다.
조해주 시인
대표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가벼운 선물 등
이새해의 시에서 화자는 식탁에 가장 먼저 놓인 그릇을 닮았다. 처음에는 식탁 한가운데 놓였다가 다른 그릇들이 하나둘 들어오면 조금씩 옆으로 밀려나고, 결국 식탁 밖으로 사라지는 그릇.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은 / 끝까지 하지 않”(<등>)고, “내가 조용히 나가면 / 너는 너의 오전을 시작할 수 있다”(<일요일>)고 말하는 그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가만히 타인을 응시한다. 자신은 잘 보이지 않고 타인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오히려 화자의 얼굴은 아주 잘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맑고 개운한 표정을 하고있다. 세상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처럼 타인을 조건 없이 믿으면서도, 이미 다 살아본 사람처럼 기꺼이 자기 자리를 내어주는 자의 표정이다.
한연희 시인
대표작: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폭설이었다 그 다음은 등
이 시집 속에는 남은 이야기가 있다. 마치 못다 한 할 말이 있어 얼굴을 돌리는 사람처럼, 곳곳에 사람들이 서서 우리를 바라본다. 그들이 자꾸 다가와 시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자의 천진한 열의를" 훔쳐낸 시인은 이야기의 서두와 결말을 고심한다. "이 많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질문하는 시인은 함부로 그들 이야기를 결정짓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유독 시인의 시 속에 얼굴들이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찬찬히 들여다보느라 이야기가 얼굴이 되어간다. 여기저기에 출몰하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살펴보는 시인의 눈은 돌 같다. 가만히 거기 앉아 움직이지 않지만 다 보고 있는 돌. 다 듣고 있는 돌. 그런 사람이 조용히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왠지 고요하다. 차갑다. 그러나 왠지 기쁨을 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털어놓고 말았어" 고백하는 시란 그게 위험한 줄 알면서도 더 듣고 싶어진다. 이런 시인이라면 다음 시집이 어떤 모양의 얼굴을 하고 나올지 기다려질 수밖에.
이 겨울, 눈오는 밤이라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면, 이 시집을 읽으며 기꺼이 기다릴 수밖에.
이새해의 시
스퀘어
강은 출렁인다
광장은 아름답다
강 건너편에는 궁전들이 늘어서 있다
건물마다 긴 회랑이 놓여 있을 것이다
금장식된 천장과 초상화가
복도와 복도로
계단참으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저 중에 호텔이 있다면
밤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객실에서
말 거는 남자애 없이, 깊이 잠든 취객들의 잠꼬대도 없이, 오래된 스탠드 등 아래, 바삭거리는 이불 속에서, 긴 겨울밤을, 이 도시의 거주자들을, 외투 위로 흩어지는 입김들과 떠다니는 환영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 뜨지 않는, 죽은 신체조차 소거되는 고립이라면……
유람선은 멈춰 있다
사람들은 웃고 있다
공연자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그들이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를 때
모두가 땀을 흘릴 때
가설무대를 설치 중인 인부들이 1층에서 2층으로, 3층으로, 건너편 인부에게로 철골을 하나씩 넘겨주면서
그 노래를 따라부를 때
추락하는 인부 하나 없을 때
뒤에 앉은 사람이 앞사람을 끌어안을 때
아무것도 얼어붙지 않는다
아무도 실려 나가지 않는다
한 손으로 귀를 가린 채 속삭이고 있을 때
그 모두의 뒤편에 바탕화면처럼 커다란 궁전이 있다
무너진 적 없는 것처럼
그린빌
벽 너머에서
혼자 남겨진 개가 짖는다
나도 기다리고 있어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주기를
이렇게 말해도 개와 나는 친구가 아니다
내가 낮잠을 자다가 죽으면 너는 한동안 슬퍼하겠지 네 앞에 나타날 새로운 사람들이 너에게 줄 기쁨과
네 청량한 웃음소리를
나는 누워서 본다
앞으로 우리가 가질 수도 있는 것
각자의 방,
어른의 얼굴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찾아와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화면 같은 것
내가 아는 아름다움의 목록을 하나씩 지우고
네가 하고 싶은 것 앞에 내 몸을 세워둔다
너는 바닥에 앉아 가방을 열고
알전구 더미를 꺼낸다
성탄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고 말하는 너에게
동의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보고 싶은 얼굴이 있는 사람 앞에서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유리창 위에 하나씩 알전구를 붙인다
차갑게 마른 수건들을 방으로 들여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