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유영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보이지 않게 두어도 될까.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
만사형통 中
『오믈렛』 수록
2020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 『오믈렛』(2023, 문학동네), 에세이집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2024, 난다)가 있다.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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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형 시인
대표작: 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
시집 <오믈렛>에는 탕탕 썰어 놓은 채소, 두 손가락을 비벼 뿌린 하얀 가루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소끔 끓여내면 되니까, 잠깐 식탁에 앉아 턱을 괸 채 기다리는 사람도 거기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잠깐에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등을 쓰다듬어주셨을 때의 온기, 그 사람이 가만히 노려보던 물컵. 그런데 곡물을 씹어다 뱉어놓으면 술이 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임유영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이 사람 입에서 많이 곱씹어서 내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홍수에 푹 잠겼던 집에서는 온갖 버섯이 자란다고 하잖아요. 형형색색의 버섯은 그 모양만큼 신묘한 효력을 가지고 있어 함부로 먹으면 큰일이 난다는데, 임 시인의 시에는 그런 버섯이 잔뜩 피어 있어요. 수묵화로 그려놓은 버섯부터 유화 물감으로 덧칠해놓아 튀어나올 것 같은 붉은 버섯까지. 현해탄 너머에 있다는 그 집에 가보고 싶어요. 그 집 바닥에 드러누워 자면 달큰한 향이 나는 침 한 방울, 맛있는 잠이라도 잔다는 듯이 입가에서 흘러내리겠지요. <오믈렛>을 읽으며 꼭 그런 잠을 잔 것 같았어요, 깨어나 보니 참 개운했어요.
김경후 시인
대표작: 열두 겹의 자정,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등
“여기는 세상입니다” 죽음을 이야기하거나 의미, 연원, 형식을 부여하려는 안간힘은 부질없습니다. “매일 밤 몸을 씻고 침실은 늘 청결하게 유지하”면서 “고통 없이 고통 없음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바라지만, 아름다운 휴양지와 빛나는 장신구, 천사의 발끝에서 죽음은 흘러내리고 우린 이미 젖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임유영의 시는 그 알 수 없고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을 다정하게 들어주고 달래줍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시를 읽는 사람의 목소리로 달래줍니다. 그만의 비법이 분명합니다.
벚꽃 가득한 봄밤 같고, 차가운 호수 아래 소녀의 중얼거림 같고, 술 한 잔 속 죽음과 가윗날과 불과 공기 같고, 겨울 햇빛 같고, 취기에 마주한 얼어붙은 새벽 같고, 눈송이가 녹으며 속삭이는 레퀴엠 같습니다.
그렇게 신비롭고 그토록 서럽고 외롭고 비밀스럽습니다. 『오믈렛』의 한 구절을 『오믈렛』에게 들려줍니다. “흔치 않다는 건 귀하다는 거잖아요.”
김민정 시인
대표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등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유영의 시를 읽는가. 붙드는 건 유영의 시고 기다리는 건 아침의 오믈렛이다. 배달까지는 20분 소요. 시집 한 권에 있어 일단은 차례 페이지에 머물기 딱 좋은 시간. “살아 계신 분을 묻어드릴 수도 없었고” “가서 돌 주우면 재미있을” “한데 섞인 흰자와 노른자의 중립적인 맛” “어디 가는 어린애와 어디 갔다 오는 개” 1부에서 4부까지 각 부의 제목을 소리를 내어 읽으니 시집 속 시들이 기지개를 켜고 잠자던 서사가 들썩인다. (가만, 유영은 저 아래 남쪽 진주 여자인데 나는 왜 유영이 그 옛날 여진족 같다는 메모를 시집 사이에 껴두었을까. 내가 북방에 끌리는 사람이라 그랬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호방과 호기라는 말을 친애하여 그랬을 거다!) 안다. 쉽지 않은 시다. 간혹 짧으나 대부분 길다. 일단은 더하고 우선은 보태는 데서 시작하는 유연함을 기본으로,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잘 벼리는 타고남으로 마무리할 줄 알아서다. 한마디로 유영은 ‘빼기’의 전문가다. 유영도 말하지 않았던가. 웬만하면 ‘설탕’을 거절하고 거부하고자 하는 태도랄지 마음가짐이랄지 하는 것이 있는 것도 같다고, 이리 오라면 반드시 저리 가고 마는 마음 같은 것이 제 글쓰기일지도 모르겠다고. 아침의 오믈렛을 기다리며 빼갈을 쭙 빨아들이는 내가 있다. 유영의 시를 읽고 내본 흉내다. 유영처럼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은 없으니 조만간 내가 모방할 일은 그 행동이구나 하는데 마땅한 걸 찾자니 그럴 만한 핸드백이 안 보여 오늘의 쇼핑 리스트가 달걀에서 핸드백으로 바뀐다. 쇼핑중독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유영의 시다.
