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신촌점] 서가 단면도
|
대기업 사원에서 요리사로, 글 쓰는 셰프에서 칼럼니스트로, 작가 정동현이 써내려간 한 그릇에 담긴 사람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 살기 위해,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지만, 그 속에는 그곳의 공기, 내음, 분위기, 사람들까지 수많은 순간과 장면이 담겨 있다. 같은 음식을 두고 저마다 다른 추억을 지닌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돈가스에서 학창시절 친구를, 첫 데이트를 했던 연인을 떠올리지만, 작가는 이제야 이해하는 아버지의 못다 한 속내를 떠올린다.
이 책은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만들기 위해 견디고 버텨야 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왜 우리가 인스턴트 라면 하나에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지 작은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박찬일 셰프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읽어서 군침 도는 글도 좋지만, 슬픔이 고이는 글도 좋다고 생각한다. 정동현은 두 가지를 같이 한다." 책을 덮고 나면 허기진 배를 채울 음식보다 시절을 함께 지나온 그리운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많은 것이 그리워질 것이다. 프롤로그 작은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 귀공자처럼 생겨서 생전 손마디 굵어질 일은 해보지 않았으며, 2층 자기 방에서 엄마가 깎아다 주던 과일 먹으며 공부한 줄 알았다. 물론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모든 것은 내 상상이었다. 물가 살벌한 영국에 유학 갔다 왔다니, 집에서 팍팍 밀어주는 도련님인 줄 아는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 알고 보면, 그는 슬픔을 아는 소년이었다. 결핍에 몸서리쳐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하 출입구를 아는 친구였다. 그는 그 얘기를 순전히 음식을 빌려서 시작한다. 어묵과 식빵과 유니짜장과 비빔국수와 대패 삼겹살 같은, “당신이 정말 이런 걸 먹었어”라고 묻게 되는 그런 생존의 음식들로서. 바닥의 음식으로 그는 삶을 다져왔고, 다시 그것이 글이 되었다. 그래서 차지고 진득하다. 오랫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이들이 있다. 지루하지 않게, 더러는 침 고이는 상상력을 충동질하면서, 때로는 공감의 전율 같은 걸 불러오는 솜씨로. 그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글로도 그게 가능하구나. 읽어서 군침 도는 글도 좋지만, 슬픔이 고이는 글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두 가지를 같이 하고 있다.
나는 정동현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좋은 글은 사람에 대해 사무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음에 만나면 꼭 한마디 해줄 것이다.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 대포 한잔해.”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2019년 7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