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 82호

사랑을 위해 여기까지 할 수 있다면
디올 향수 광고 캠페인을 기억하실지요. 나탈리 포트만이 '미스 디올'로 출연해 'What would you do for love?'라는 대사를 장엄하게 내뱉기 전 그는 바다에 뛰어들고 헬기에 오르며 사랑을 위해 본인이 무얼 할 수 있을지를 과시합니다. <이응 이응>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멜라의 신작 장편소설에서 과일농사를 짓는 을주는 사랑을 위해 욕받이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섭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꿀떡처럼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사연 많은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욕+ 받이> 인터넷 방송의 총괄팀장 둘희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상생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이 방송에 출연하고, 시청자들은 돈을 냈으니 돈값만큼 인격 모독에 해당할 욕을 던집니다. 을주가 운전하는 트럭처럼 김멜라의 소설은 핸들을 꺾어 사회현상을 고발하는 듯한 이 장면을 바다처럼 넘실대는 사랑 이야기로 치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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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향수 광고 캠페인을 기억하실지요. 나탈리 포트만이 '미스 디올'로 출연해 'What would you do for love?'라는 대사를 장엄하게 내뱉기 전 그는 바다에 뛰어들고 헬기에 오르며 사랑을 위해 본인이 무얼 할 수 있을지를 과시합니다. <이응 이응>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멜라의 신작 장편소설에서 과일농사를 짓는 을주는 사랑을 위해 욕받이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섭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꿀떡처럼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사연 많은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욕+ 받이> 인터넷 방송의 총괄팀장 둘희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상생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이 방송에 출연하고, 시청자들은 돈을 냈으니 돈값만큼 인격 모독에 해당할 욕을 던집니다. 을주가 운전하는 트럭처럼 김멜라의 소설은 핸들을 꺾어 사회현상을 고발하는 듯한 이 장면을 바다처럼 넘실대는 사랑 이야기로 치환합니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는 일도 가급적 피하고 싶은 제겐 제겐 욕을 먹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는 을주의 용기는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미움을 학습했습니다. 우연히 길을 가다 시민 인터뷰 제안을 받아도 '악플' 달릴 것 같아 거절하는 것은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을주의 '맷집'은 이 이야기를 강하게 끌고 갑니다. 둘희가 사랑하는 영화감독 한기연과 그에 얽힌 추문을 '다시 쓰기'를 시도하는 둘희 역시 직진한다는 점에서 을주와 캐릭터가 다르지 않은 인물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어떤 꿈을 꾸며 밤바다를 보고 있을지 그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감각적인 소설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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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쪽 : 자기네 회사는 돈이면 다 된다는 이 썩어빠진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일종의 혐오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전염성이 강한 혐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욕받이 백신을 맞아 면역력을 키우자는 건데, 진짜 목적은 그렇게 남의 아픈 데를 찌르며 비웃지 말자는 거라고.
Q :
어떤 오독은 재해석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세관원이자 화가였던 ‘일요일의 화가’ 앙리 루소의
별명을 어쩐지 황유원 시인은 <일요일의 예술가>로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일요일의 예술가로서 시쓰기 말고도 시인께서 일요일마다 관심을 갖게 되는 다른 예술활동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일요일마다 바뀔 만큼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슬프게도 관심을 갖는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네요.
이십대 때는 여행작가가 꿈이었어요. 낯선 곳을 여행하며 글쓰는 게 제게는 최고의 예술 행위로 보였죠. 이를테면 후지와라 신야처럼 살고 싶었달까요. 이제는 방에서 번역만 하고 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지극히 정적인 인간이 되고 말았는데, 그만큼 때로는 활동적인 어떤 행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희곡이나 시극, 뭐가 됐든 무대에 올릴 수 있는 형식의 시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사실 지면으로만 발설하는 건 좀 답답해요. 실황으로 순간순간 살고 죽는 그런 생동감 넘치는 무언가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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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떤 오독은 재해석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세관원이자 화가였던 ‘일요일의 화가’ 앙리 루소의
별명을 어쩐지 황유원 시인은 <일요일의 예술가>로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일요일의 예술가로서 시쓰기 말고도 시인께서 일요일마다 관심을 갖게 되는 다른 예술활동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일요일마다 바뀔 만큼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슬프게도 관심을 갖는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네요.
