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의 말
* 박태웅님이 알라딘 독자분들을 위해 직접 작성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말하자면 '활자 중독'에 가까웠습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친구네 집 책을 다 읽고, 집에 있는 백과사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소공자, 소공녀, 허클베리핀의 모험, 비밀의 정원, 몽테크리스토백작, 15소년 표류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입시때문이었지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게 만드는 교육은 뭔가 아주 심각하게 고장이 나있는 상태입니다.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게 만들 수 있을까요?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81년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까지 배운 것들이 실제와 너무 달랐습니다. 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가르친 것을 충실히 따랐지요. 그만큼 더 충격이 컸습니다. 마치 달리다 느닷없이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제가 세상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 무지한 탓에 남이 알려주는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저를 철학책으로 이끌었습니다. 4년을 매일 철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그리고 많은 소설들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0여년쯤 직장을 다니다 2000년 IT업계로 옮겼고, 그때부터 2018년까지 전문경영인 생활을 했습니다. 2000년은 인터넷 붐이 일던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때 업종을 바꿀 수 있었던게 큰 행운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때는 주로 IT 책과 경영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전문경영인 일을 그만 하기로 합니다.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그간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으니 이제는 돌려주는 일을 하며 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살까? 생각을 해보니 제가 잘 하는게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그간 알게 된 일들을 글을 써서 공유하고,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는 일을 하며 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2021년에 <눈떠보니 선진국>을 썼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단계에 와 있나, 무슨 문제가 있나, 그 문제가 왜 생겼나, 그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관한 책입니다. 제가 십여년간 품고 있던 질문들이었습니다. (이 책의 챕터중 하나가 'AI의 시대'입니다) 고맙게도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22년 11월30일 챗지피티가 나왔습니다. 보자마자 저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세상을 돌이킬 수 없이 바꿀게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다스뵈이다>에 연락해 제가 나가서 설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PC가 출현하는 것도 보았고, 인터넷이 등장하는 것도, 아이폰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챗지피티는 앞선 그무엇보다도 강력한 미디어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른 채 당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AI의 캄브리아기였습니다. 논문이 봇물터지듯 쏟아졌습니다. 마치 고3때처럼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23년도에 <박태웅의 AI강의>를 펴냈습니다. 그뒤로도 AI의 발전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1년만에 <박태웅의 AI강의 2025>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두 책 다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곧 두번째 개정판인 <박태웅의 AI강의 2026>이 나옵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책을 쓰는 중에 새로운 소식이 나와 이미 쓴 원고를 고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AI에 관한 책을 쓰는 일은 끝도 없이 공부를 하는 일과 같습니다. 하루에도 몇편씩 꼭 읽어야 할 논문과 글들이 쏟아집니다. 즐겁지만 고되고, 힘들지만 즐거운 일입니다.
저는 AI가 모든 답을 다 해주는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책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오히려 더 귀중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더라도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평생 처음 보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학교도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질문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보는 어떤 것을 만났을 때 '스스로 탐구하고 학습해서 자신만의 지식체계를 갖출 수 있는 능력', 이게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회를 어떻게 바꿀건지, 그래서 내가 뭘해야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탐색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준다면 그 학생은 AI 아니라 AI 할아버지가 나오다고 하더라도 늠름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은 그런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미디어입니다. 논리적인 사고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풍부한 교양을 갖출 수 있게 해줍니다. 풍부한 교양은 곧 풍부한 질문, 풍부한 대화의 원천이 됩니다. 풍부한 질문은 곧 풍부한 답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중 하나는 어릴 적에 '독서 습관'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박태웅
박태웅
KTH, 엠파스 등 IT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거쳐 현재 녹서포럼 의장을 맡고 있다. 녹서포럼은 당대 사회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들, 정의 내려야 할 문제들을 드러내는 토론과 공론의 장이다.
2021년 정보통신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다. 저서로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