김복희 시인
대표작: 보조 영혼, 희망은 사랑을 한다 등
임유영은 읽는 이를 단숨에 휘어잡는 매력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임유영 시인의 시는 어렵고 복잡한 문장 없이 심원한 사유에 다가서도록 읽는 이를 끌어들인다. 그의 시가 품은 매력은 어딘가 좀 투박한 구석이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온도와 시간을 한껏 쏟아부어 만든 술잔 같은 데 있다. 어떤 술을 부어도 그 잔에 마시면 꼭 맛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준다. 그 술잔으로 술을 마시면 내일 없이 기분 좋게 마시고 싶게 만들어 줄 것 같은 점이 임유영 시인의 시가 품은 매력이다. 이 술잔은 어디 박물관에 전시된 높으신 분의 물건이 아니라, 단골 술집 선반 위에 있을 것 같은, 꼭 거기 가면 사용하고 싶은 술잔 같다. 아무 데서나 구하긴 어려운데, 그렇게 엄청 비싸고 어려운 물건은 아닌. 임유영은 기꺼이 입술을 가져다 대고, 그 안에 담긴 것을 의심하지 않게 하고,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는 아끼는 술잔 같은 매력의 시인이 아닐 수 없다.
김소연 시인
대표작: 수학자의 아침, 눈물이라는 뼈 등
임유영은 이야기를 시에 담는다. 무척이나 이상하고 때론 징그러우며 자주 무섭기도 한 이 이야기들 안에는 짙은 호의가 가득차 있다. 우리가 가져본 적 없는 호의. 발휘해본 적없는 호의. 받아본 적은 더더욱 없는 호의. 잘 알고 있다지만 번번이 간과해버리게 되는 호의. 서로 죄송하고, 서로 오해하고, 서로 망치거나 해하고, 때론 살생하고 때론 이미 죽어 있고…….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에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시인의 시선에는 호의가 가득하다. 임유영은 이 세계에 어떤 식으로든 호의를 드러내는 것이 시라고 믿어서 이런 시를 쓰는 것만 같다. 이런 시란 무얼까. 언어를 시로부터 풀어주는 방식으로서의 시. 언어가 근접만 하고 못다 닿은 세계를 아쉬워하지 않는 마음으로서의 시. 임유영의 시를 읽으면 시가 끌어당기고 동시에 밀어내는 진실들이 그저 반갑다. 만개하다 만연해지는 이 감각들을 도대체 무어라 불러야 할까. 임유영의 시가 끝날 때마다 비로소 시작되는 무엇에 대해 매번 생각한다. 가망 없는 것들에 대한 진심어린 무엇. 어딘지 모르게 넓어지다, 어디로든 옮겨지고, 뜻없이 퍼져나가 멀리까지 가게 된다.
김현 시인
대표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등
임유영의 시 「정확한 죽음의 시각을 기록하기」는 20세기 한국의 한 성당 뒤뜰 감나무에 매달린 천사를 드러내며 시작된다. 유아의 모습을 한 그 천사를 발견한 젊은 사제와 늙은 사제는 천사의 엄지발가락 끝에 매달린 물방울을 보며 그게 혹시 천사의 오줌은 아닐는지 의아해한다. 이후 눈이 내려 천사와 천사의 자국을 완전히 뒤덮고 감나무 위에서는 사라질 듯 희미한 빛이 깜박인다. 이 시를 읽은 적 없는 당신이라면 지금쯤 시의 전문이 무척 궁금할 것이다. 그렇지 않나(이미 검색 중)? 어느 잡지에선가 이 시를 처음 읽고 난 뒤로 나는 겨울 성당을 지나쳐 갈 때마다 감나무와 천사를, 흰 눈 위 천사의 (노란) 소변 자국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시는 독자의 혼을 빼 시에 가둬두길 원한다. 시를 읽기 전의 ‘나’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도록.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임유영의 여러 시에 혼을 나눠줬다.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아서. 단단한 촛불 들고 그 부드러운 유리병 속을 나 대신 내 혼이 떠돌도록 하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그 시각을 종종 기록하기도 했다.
