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은의 세 번째 시집. 누워서 기하학적인 벽지 무늬를 골똘히 들여다보면 동그라미가 다 같은 동그라미가 아님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 순간들처럼 임지은의 시들은 누워있는 말을 골똘히 들여다보며 이 말들을 새롭게 알아차린다. (<프랑스 댄서>라는 시에서 화자가 말한 '시집'poetry은 구글 번역을 거치며 marry로 오역된다. 이 오역을 전복으로, 신의 개입으로 해석하는 것은 시의 일이다.)
4시 15분, 소설 속으로 들어간 아내는 '꿈은 지독한 현실'이라는 문장 위에 누워 있었다
<숨바꼭질> 부분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이 행과 행 사이 고랑에 마치 시 한 줄처럼 누워 있는 장면은 초현실적이다.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높은 책장 끄트머리에 꽂힌 유행이 지난 소설책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슥 누우면 들키지 않고 이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2024년 7월 10일 국가에서 이런 안전안내문자를 보내주었다.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하여 가급적 야외 활동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주말은 대체로 집에 누워서 보냈다. 여름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계절.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라는 임지은의 시집 제목처럼 이 여름방학을 보내고 싶다. 일어나는 것이 기상인지 발생인지 실없이 고민하면서...
여름을 만난 문장
14쪽
컵과 얼음이 만나서 완성되는 여름_「사물들」
15쪽
식물도 특별히 살고 싶은 곳이 있을까?
한여름에 얼음을 껴안고 있는 펭귄은 남극을 기억할까?_「식물원에 와서 쓰는 동물원 시」
25쪽
보통이 보통을 넘어서고 있는 시대에는 열심이 기본값이 된다 그렇게 보통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사이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을 한 개로 줄이기 위해 _「기본값」
53쪽
주머니는 외투에 달려 있고 외투를 사랑하게 되면 외투를 입을 수 있는 날씨를 사랑하게 되고 날씨를 사랑하게 되면 내일을 기다리게 되는 연쇄 작용_「반려돌」
83쪽
그래도 제일 좋은 방법은
물 묻은 슬리퍼처럼 연거푸 벗겨지는 것
울음에서 첨벙첨벙 걸어 나오는 것_「수중 생활」
93쪽
엄마는 낮에 자면 밤잠을 설칠 거라고 하지만 낮잠이 좋다 바삭한 생각을 덮고 눈을 감는 게 좋다 _「자는 동안」
다음 여름 책은 7월 31일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