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6일 : 33호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소설
<사랑의 생애>, <모르는 사람들> 등의 묵직한 작품을 발표해온 이승우의 단단한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잘 지은 집의 기둥처럼 세워진 문장은 빡빡하게 짜인 골조를 만져보는 듯합니다. 다른 소설보다 분량이 짧은, 소설집에 실린 첫 작품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는 오프닝 무대처럼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모인 손님을 맞습니다.
이 작품은 부조리합니다. 물이 쏟아지고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난 깡마른 여자가 길을 막고 이 물로 청소를 합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을 여자를 연행하려 하고(당신이 죽으면 우리도 골치 아파요. 몇번을 말해야 돼요? 그러니 제발 좀 이러지 맙시다.), 한 남성은 그런 그들에게 항의합니다. (당신들은 무례합니다. 그분을 풀어주세요.) 목소리와 목소리가 부딪치는 자리에서 첨예한 윤리적 질문이 생겨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대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길을 막고 민폐를 끼칩니다. 아마 이 별안간 쏟아진 물이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닐 듯하고, 그의 민폐 역시 의도한 바는 아닐 듯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을 두고 나의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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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애>, <모르는 사람들> 등의 묵직한 작품을 발표해온 이승우의 단단한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잘 지은 집의 기둥처럼 세워진 문장은 빡빡하게 짜인 골조를 만져보는 듯합니다. 다른 소설보다 분량이 짧은, 소설집에 실린 첫 작품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는 오프닝 무대처럼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모인 손님을 맞습니다.
이 작품은 부조리합니다. 물이 쏟아지고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난 깡마른 여자가 길을 막고 이 물로 청소를 합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을 여자를 연행하려 하고(당신이 죽으면 우리도 골치 아파요. 몇번을 말해야 돼요? 그러니 제발 좀 이러지 맙시다.), 한 남성은 그런 그들에게 항의합니다. (당신들은 무례합니다. 그분을 풀어주세요.) 목소리와 목소리가 부딪치는 자리에서 첨예한 윤리적 질문이 생겨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대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길을 막고 민폐를 끼칩니다. 아마 이 별안간 쏟아진 물이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닐 듯하고, 그의 민폐 역시 의도한 바는 아닐 듯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을 두고 나의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남자의 목소리로 한 소설이 닫히며 소설집이 시작됩니다. “낯선 사람이 문득 어디서 왜 오는지, 왜 와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 그럴 때 현재가 어쩌겠어요?(25쪽)” 이 목소리가 숙고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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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쪽 : 너는 너의 말을 계속하고 나는 나의 말을 계속한다. 나의 말은 말이 아니고 그저 소리이거나 신음일 뿐이다. 나는 너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말이 아닌 소리를 계속 낸다. 너의 목소리를 묻으려고 끙끙 앓는 소리에 불과한 소리를 낸다. 나는 필사적이다. 필사적이지 않아도 되는데 필사적인 사람은 없다.
12월 7일 목요일 4시 조해진 작가가 알라디너TV에 방문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이 시간에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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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겨울을 지나가다>의 주인공 정연은 ‘효녀’라는 어른들의 말에 부담을 느끼는데요, 사랑하면서도 서로 어렵기도 한 이런 관계가 이 어려운 겨울을 나는 K 딸들의 보편적인 마음일 듯해 공감이 됐습니다.
A :
완벽하게 선한 효심이란 불가능하고 모성애처럼 오히려 강압적으로 우리를 짓누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있죠. 특히 엄마를 향한 딸의 마음은요. 애틋하고 미안해서 잘해주고 싶지만 또 그렇게 하지 못해 돌아서서 후회하고, 그런 반복은 정연뿐 아니라 저와 다른 딸들도 똑같이 밟는 반복일 거예요. 엄마가 떠난 뒤 정연이 배운 새로운 슬픔이 결핍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건, 아무리 슬퍼해도 그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이 남아서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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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겨울을 지나가다>의 주인공 정연은 ‘효녀’라는 어른들의 말에 부담을 느끼는데요, 사랑하면서도 서로 어렵기도 한 이런 관계가 이 어려운 겨울을 나는 K 딸들의 보편적인 마음일 듯해 공감이 됐습니다.
A :
완벽하게 선한 효심이란 불가능하고 모성애처럼 오히려 강압적으로 우리를 짓누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있죠. 특히 엄마를 향한 딸의 마음은요. 애틋하고 미안해서 잘해주고 싶지만 또 그렇게 하지 못해 돌아서서 후회하고, 그런 반복은 정연뿐 아니라 저와 다른 딸들도 똑같이 밟는 반복일 거예요. 엄마가 떠난 뒤 정연이 배운 새로운 슬픔이 결핍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건, 아무리 슬퍼해도 그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이 남아서일 거예요.
Q :
겨울의 문 앞에서, 조해진 소설가가 추천하고 싶은 겨울나기 방법이 있다면 독자에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저는 겨울에 뱅쇼를 즐겨 마십니다. 카페나 술집에서 사 마시기도 하고 과일과 시나몬 막대, 설탕을 넣어 끓여 마시기도 해요. 15년 전 유럽에 갔을 때 뱅쇼를 처음 마셨는데, 카프카 생가를 방문했을 때였죠. 그래서인지 지금도 뱅쇼를 마시면 체코에 와 있는 기분이 들곤 해요. 그리고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두고 누워 있기, 이것도 제가 참 좋아하는 겨울나기인데요. 물론 오래 지속되지는 않죠. 아시다시피 고양이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인간의 기쁨을 허락하지는 않으니까요.
Q :
이 계절을 통과하고 난 후 작가로서 도달하고 싶은 지점, 소설가로서의 활동 계획이나, '겨울을 타고 다다르고 싶은 경로' 등이 궁금합니다.
