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난도 친필

지난번 이사 때 아내가 내다 버린 것을 쓰레기장까지 뒤져서 다시 찾아올 정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출장이든 휴가든 외국에 갈 때에는 그 나라 역사책을 꼭 한 권은 읽고 간다. 그래야 관광이 여행이 되는 까닭이다. 외국 역사 단행본을 여럿 읽어봤지만, 단언컨대 이 책보다 한 나라 문화의 고갱이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요약한 책은 없었다.
오랫동안 품어온 로망이 있다. 모든 일상을 뒤로하고 어디 태국 산간 지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책 읽고 책 쓰는 일 말고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것. 나이 들어가면서 책임, 의무, 규범 같은 단어들이 숙변처럼 몸 안에 쌓여가면서, 그 로망은 잊혀가면서 단단해졌다. 어느 날 이 책을 읽고 그 잊혀졌던 환상이 열망으로 되살아나 얼마나 나를 신열에 앓게 했던가! 이 책은 40대 이상 중년에게는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농담)
대학원 학생들에게 평론을 자주 읽으라고 권한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날카롭게 분석해 정확하게 글 쓰는 일인데, 잘 쓴 평론은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연습할 수 있는 좋은 학습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신형철 평론가의 글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모나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이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적확한 문장 속에 담겨 있다. 신 교수의 글 중에서도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비평의 대상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평론 읽기는 원전 텍스트를 읽었을 때 의미있는 것인데, 여기 실린 영화 몇 편은 누구나 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가 격렬한 질투심을 느낀 경험이 있다. 나도 소위 학자인데, 수업 시간에 비슷한 내용을 자주 강의했었는데, 나는 왜 이런 책을 쓸 수 없었을까? 방대한 인용이 자신의 가설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이토록 논리적인 하나의 탑을 쌓다니! 어떠한 공부를 하든, 그것이 인간과 관련이 있는 주제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책이다.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모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 짧은 한 편에 다 있다. 그리움과 사랑으로 시작해, 호사와 허영이 마음 들뜨게 하고, 고귀함과 세속 됨이 엇갈리며, 배신과 복수가 가로지르다가, 끝내 허무가 있다. 소설을 많이 못 읽은 탓이겠지만, 이보다 완벽한 소설을 알지 못한다.
종종 시를 읽는다. 보이는 사물 너머의 본질을 보는 예민한 시선과 시어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내재율을 배우고 싶어서다. 스테이플러, 주유소, 세탁기, 버스, 기차…… 일상에서 늘 만나는 사물이 시인만의 관찰을 만날 때 영혼으로, 그리움으로, 또 울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상과 이미지가 호령하는 시대에도 시는 여전히 힘이 세다는 걸 보여주는 시집이다.
종종 시를 읽는다. 보이는 사물 너머의 본질을 보는 예민한 시선과 시어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내재율을 배우고 싶어서다. 스테이플러, 주유소, 세탁기, 버스, 기차…… 일상에서 늘 만나는 사물이 시인만의 관찰을 만날 때 영혼으로, 그리움으로, 또 울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상과 이미지가 호령하는 시대에도 시는 여전히 힘이 세다는 걸 보여주는 시집이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은퇴를 한다. 새벽6시에서 밤12시까지, 휴일도 휴가도 없이, 혼신을 다해 신명을 바쳤던 회사에 내일부터는 출근할 필요가 없다, 아니 갈 수가 없다. 퇴직 다음날 새벽 가장 절실하게 밀려들어오는 감정은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아쉽게 물러나는 벗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모두 좋아한다. 신기한 일이다, 이 책을 선물받았던 이들은 거의 모두 활기찬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투자에 열심이다. 19살 대학 1학년 학생이 학교 엘리베이터에서 비트코인이 올랐다거나 엔비디아가 떨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걸 엿듣는다. 수많은 투자유튜브나 투자책이 있지만, 기왕 읽을 것이라면 이 책을 읽으라 하고 싶다. 젊은 투자자일수록 긴 시간 복리의 힘을 믿어야 하고, 어떤 투자수익률도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보다 높지 못한다는, 오랜 잔소리를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청년은 줄었는데,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는 더 많아졌다. 웹소설 플랫폼에 올라오는 저 봇물같은 글들을 보라. 그대는 왜 작가가 되고 싶은가? 행여라도 시간 활용이 자유로우니까, 한 번 뜨면 큰 돈을 벌 수 있어서, 혹은 멋있어 보여서 그런다면, 마음 잘 못 먹었다. 크고 작은 액정화면이 독자의 시간을 온통 빼앗아가버린 이 황홀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작가 지망생은 이 책을 보라. 사람을 멀리하고, 밥을 제때 꼬박꼬박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잠은 지나치리만큼 충분히 자라는 충고와 만난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조언이다.
시집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언제든 한 번은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구글문서함에 옮겨 적어 놓는다. 대체로 시집 한 권에 대여섯 편 정도인데, 기형도의 시는 적다 보면 시집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 기적적이었다" 같은 절창을 만날 때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횡경막까지 닿을 듯 들이킨 숨을 토해낸다. 정말 오늘 하루야말로 기적적이지 않았던가, 하면서 말이다.
단행본이 낚싯대라면 잡지는 그물이다. 책 한 권으로 우리는 특정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좁고 깊게 만나지만, 잡지에서는 여러 사람의 생각을 널리 접할 수 있어 좋다. 자주 생각의 끝이 벽에 부딪힐 때, 이 잡지는 그 담장에 우회로가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범상치 않은 주제들에 대한 다양한 궁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 해주는 이 잡지는 늘 새로운 지적 도전을 제안한다. "워라밸의 시대에 잘 놀기", "상품화된 세계", "나는 누구인가"는 개인적인 최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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