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는 SF의 프레임을 전복시킨 작가로 꼽힌다. SF는 인간의 상상력을 아무 제약 없이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어야 하는데도, 마치 백인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된 채 성별과 인종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뽐냈다. 하지만 옥타비아 버틀러는 그 장벽을 딛고 올라가 우뚝 섰다. 1976년에 첫 작품 <패턴마스터>를 발표한 이래,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쥐며 자신만의 독보적 위치를 확립한 것이다. ‘흑인 여성’이라는 태생적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인종과 소수자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작품에는 어떤 백인 작가도, 어떤 주류 작가도 감히 알지 못하던 세계가 담겼고, 작가 자신이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였기에 젠더 문제를 작품 속에 완벽하게 녹여냈다. 버틀러는 2006년 돌연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라 불리며 칭송받고 있다.
특별판 표지 제작 과정 - 이경희 디자이너
흑인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등 기존 버전에서 돋보인 ‘서사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그리고 위대한 작가와 그의 두 작품이 전해준 강렬함을 ‘컬러’로 다시 빚어내기. 이 두 가지가 이번 특별판 디자인의 화두이자 모토였습니다. 미래적이면서도 현대적 느낌을 전할 수 있도록 형광이 강조된 컬러를 표지부터 본문까지 일관되게 부여했고, 최대한 심플한 힘이 두드러지도록 무정형의 형태를 선택했습니다. 장편소설인 《킨》과 단편집인 《블러드차일드》, 각기 다른 매력의 두 책이 유동적 관계로 느껴질 수 있게 연관성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새 옷, 새 느낌으로 우리 시대의 SF 명작을 다시 만나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