이십대 때는 여행작가가 꿈이었어요. 낯선 곳을 여행하며 글쓰는 게 제게는 최고의 예술 행위로 보였죠. 이를테면 후지와라 신야처럼 살고 싶었달까요. 이제는 방에서 번역만 하고 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지극히 정적인 인간이 되고 말았는데, 그만큼 때로는 활동적인 어떤 행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희곡이나 시극, 뭐가 됐든 무대에 올릴 수 있는 형식의 시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사실 지면으로만 발설하는 건 좀 답답해요. 실황으로 순간순간 살고 죽는 그런 생동감 넘치는 무언가를 원해요.
Q :
「고골의 코골이」 같은 시는 고골이라는 인물의 실제 삶과 고골의 작품, ‘고골의 코골이는 드르렁
드르렁’같은 말장난이 어우러져 재미있게 굴러갑니다. 저는 코 없는 기분이 들 때 종종 이 작가를
생각하는데요, 시인께서도 고골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코 없는 기분이라니! 어떨 때 그런 기분이 드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추울 때? 단순히 몸이
추울 때도 그렇고 속(?)이 추울 때도 고골의 ‘외투’가 생각납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새 외투를 빼앗기고 페테르부르크의 별난 바람에 병이 나 숨을 거둔 후 유령이 되어 남의 외투를 빼앗는
대목에 이르면…… 정말이지 뼛속까지 시릴 지경이에요. 저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설국에 대한 환상이 크긴 했는데요. 그 많은 러시아 작가 중에서 유독 고골이 마음에 남은 건 아마도 「외투」의 강렬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비이」 같은 공포소설의 신선함도 한몫했지만요.
Q :
난다시편 마지막 장에 수록된 ‘황유원의 편지’에 오늘도 죽어라 발버둥치는 이 땅의 모든 ‘일요일의 예술가’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적어주셨습니다. 일요일을 보낼 일상 예술가들에게 이른 새해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전국에 계신 일요일의 예술가님들, 안녕하세요? 다들 열심히 생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창작 활동까지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신지요. 그런데 사는 게 원래 좀 그런 것 같아요. 역사를 훑어보니 삶이 만만했던 시절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사는 게 그런 거라고, 다들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지는 것 같아요.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라고 하는데, 다들 붉은 말처럼 불타오르며 달리시는, 하지만 불타서 소멸하진 않고 연말까지 쭉 활활 오래 따뜻하게 타오르시는 한 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예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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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써본 사람이라면 키득대며 읽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인기 작가 어스탐 로우는 백작의 초청으로 그의 별장 '오소리 옷장'에 방문한 뒤 이곳에서 살해되었는데, 죽지도 살지도 않은 채로 사람들이 없으면 펜을 들어 자신의 죽음에 관한 소설을 계속 씁니다. 용의자를 가명으로 등장시킨 '임사전언'은 결말로 직진하지 않고 9권에 달하는 대하소설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기에 작가로서도 결말만 대충 던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 이영도 작가가 7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입니다. PC통신 연재로 독자와의 관계를 시작한 이영도 작가의 팬들은 작가와 유대감이 깊은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는데요, 그의 작품을 오래 기다려온 독자에게 인사하는,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필경사와 도서관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무조건 좋은 분도, 밀실 미스터리라면 입맛에 맞는 분도, 이영도 세계관의 일부분이 되길 원하는 분도 만족할 만한 훈기가 있는 소설입니다.

202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 출간되었습니다. <오늘의 작가상>이 10년 만에 공모제로 돌아온 첫 해, 그 뜻깊은 수상작은 2000년생 작가 윤강은의 데뷔작 『저편에서 이리가』입니다.
330여 편에 달하는 투고작 가운데 『저편에서 이리가』는 단숨에 심사위원을 사로잡은 단 한 편의 작품이었습니다. 흡인력 있는 서술과 탄탄한 전개, 저마다 개성과 생명력이 넘치는 인물들은 물론, 디스토피아, 판타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능숙하게 활용해 현실감 있고 입체적인 세계로 그려 낸 '한반도'가 특히 인상적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저편에서 이리가』가 보여 준 '한반도'에는 정치적·역사적 갈등에 붙들린 지금 우리의 관점을 바꿔 새로운 질문을 품게 할 만큼 과감하고 이채로운 '미래의 시선'이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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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 출간되었습니다. <오늘의 작가상>이 10년 만에 공모제로 돌아온 첫 해, 그 뜻깊은 수상작은 2000년생 작가 윤강은의 데뷔작 『저편에서 이리가』입니다.
