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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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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작가 하성란이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계간 『자음과모음』에 2008년 가을호부터 2010년 봄호까지 연재된 이 작품은, 1987년 일어난 전대미문의 참사인 ‘오대양 사건’을 모티프 삼아 쓰여진 소설이다.
소설은 한 시멘트 공장 기숙사에서 24명(여자 21명, 남자 3명)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자의에 의한 타살로) 사망한 사건을 중심에 놓고 있다. 사건은 전모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과 추측만을 남기고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짜 이유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도 많은 데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얽히고설킨 비밀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터라 자칫 복잡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단 한 치의 오류나 불필요한 설명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탄탄한 플롯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고, 그 덕에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속도감과 긴장감을 철저히 유지한다. : 분뇨, 오수, 짐승의 사체, 과일향의 냄새들 속으로 한 발 들여놓자, 고약한 숙취에서 깨어나듯 머릿속이 기분 좋게 맑아졌다. 젊은 여성들의 노동이 빚어내는 땀내와 거침없는 사랑, 우리 시대의 세태에 풍부한 물질성을 부여하는 문체, 그로 인해 소설에 대한 나의 오랜 갈망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결혼 의식도 없이 사랑을 나누고, 상대 남자도 모르게 아이를 배고 낳아서 기르는 젊은 ‘엄마’들의 자족적인 공동체는 나의 내면에 오래 잠들어 있던 인간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강하게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 그녀들의 소박한 꿈이 그토록 위태로워 보이는 까닭은 이 시대의 결혼제도와 성 풍속이 그만큼 타락한 탓이리라.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동아일보 2010년 8월 13일자 잇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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