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탁환과 과학자 정재승이 함께 쓴 장편 소설. 소설가와 과학자의 몽상과 지식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2049년이라는 30년 후의 서울을, 시대를, 그리고 인간을 생생하게 직조해 낸다. 2049년, 서울 인류가 자연이 준 몸과 마음을 버리고, 기계와 몸을 섞으며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은 자의 뇌에서 단기 기억을 추출해 내 영상으로 재현해 내는 장치인 스티머스, 이 스티머스를 이용해 범죄의 실마리를 찾는 서울 특별시 보안청 특수 수사대, 지상 최강의 로봇을 가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 '배틀원', 이 배틀원을 둘러싼 자본가들과 과학자들의 경쟁심과 성취욕, 몸에서부터 자연까지 모두 기계화되어 오히려, 인공 환경이 더 자연스러운 유비쿼터스 도시 시스템.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소설가와 과학자는 고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서울 뒷골목에서 뇌를 탈취당한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을 추적하던 서울특별시 보안청 특수 수사대 검사 은석범은 이 사건이 죽은 이의 뇌에서 단기 기억을 추출해 사건의 실마리를 쫓는 자신들을 노린 연쇄 살인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은석범은 지상 최강의 로봇을 가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를 둘러싼 음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1권
등장 인물 소개
1부 나는 장님이 되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남은 눈동자처럼 고독하다
2부 2월, 잉크를 만지면서 눈물을 흘려라!
3부 오,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
4부 나는 후회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울지도 않으리
5부 태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작가의 말 김탁환
2권
등장 인물 소개
6부 나는 천 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갖고 있다
7부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굶주려 있는데
8부 아침이 오고 밤은 사라진다
9부 나의 키스는 닻을 내리고
작가의 말 정재승
김탁환 (지은이)의 말
융합, 우정, 미래로 향한 글쓰기
<백탑파 시리즈>를 준비하고 집필하면서 30대를 보냈다. 10년 동안 내가 그들에게 배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넓고 깊은 공부! 그들은 농학, 수학, 천문학과 문학, 역사, 철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꽃이든 비둘기든 무예든 차별 없이 관심을 쏟았다. 최근 들어 융합 교육이니 ‘다빈치 형 인간’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지만, 200년도 훨씬 전 이 땅에 살다 간 백탑파야말로 다양한 ‘앎’을 누비며 삶의 근본 문제들을 천착한 선각자들이었다. 또 하나는 각별한 우정!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김홍도, 김영! 이 눈부신 천재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으면서도 서로를 시기 질투하지 않고 힘을 합쳐 정조 시절의 문화 부흥을 일으켰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너무나도 가볍게 뛰어넘어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없고, 경쟁보다는 더불어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환경에서 자라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재승 교수님과 나는 정말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별이 없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과학과 이별하였고, 내신 성적과 학력고사 점수에 따라 석차를 매기는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뒤, 우여곡절 끝에 소설가가 되었고, 마흔 살을 넘겼다. 늦었지만, 이 사회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는 바뀌고 싶었다!
4년 남짓 내게 익숙한 것들을 두고 낯선 곳으로 갔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미적분을 만나고 확률 통계에 울고 공학자와 점심을 먹고 과학자와 자정을 넘겨 토론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이 더 많아질 때의 아득함이여! 아득함은 아득함대로 두고 조금씩이나마 ‘이과’라고 통틀어 멀리하던 문화와 사귈 기회를 얻었다. 자연대나 공대 출신의 제자들을 지도하느라 밤을 새우기도 하고, ‘창조의 비밀’이라고 숨겨 왔던 예술가들의 창작 방법들을 객관화하여 논문을 쓰느라 낑낑대기도 했다.
