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혁 (문학평론가) : 시 「피는 꽃」에 따르면 꽃은 생살과 같은 꽃 이파리를 찢으며 피어난다. 시인은 그렇게 “모두는 스스로를 찢어” 꽃을 얻는다고 한다. 미아로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이 주는 두려움 속에서 메스를 빌려서라도 자신의 생살을 찢으며 사랑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시인은? 시인에게 꽃은 시다. 그 시는 사랑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에게 ‘사랑-시’는 “너덜너덜하게 해”질 정도로 자신의 생살을 찢으며 이루어진다. 한혜영 시인 역시 “천 갈래 만 갈래 나를 찢어서/시를 얻고 사랑을 얻었던” 것, 그 산물이 바로 이 시집이다.
시인은 바람의 말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너머의 죽음으로 다가가며 타오르고 있는 석양 속의 “그을린 눈과 귀를 건져 올리”면서, “천상에 닿”을 수 있는 “높은 다짐의 사다리를 세”우고자 한다. 이 석양의 불속에서 시인은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고 말을 들으며 시라는 사다리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타오르며 사라지고 있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새로운 사랑을 하리라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혜영 시인은 노을의 세계 앞에서, 새로운 사랑의 기대로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뜨거운 시를 쓰기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