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6일 : 75호

여기에는 여기의 삶이 있다
미국 드라마(미드) 좋아하시나요? <아무튼, 미드>라는 책을 쓰기도 한 소설가 손보미의 신작 소설을 읽으며 미드 <굿 와이프>의 한 캐릭터를 떠올렸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 수사관 '칼린다'(우리나라에서도 전도연 배우 주연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져 이 역은 나나 배우가 맡았습니다.)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성 경찰 '그녀'에겐 일을 해내는 것이 사회의 보편 윤리보다 우선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합니다.
여자 아이 납치사건을 수사하던 그녀가 자신이 지목한 용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해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동안 진범은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했습니다. 언론의 포화, 조직의 비토 등을 두들겨 맞으며 사건 이후 유산을 겪은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밤의 도시를, 도시의 민낯을 봅니다. 여자 화장실만 노리는 테러범, 구도심을 낙후된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측과 '세이프 시티'로 통제해달라는 측의 대립이 이어집니다. 남편의 동창인 신경과학자 임윤성은 '기억 교정'을 통해 이 범죄를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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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미드) 좋아하시나요? <아무튼, 미드>라는 책을 쓰기도 한 소설가 손보미의 신작 소설을 읽으며 미드 <굿 와이프>의 한 캐릭터를 떠올렸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 수사관 '칼린다'(우리나라에서도 전도연 배우 주연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져 이 역은 나나 배우가 맡았습니다.)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성 경찰 '그녀'에겐 일을 해내는 것이 사회의 보편 윤리보다 우선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합니다.
여자 아이 납치사건을 수사하던 그녀가 자신이 지목한 용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해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동안 진범은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했습니다. 언론의 포화, 조직의 비토 등을 두들겨 맞으며 사건 이후 유산을 겪은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밤의 도시를, 도시의 민낯을 봅니다. 여자 화장실만 노리는 테러범, 구도심을 낙후된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측과 '세이프 시티'로 통제해달라는 측의 대립이 이어집니다. 남편의 동창인 신경과학자 임윤성은 '기억 교정'을 통해 이 범죄를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등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결로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통제하고 배제할수록 도시는 위험한 공간이 됩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 흩뿌려진 땅을 둘러싼 갈등, 진짜 약자와 가짜 약자를 둘러싼 대립, 다른 사람의 기억을 사회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여전히 손보미답게 스타일리시한,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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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쪽 :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붙은 긴 거즈를 손으로 한번 만져보았다. 이런 상처도 결국은 사라진다. 약간의 흔적이 남더라도, 그건 괜찮아,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 아닌가? 확실한 해피엔딩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Q :
신작 소설 <세이프 시티>는 낙후된 ‘엑스 구역’의 여성 화장실만을 표적으로 삼는 기괴한 테러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알라딘 서점이 있던 동네(서울시 중구)도 현재 재개발을 두고 찬성파와 반대파가 서명을 나누어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이런 도시를 상상하게 된 계기, 작가께서 소설을 상상하며 머릿속에 그려본 도시 풍경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저에게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서울에 대한 두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하늘을 가리고 있는 장면이에요. 이를테면 강남 쪽에서 강북 방향으로 반포대교를 지나갈 때요. 예전에는 탁 틔어 있어서 강과 그 건너편, 그리고 저 멀리 하늘이 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풍경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다 막아버렸어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동의하면서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마치 장벽 같다고요. 저는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한 가지 이미지는 순전히 제 상상인데, 도심 한가운데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떡하니 버려져 있는 장면. 