A :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해도 다시 살아갈 힘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저는 충분히, 과분할 정도로 사랑을 받아온 것 같아요. 이렇게 남은 삶도 제 소설을 사랑해주는 독자분들과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언제까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늘 걱정하지만 그런 걱정이 약간 무색하게도 20년 가까이 써왔네요. 그래서 활동 계획은 ‘지금처럼’ 혹은 ‘이대로라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겨울을 ‘기차나 비행기, 썰매나 파도, 혹은 아주 커다란 새처럼 타고’(『겨울을 지나가다』 ‘독자에게 쓰는 편지’의 표현) 다다르고 싶은 곳은 여전히 읽고 쓰면서 성장하는 사람의 자리, 그뿐입니다. 그사이 여행은 다녀올 것 같아요. 말을 극도로 하지 않는 여행 한 번, 그리고 국경 밖 어느 도시로의 여행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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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가 겨울을 나는 방법 중 하나로 뱅쇼를 권해주셨는데요, 겨울 간식으로 뱅쇼를 택한 소설가가 또 한 분 계십니다. 박연준, 김성중, 정용준, 은모든, 예소연, 김지연 작가가 참여한 겨울 간식 테마소설집 수록작에서 박연준 작가는 영영 놓아버린 관계를 더듬어보며 뱅쇼를 마십니다.
가슴속에 현금 3천원을 품고 다녀야 할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다코야키 트럭이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화요일엔 어쩐지 이번 주를 놓치면 또 한 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뱅쇼, 귤, 다코야키, 만두, 호떡, 유자차. 환하고 묵묵한 날을 데워줄 이야기가 출간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저는 극단 신세계의 오랜 팬입니다. 그들의 다른 시선과 목소리,
이상한 표현 방식을 좋아해요. ‘다름’과 ‘이상함’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팬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죠. 무엇보다 신세계의 공연을 즐기려면
무대 위 배우만큼이나 객석의 관객도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그 상태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도 이어집니다. <시사IN> 기자이자 『슬픔의 방문』을 쓴 장일호 작가의 리뷰처럼 “ 극단
신세계의 작품들은 그렇게 내가 돌아온 자리가 어떤 폐허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직면하게
만 ” 들기 때문입니다.
『생활풍경』은 극단 신세계의 첫 희곡집입니다. 희곡집 출간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요. 온전히 텍스트로 마주하는 작품이 공연의 강렬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하는 걱
정이 가장 컸습니다. 다섯 편의 희곡을 꼼꼼히 읽는 동안 걱정이 놓였던 자리에는 어느새
놀라움이 들어앉았습니다. 희곡 한 편 한 편마다 젊은 창작자들이 세상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노력한 모든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
고 읽고 써내려간 극단 신세계의 작품들은 희곡 형식으로 쓰인 인문서이고 사회과학서입니
다. 너무 거창한가요? 그렇다면 희곡집 『생활풍경』을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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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저는 극단 신세계의 오랜 팬입니다. 그들의 다른 시선과 목소리,
이상한 표현 방식을 좋아해요. ‘다름’과 ‘이상함’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팬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죠. 무엇보다 신세계의 공연을 즐기려면
무대 위 배우만큼이나 객석의 관객도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그 상태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도 이어집니다. <시사IN> 기자이자 『슬픔의 방문』을 쓴 장일호 작가의 리뷰처럼 “ 극단
신세계의 작품들은 그렇게 내가 돌아온 자리가 어떤 폐허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직면하게
만 ” 들기 때문입니다.
『생활풍경』은 극단 신세계의 첫 희곡집입니다. 희곡집 출간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요. 온전히 텍스트로 마주하는 작품이 공연의 강렬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하는 걱
정이 가장 컸습니다. 다섯 편의 희곡을 꼼꼼히 읽는 동안 걱정이 놓였던 자리에는 어느새
놀라움이 들어앉았습니다. 희곡 한 편 한 편마다 젊은 창작자들이 세상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노력한 모든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
고 읽고 써내려간 극단 신세계의 작품들은 희곡 형식으로 쓰인 인문서이고 사회과학서입니
다. 너무 거창한가요? 그렇다면 희곡집 『생활풍경』을 펼쳐보세요.
제철소는 앞으로도 극단 신세계의 희곡들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우선
내년 상반기에 두 번째 희곡집 『그러므로 포르노』를 출간할 계획입니다. 표제작인 「그러
므로 포르노」를 비롯해 관객과 평단의 많은 찬사를 받은 「공주들」 「파란나라」 등이 수
록될 예정입니다. 그들의 다른 시선과 목소리가 낯설게 다가오나요? 이상한 제목과 내용에
망설이시나요? 장담컨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그 감각들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거
라 믿습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그렇다면 희곡집 『생활풍경』을 펼쳐보세요.
- 제철소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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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차가웠던 조선의 왕 숙종이 금빛 털을 지닌 고양이 '금손'에게만은 따뜻한 '집사'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조선의 왕 숙종은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친다. 왕은 그 고양이를 어여삐 여겨 곁에 두었고, 고양이 또한 왕을 잘 따랐다.'는 문장에서 이런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걷기왕>, <오목소녀>를 연출하기도 한 소설가 백승화가 안전가옥 프로덕션을 통해 이 '냥줍' 이야기를 퓨전 사극, 추리활극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혜진의 소설 <경청>에서 상담전문가 임해수는 방송에서 한 날카로운 코멘트 이후 세상에서 '캔슬'을 겪게 됩니다. 의지로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가 병든 길 고양이 순무와 그 고양이를 돌보는 초등학생 황세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의 세상이 달라질 준비를 시작합니다.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