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 세찬 빗줄기가 들판을 흠뻑 적신 뒤 사그라든 청명한 밤. 연잎 우산으로 비를 피하던 볏짚도깨비들이 짙어진 풀 내음을 들이키며 기뻐한다. 찌르르 풀벌레 소리 사이로 작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보니 조롱이떡과 솜뭉치를 닮은 하얗고 조그만 무언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넌 어디서 왔어?" 볏짚도깨비들이 묻는다. "난 만년설 과수원에서 온 눈뭉치도깨비 조랭이야. 과수원 밖에 나왔다 소나기에 휩쓸려서 길을 잃었어." 한여름의 열기에 조랭이가 점점 녹아내리자, 볏짚도깨비들은 사시사철 눈이 펑펑 내리고 얼음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만년설 과수원을 어떻게든 찾아 조랭이를 데려다 주기로 한다. 눈뭉치도깨비가 처음 느껴보는 여름. 바람이 스치는 자리마다 초록빛이 물들고 향긋한 풀과 꽃이 가득하다. 조랭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눈뭉치도깨비 친구들에게 여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이토록 영롱하고 감각적인 그림책이라니. 신비로운 그림이 책장을 가득 채우며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머나먼 다른 세상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만 같다. 여행 후의 시차처럼, 그림책 속 세상과 현재의 내 주변에서 느껴지는 격차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낀다. 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그림책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세현 작가의 작업 후기를 덧붙이고 싶다. "푸릇푸릇한 여름을 책장 속에 꽝꽝 얼려 두고 이따금 꺼내어 보고 싶어요. 이 책이 여름날에 머문 눈 한 조각이 되길 바라요."
<하얀 여름을 데려왔어> 아크릴 책갈피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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