그 건물에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래 모여 살고 있고요. 말하자면 슬럼화된 지역인데, 그런 장면이 떠오를 때가 많아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도심을 걷다가 ‘임대’라는 종이를 붙여놓은 빈 건물을 보면 마음이 좀 이상해져요. 뭔가 하나의 신호 같달까, 효용이니 이득이니 이익이니 이런 것들을 무섭도록 따지는사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마 이번 소설도 그렇고 전에 쓴 『사라진 숲의 아이들』도 그렇고, 이런 이미지를 따라 쓴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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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신작 소설 <세이프 시티>는 낙후된 ‘엑스 구역’의 여성 화장실만을 표적으로 삼는 기괴한 테러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알라딘 서점이 있던 동네(서울시 중구)도 현재 재개발을 두고 찬성파와 반대파가 서명을 나누어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이런 도시를 상상하게 된 계기, 작가께서 소설을 상상하며 머릿속에 그려본 도시 풍경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저에게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서울에 대한 두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하늘을 가리고 있는 장면이에요. 이를테면 강남 쪽에서 강북 방향으로 반포대교를 지나갈 때요. 예전에는 탁 틔어 있어서 강과 그 건너편, 그리고 저 멀리 하늘이 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풍경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다 막아버렸어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동의하면서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마치 장벽 같다고요. 저는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한 가지 이미지는 순전히 제 상상인데, 도심 한가운데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떡하니 버려져 있는 장면. 그 건물에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래 모여 살고 있고요. 말하자면 슬럼화된 지역인데, 그런 장면이 떠오를 때가 많아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도심을 걷다가 ‘임대’라는 종이를 붙여놓은 빈 건물을 보면 마음이 좀 이상해져요. 뭔가 하나의 신호 같달까, 효용이니 이득이니 이익이니 이런 것들을 무섭도록 따지는사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마 이번 소설도 그렇고 전에 쓴 『사라진 숲의 아이들』도 그렇고, 이런 이미지를 따라 쓴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
범죄자는 범죄라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다, 그들에 대한 '기억 교정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술을 손에 쥔 신경과학자의 주장입니다. 손보미 작가에게도 중독을 참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을까요? 작가의 '도파민'이 궁금합니다.
A :
다른 글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곤 해요. 외출 준비를 하면서 소리만 듣는 건데, 사실 분주해서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거든요. 근데 그 소리가 없으면 외출 준비를 할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일을 할 때도 뭔가를 듣고 있고, 거리를 걸을 때에도 그래요. 심지어는 샤워를 할 때도요. 어쩌면 저는 소란스러움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이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소란스러우면 소란스러울수록 저를 저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놓게 될 테니까요. 고치고 싶은 습관이에요. 정말 고치고싶어요.
반면에 고치고 싶지 않은, 계속되었으면 하는 중독도 있어요, 제가 매주 기다리는 게 있거든요. 이렇게 말하려니까 왠지 쑥스러운 기분이 드는데, 이것 역시 유튜브 영상이에요. 호주에 사는 주부(얼굴이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저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의 브이로그예요. 감각적이라거나 세련된 것도 아니고, 구독자 수가 많거나 조회 수가 아주 많은 채널도 아니에요. 그냥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고, 나이가 많은 커다란 개랑 작고 어린 고양이를 케어하고, 음식을 만들고… 매주 똑같은 일상인데, 이상하게 기다려져요. 그분이 매일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커피를 후루룩 마시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지금껏 커피를 그렇게 맛있게 마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커다란 개가 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체중 관리를 해야 해서 음식을 많이 주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너무 빨리 먹어치우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막 마음이 안타깝고 때로는 슬퍼지기까지 한다니까요. 아기 고양이가 커다란 개의 품에 파고들면 커다란 개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걸 보는 게 좋아요. 여기는 여름(겨울)인데 거기는 겨울(여름)인 것도 좋고. 그런 기분들을 매주 기다리는 것 같아요. 몇년 동안 봐왔는데, 그런 영상을 앞으로도 매주 계속 보고 싶고, 계속계속 중독되어 있기를 바라요.