330여 편에 달하는 투고작 가운데 『저편에서 이리가』는 단숨에 심사위원을 사로잡은 단 한 편의 작품이었습니다. 흡인력 있는 서술과 탄탄한 전개, 저마다 개성과 생명력이 넘치는 인물들은 물론, 디스토피아, 판타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능숙하게 활용해 현실감 있고 입체적인 세계로 그려 낸 '한반도'가 특히 인상적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저편에서 이리가』가 보여 준 '한반도'에는 정치적·역사적 갈등에 붙들린 지금 우리의 관점을 바꿔 새로운 질문을 품게 할 만큼 과감하고 이채로운 '미래의 시선'이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편에서 이리가』는 대멸종 시대를 맞은 먼 미래의 한반도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러나 그 미래는 우리의 상상과 사뭇 다릅니다. 모든 자원이 고갈되고 기술이 도태한 한반도는 우리의 먼 과거와 더욱 닮은 모습이에요. 하나의 국가는 사라지고 '온실 마을', '한강 구역', '압록강 기지'라는 세 개의 작은 구역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정보와 물자는 개 썰매로 운송하며, 생산물은 모두 사람의 노동으로 얻지요. 세 개의 구역은 각각 식량, 철, 병력을 생산하고 교환하며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이런 전략적인 평화 상태는 전쟁으로 곧 산산이 부서집니다.
모든 사회와 규칙이 무너져 내린 순간. 정해진 구역과 경로를 이탈한 다섯 사람이 설원 한가운데를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모두 경계 안팎을 오가거나 경계 위에 서 있던 자들로 개 썰매를 타고 구역과 구역 사이를 오가는 짐꾼 '유안'과 '화린', 한반도 최전방 경계를 지키는 군인 '기주'와 '백건', 국경을 넘은 또 다른 군인 '태하'입니다. 미래는 오직 멸망만이 남은 듯한 그때, 이들은 내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각자의 희망을 꺼내 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이끄는 대로 달려갑니다. 유령처럼 희미한 생명의 기척을 따르는가 하면, 까마득한 공존의 가능성을 찾아 헤맵니다. 서로의 우정을 굳게 믿으면서요.
『저편에서 이리가』는 냉혹하고 위험한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내내 펼쳐지는 소설입니다. 새하얀 설원의 차가운 바람,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보라. 그 가운데 찰나의 어느 평화롭고도 조용한 밤, 작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애틋하게 들려옵니다. 또한 『저편에서 이리가』는 경계를 넘어서는 이야기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사회가 다른 이들이 차이를 넘어 우정을 쌓고, 동물이라고는 가축밖에 남지 않은 세상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자유로운 숲을 꿈꿉니다. 『저편에서 이리가』를 따라, 생명이 없는 땅을 뒤흔드는 낯선 하울링을 따라, 우리도 그 연결을 함께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계 없이 넓어지는 공존의 땅을 말이에요.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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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부산에서 힐마 아프클린트의 전시 '먼저 온 미래'를 보았습니다. 스웨덴의 신비주의자인 이 화가는 영적인 직관을 바탕으로 추상화를 그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 속 오컬트에 젖어드는 동안 왜 예술을 하는 여성은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신비주의에 매료되기도 하는지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영적인 것과 비영적인 것 사이, 신비와 비신비에 관한 시집 두 권을 놓아봅니다. '비신비' 연작을 써온 <가능세계>의 백은선은 '더는 새롭거나 신비로울 것이 없는 세계와 타자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는' 비신비의 시를 발표합니다. 타로 카드에서 대비밀, 혹은 메이저 아르카나로 알려진 22장의 카드 중 6번 Lovers 카드에서 제목을 빌린 시집, 최승자의 <연인들>과 함께 한국시, 여성시인의 시에서 신비가 무엇인지 계보를 의식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