박다래 시인
대표작: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
임유영 시인의 시에는 이미 사라졌거나, 혹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어느 한 시기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기억은 때로는 “죽음과 눈물과 폭력”의 기억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호수에 뛰어들었던” 순간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그 기억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평정심을 확보한다. 기억은 분명 시인의 것이지만, 시 속에서 그것은 마치 그의 것이 아닌 것처럼 기록된다. 시인은 비극적인 사건 자체를 직접 말하기보다는, 그 사건이 아닌 어떤 것—사건의 가장자리, 혹은 주변부—에 대해 말한다. 본질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이 이야기는 일종의 딴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딴청 덕분에 독자는 이야기를 과도한 긴장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세계의 “죽음과 눈물과 폭력”을, 그리고 그것을 겪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고, 언제든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독자는 기억을 점유하며 시에 연루되는 것이다.
오은 시인
대표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등
임유영은 사과 한 알에서 죽음과 눈물을 발견하고 쑥냄새와 취냄새로부터 슬픔의 기척을 찾아낸다.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이 발견을 추동하는 에너지다. 동명의 시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에서 그는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창백한 형광등이 어둠을 박살낼 때 우리가 집에 가져가는 것.” ‘박살’ 이후의 감정, 낌새 바깥의 사연으로부터 그의 연주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오믈렛』(문학동네, 2023)의 첫 시는 다름 아닌 「헤테로포니」인데, ‘헤테로포니(heterophony)’는 동일한 선율을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면서 그 자연스러움을 임의의 방식으로 변주하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선율의 다양성, 시적 긴장의 복잡성이 여기에서 비롯한다. 아슬아슬함 때문에라도 시를 끝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여음(餘音) 혹은 여운. 다양성,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임유영의 시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유선혜 시인
대표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모텔과 나방
임유영의 시가 너무 좋은데 왜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을 고르기 힘들다. 기묘해서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다시 어디가 기묘하냐고 물으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 점마저 기묘하다.
평범한 사람을 둘러싼 평범한 일들도 임유영의 손을 거쳐 이리저리 배열되고 결합되면, 예감이나 암시를 내포한 장면으로 변신한다. 피곤할 때 꾸는 어지러운 꿈이 마치 중요한 예지몽처럼 느껴지듯이. 환상이라고 하기도, 현실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이야기들은 종잡을 수 없는 무작위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분명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다. 불길한 미래나 나 자신의 죽음 같은, 서늘한 방향으로 말이다.
임유영은 ‘에티튜드’를 타고난 시인이다. 어떤 문장을 쓰든지 간에 ‘시크한’ 유머와 ‘엣지 있는’ 거리두기를 잊지 않는다. 같은 안무로 춤을 춰도 어딘가 삐걱거리는 사람이 있고 세련된 움직임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임유영은 분명 후자다. 고개만 까딱여도 고수의 향기가 나는…… 나도 임유영처럼 써 보고 싶지만,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춤선은 타고나는 것이니까.
임지은 시인
대표작: 무구함과 소보로,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등
임유영 시인이 아침이란 동일 제목의 시 8편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을 때 나는 한 사람이 맞이하는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읽으니 여덟 사람이 맞는 아침이 되었고 또 읽으니 모두의 아침이 되었고 결국엔 나의 아침이 되었다.
그녀를 내일의 젊은 시인으로 추천한 뒤 우연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일은 비밀에 부쳐두고 넌지시 그녀에게 어떤 시인이 되고 싶냐 고 물어봤다. 그녀는 잘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의외의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누구보다 잘 쓰고 있기에.
나는 임유영 시인이 내일 읽고 싶은 시를 쓴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시는 뭘 말하려고 하지 않지만 읽는 순간 이미 전해져 오는 것이 있다. 대단한 고수다. 힘들이지 않았지만 금세 멋지게 한 상을 차려내는 요리사처럼. 나는 균형 있게 잘 볶아진 「오믈렛」 안의 내용물을 갈라보고 싶어 진다. 읽을 때마다 다른 게 씹힌다는 것에 놀라며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을 기다린다.