Q :
근미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손보미의 <세이프 시티>를 읽고 독자가 도전하기 좋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한 권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요. 제가 거의 처음으로 읽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었어요. 그 전에는 미국의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었거든요. 제가 읽었던 작품들은 주로 개인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내용을 다루었던 것 같아요. 비루한 좌절과 끔찍한 비명이 난무했지만 때로는 꿈결같은 매혹도 있는 그런 소설들. 그런데 이십대 중반인가, 아주 우연히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너무 다른 세계였거든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는 그 사회의 모양이 어떤 식으로든 스며들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했던 기억이 나요. 하나의 살인사건으로 시작된 모든 고리를 파헤치고, 범인을 향해 가는 동안 알게 되는 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양이에요. 한 명의 악인이 아니라, 악의 시스템 그 자체랄까. 그 야심이 너무 대단하고 압도적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나요. 사실 한참동안 이 소설을 떠올리지 않았는데, 이 질문을 받고 나서 이 소설을 읽고 있던 이십대의 제가 떠올랐어요. 필명을 ‘이유’로 지을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요. 미야베 미유키의 더 유명한 소설들, 이를테면 『화차』 같은 작품도 정말 재미있지만, 저에게는 이 소설이 참 특별해요. 돌이켜보면 출간된 지 꽤 되었는데 부동산 문제라든지 가족의 문제라든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유효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고요. 무엇보다 한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는 그런 소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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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특유의 성격으로 원만하지 못한 삶을 살았고,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미식서 <도문대작>을 집필했을 정도로 '먹'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유배지에서 거친 음식만 먹는 동안 허균은 상상으로만 취할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글로 조각해냈다고 합니다.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의 현찬양은 허균의 먹성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했습니다. 탐할 탐에 바를 정, 허균이 먹는 것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탐정이 되었습니다.
유사한 상흔을 지닌 시신들, 죽은 이의 위장에서 발견된 도리옥 관자. 아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을 몰라 고초를 겪은 허균은 먹는 것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탐정이 되어 억울한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MBC 드라마화가 확정된 작품이라고 하니 드라마를 기대하며 먼저 펼쳐봐도 좋겠습니다.

『아몬드』손원평 작가가 그리는 ‘저출산 고령화’의 미래는 어떨까요?
고령 인구가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나고, 청년 노동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때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노인들, 일자리 공백을 채우기 위해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소수 유권자가 되어 정치적인 목소리를 잃고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은 어떨까요?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에서 날카로운 시선과 섬세한 감성으로 우리 사회의 경계에 선 존재들을 조명해온 손원평 작가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 『젊음의 나라』는 현재의 시대적 과제-고령화, 저출생, AI의 일상화, 급격한 기술 발전, 극단적 혐오와 차별, 늘어나는 외국인 이민자, 존엄사 등-가 현실이 된 미래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주인공 유나라의 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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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손원평 작가가 그리는 ‘저출산 고령화’의 미래는 어떨까요?
고령 인구가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나고, 청년 노동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때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노인들, 일자리 공백을 채우기 위해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소수 유권자가 되어 정치적인 목소리를 잃고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은 어떨까요?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에서 날카로운 시선과 섬세한 감성으로 우리 사회의 경계에 선 존재들을 조명해온 손원평 작가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 『젊음의 나라』는 현재의 시대적 과제-고령화, 저출생, AI의 일상화, 급격한 기술 발전, 극단적 혐오와 차별, 늘어나는 외국인 이민자, 존엄사 등-가 현실이 된 미래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주인공 유나라의 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어요.
소설 속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상 현실을 담고 있지만, 놀라우리만큼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습니다. 『젊음의 나라』를 펼치는 순간, 아마 미래를 마주하는 예언서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될 거예요. 그리고 작가는 결국 사람 사이의 연결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젊음의 나라』를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을 마주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세대를 넘어, 청소년부터 청년, 중장년 층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 다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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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병렬독서와 시집 읽기를 좋아하는 '아기 락스타' 한로로의 첫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학교 동아리 신입 모집 마감 하루 전, 14살 소하는 게시판에 붙어있는 <자몽살구클럽>의 홍보지에 적힌 글귀를 보고 자몽살구클럽의 부원이 됩니다. 부원들은 '살구' 싶어 서로를 돕기로 결심합니다.
AKMU의 이찬혁도 솔로프로젝트 새 앨범을 발표 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앨범 <항해>의 이야기와 함께 출간된 이 소설집 역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강 작가가 좋아하는 곡이라고 밝힌 명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가 수록된 바로 그 앨범으로 독서와 함께하기 좋은 음악, 음악과 함께 읽기 좋은 소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