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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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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단순히 맛있는 식당의 소개가 아니라, 그 음식 맛의 중심이 무엇인지 기준을 세우고, 왜 맛이 있는지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 때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신간 <미각의 제국>은 맛집 소개도 아니고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음식 사진조차 없지만 이 책 안에는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과하지 않은 양념이 배추김치의 개운한 산미를 내는 비법임을 밝히고, 삼계탕이 아니라 계삼탕이 바른 이름인 까닭을 설득한다. 또한 고기구이 맛에서 열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같은 재료를 쓴 어리굴젓과 진석화젓이 어떻게 다른 음식인지를 밝힌다.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시를 읽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예술의 한 감각인 것처럼, 인간이 느끼는 감각은 모두가 평등하다. 미각을 단지 세 치의 혀로 느끼는 쾌락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런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1 물 아름다워야 한다 : 음식은 셀 수 없이 많다.
같은 음식 재료라도 누가, 어디서, 언제 만들었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런 음식들을 일관되게 말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음식 얘기는 경험과 발품, 시간이 필요하다. 젊었으면 경험이 부족하니 객관성이 부족하고, 나이가 들었으면 미각이 떨어지니 옛 기억으로만 버무린다. 황교익은 나이도 적당하고 경험도 많다. 한창 때이니 쉬지 말고 먹고, 쉬지 말고 써 댔으면 좋겠다. 원두막에서 열무김치를 안주 삼아 달지 않은 막걸리를 황교익과 마시고 싶다. 한 되가 부족하면 두 되. 두 되가 부족하면 세 되. 취해서 집에 갈 힘이 없으면 원두막에 쓰러져 귀뚜라미 소리에 묻혀 밤을 보내고 싶다. : 황교익 선생은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손상되지 않은 땅의 향기를, 땅의 소리를, 땅의 사랑을, 땅의 전설을, 땅의 맛을 많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세심한 관찰과 섬세한 언어는 잃어버리기 쉬운 귀하고 작은 보석을 챙겨 주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사랑스럽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산뜻한 바람이 일어난다. 시대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맛의 언어가 오늘 가슴을 툭툭 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느낌이 어디 나뿐일까. 하늘이 주는 감동, 땅이 끌어당기는 친근함, 작은 모래 한 알이 별들의 역사인 것처럼, 생명이 주어진 곡식 한 알 한 알에 담긴 전설을 황교익은 가슴으로 담아서 전하는 것 같다. 글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면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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