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김초엽, 김영하, 김연수 유리 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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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이 10년 만에 시집을 출간했다. 진은영이 호명해 새롭게 의미를 붙인 일곱 개의 단어(<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의 독백, 혁명, 시'의 말맛을 오래 곱씹는 동안 마침내 도착한 새 시집. 이렇게 끔찍한 세상을 두고 왜 우리는 계속 사랑하는 시를 읽는 걸까. 이 생각을 하며 이 시집을 받아들었다. "누군가 살해된 방에서 사는 일처럼"(92쪽) '꿈이 죽은 도시'에서 사는 일은 괴롭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초엽 첫 장편소설. 더스트로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장은 2129년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덩굴식물 모스바나에 대해 연구하는 아영의 이야기. 2장은 2058년, 더스트를 피해 돔 안에서 도시를 이루고 사는 시대, 돔 없이 숲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 나오미의 이야기. 그리고 3장에서 이 두 이야기가 만나 세계의 멸망에 관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226쪽)만이 살아있는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이 세계를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도 김초엽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9년 만에 출간된 김연수 소설집. 새카만 밤하늘을 향해 노를 젓는 두 사람을 본다. 새카만 밤하늘 정 가운데의 동그란 달을 향하는 사람들.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단편 <진주의 결말>의 등장인물 유진주는 한때 범죄심리학자인 내가 했던 말을 인용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97쪽) 오랜 시간을 지나 만난 김연수의 소설은 계속 이 가능성을 탐색하며 노를 젓는다. 달까지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소설가 김영하가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짧고 세련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휴머노이드 액션 활극이라는 익숙한 장르의 외피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이 김영하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김영하의 방식은 질문하는 것. 우리는 사람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작별인사를 전할 것인가?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16쪽) <작별인사>의 첫 장을 다시 읽는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저 검은 공간 너머에 우리의 이유가, 김영하의 현재적인 질문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