조용우 시인
대표작: 세컨드핸드
임유영의 시에는 삶과 죽음, 폭력과 평화가 "오믈렛"의 흰자와 노른자처럼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그렇다. 자연. 그가 내놓는 풍미 넘치는 요리와 향긋한, 아마도 도수가 아주 높을 술은 우리에게 낯선 경이나 신비가 아니라 충만한 자연의 맛을 선사한다. 그 맛은 취한 세계를 깨우기도 하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돋우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들려주는 꿈을 결코 해석할 수 없지만, 그것을 음미하며 어떠한 노력 없이도 단어 하나 하나가 만들어내는 의미와 운율이 모두 원래 거기 들어가 있어야 하는 재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유영을 '내일의 젊은 시인'으로 추천하며 하나 걸리는 점은, 그의 시에서 내일 혹은 미래는 자주 "전에 없이 지금도 없"는 것으로 진술된다는 사실이다(「부드러운 마음」). "우리가 찾아낸 미래의 화석, 이것을 주워서 무엇하리?"(「사랑의 열매」)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앞에 두고 임유영을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젊은 시인으로 주저 없이 추천한다.
임유영의 시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너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얼마만큼 그런가 하면 네가 좋게 들은 곡을 모아서 계절마다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앨범 커버도 손수 만들어서.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음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들려줘서가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인데. 야자 빼먹고 지하 클럽에 공짜로 벽화 그려주고. 포르투갈에 다녀온 다음부턴 어떤 가수가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분명히 믿고. 밴드 하고 음반 내고 음악가가 되었고. 무엇보다 너는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 전주가 나올 때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벌써 다 알지. 술을 홀짝이며 기뻐하는 속삭거림에 너의 얼굴엔 만족스러워하는 미소가, 또 짐짓 당연하다는 표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냐 조금 기다려봐,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할 거야 ……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끝난 후에 다른 곡을 들려주다가. 한참 그러다가. 한참 멀리까지 강 건너 바다 건너 잘 가다가. 결국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틀어놓고. 깊이 취해 고개를 기울인 채 자기 앞의 술잔만을 바라본다. 거기에 무엇 중요한…… 어떤…… 저절로…… 고여 있다는 듯이. 새로운 물질을 발명해버린 사람처럼. 나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 네가 무언가 슬픈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섭다. 그것이 영영 슬픈 생각일까 두렵다. 두려움. 창백한 형광등이 어둠을 박살낼 때 우리가 집에 가져가는 것. 이제 허겁지겁 우리끼리의 농담 같은 음악들로 각자를 도로 채워놓고, 제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술을 들이켜지. 난 그때마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만사형통
그들은 자신의 손가락 끝마다 심장이 하나씩 달려 힘차게 박동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서로가 손끝의 심장을 들키지 않으려 잡은 듯 만 듯 간신히 깍지를 낀 모양새였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손을 놓지 못했다. 시월의 바람이 불어왔다. 열 손가락의 요람에서 새끼 쥐 한 마리 푹 자고 일어날 만큼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았다. 쥐가 떠나고 나자 요람 위에는 동그마하고 보송보송하고 하얀 것이 수리수리하게 자라났다. 그럼 그건 쥐의 그림자일까. 털 달린 탁구공일까. 바싹 마른 흰 빵덩어리일까. 산토끼 꼬리일까. 흙냄새, 나무 향기 그윽한 버섯일까. 달게 자는 아기 주먹일까. 그것을 자라게 두어볼까. 자란다면. 두 사람을 여기 둘 수 있는 이유가 될까. 찬바람 부는 가을밤을 둘이 계속 걷게 해도 될까.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붙잡아두어도 될까. 둘의 신발을 벗기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싸늘한 밤의 강변을 맨발로 걸어가라. 그래도 그런 기분을 완전히 적을 수는 없다. 강 건너에 불을 질러본다. 일정한 속도, 일정한 보폭, 일정한 온도로, 넓어지세요. 옮겨지세요. 퍼지세요. 멀리멀리 가보세요.
손잡아. 그냥 한번 꽉 잡아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보이지 않게 두어도 될까.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 삼겹살에 묵은지 지글지글 구워서 쌈 싸주고 싶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투에 냄새 배는 게 싫다며 사양하였고, 나는 마침내 손에 거절을 쥐고 다른 잠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