희한한 이름의 ‘랩(LAB)’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다가 놀라운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이 ‘과거’의 문제를 연구하여 ‘현재’의 개선책을 찾는다면, 과학자나 공학자의 시선은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10년 후에 상용화될 전기 자동차, 20년 후에 시판될 약, 30년 후의 유비쿼터스 도시, 50년 후의 우주선! 그 비밀을 알고 나서부턴 나는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혹자는 나를 ‘역사 소설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그 호칭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냥 소설가이고, 내 작품을 들여다보면 고백, 연의, 추리, 여행기, 판타지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역사라고 두루뭉수리 덮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본질이 ‘시간’에 있다고 믿으며, 그 시간의 다양한 층위에서 몽상하기를 즐기는 이들을 ‘역사 소설가’라고 부른다면, 앞으로도 크게 괘념치 않을 작정이다. 정재승 교수님과 함께 공동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DISCO(Digital Storytelling and Cognition)’ 랩에서, 그 새벽에 이런 몽상이 춤을 추었다. 과거만 역사가 아니라 미래도 역사다. 미래를 그려내기 위해선 과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왕 역사 소설가란 소릴 듣고 있으니, 어디 미래 역사 소설을 써 볼까?
과학이 지닌 이야기로서의 가치를 나보다 먼저 발견한 이가 정재승 교수님이다. 일찍이 과학으로 콘서트를 꿈꾸셨으니까. 함께 과학 소설을 쓰자는 데는 쉽게 합의했지만, 집필에 돌입하기까진 1년을 더 준비해야 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다른 일들이 많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소설가와 소설을 좋아하는 과학자의 공동 집필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 선례가 없기도 했다. 다행히 그 1년은 함께 랩을 꾸려 가며 생활 속에서 서로를 알아 나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 가슴엔 #눈먼 시계공##이란 작품이 촛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시간만 나면 서로 은밀히 속삭였다. 빨리 시작해야 되는데요. 언제가 가장 좋을까요? 그러다가 신문 일일 연재의 기회가 왔고 우린 겁도 없이 이 기회를 붙잡았다.
집필은 즐거움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일정 분량을 채워 나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단어 문장 문단 단위로 ‘융합’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 좋은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문명의 이기들을 적극 이용했다. 국내외 출장 중에도 우리는 낮밤 없이 연락하며 함께 몽상을 키우고 이야기를 다듬었다. 우리가 큰 문제없이 연재를 마친 것은 서로의 일상을 이해한 뒤 집필에 임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만을 위해 모였다면 소설가는 과학자를, 과학자는 소설가를 괴물 보듯 했으리라. 그러나 정 교수님은 내가 마음껏 몽상의 날개를 펴도록 내버려 두었고, 또 나 역시 정교수님의 합리적인 지적을 기꺼이 받아들여 고치고 또 고쳤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단 하나에 인문학적 교양과 과학적 지식이 멋지게 뒤섞인 여름밤에는, ‘아, 박지원과 김영, 이덕무와 백동수도 나처럼 즐거워한 밤이 있었겠구나!’ 여기기도 했다. 벗으로 인해 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 또 나로 인해 벗이 한계를 넘는다는 것.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으랴. 벗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중요한 스승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눈먼 시계공>이 완성될 때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과 따듯한 격려를 받았다. 몽상을 멋진 그림으로 옮긴 김한민 작가 덕분에 소설이 더욱 풍성해졌다. 멋진 그래픽 노블, 기대할게요.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SF 소설을 만들어 보라고 적극 권유하신 이광형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자료 조사를 도와준 DISCO 랩 학생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스친다. 얘들아! 흩어져 봤자 이야기‘판’ 위가 아니겠어? 다시 만나 함께 이야기 만들 날이 꼭 올 게다. 이원태 이엑스스타 영화 사업 본부장도 첫 구상에 동참하여 힘을 보탰다.
나는 이 작품을 끝으로 KAIST를 퇴직하고 오래전부터 꿈꾸던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학교는 떠났지만, 그 곳에서의 인연을 바탕으로 탁월한 과학자들과의 협업은 계속 이어 가려 한다.
졸업 작품을 낸 심정이다. 이제 첫 삽을 떴을 뿐이다. 도전하고 싶은 ‘과학’ 이야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