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광주,
그리고 우리의 5·18
1979
1980
준비된 내란
1980.05.18
1980.05.19
1980.05.20
1980.05.21
1980.05.22
1980.05.23
1980.05.24
1980.05.25
1980.05.26
1980.05.27
1980
1981
1982년 이후
199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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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부마민주항쟁’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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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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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비상계엄 선포(제주도를 제외한 부분계엄)
합동수사본부 설치(본부장 전두환 보안사령관) 위시로 신군부 등장 -
12월 12일‘12·12 군사 반란’(전두환 하나회 중심 군사반란세력 군권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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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K-공작계획 시행(보안사 언론대책반 설치, 언론통제 계획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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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육군본부, 폭동진압교육훈련 지시(작상전 제0-57호)
*충정작전: “육군야전예규(1976.6.20.) 부록 ‘C’ 별지 ‘3’(폭동진압)”을 근거로 한 소요사태 대비 진압작전 -
2월 28일특전사령부, 7개여단 M16 및 권총 저격수 측정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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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6일수경사 충정훈련 및 제1차 충정회의. 7공수여단 폭동진압경연대회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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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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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육군본부, 시위진압 공중지원 방안(헬기 등을 이용한 공지협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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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전군주요지휘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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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서울대 총학생회, 계엄철폐 등 정치문제로 이슈 전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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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중앙정보부, 북한 남침설 첩보 입수(일본내각조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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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전두환, 보안사가 준비한 ‘시국수습방안’ 승인(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해산, 비상기구 설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지지 결의토록 지시
국회, 제104회 임시국회 5월 20일 소집 합의(안건, 비상계엄해제 의결) -
5월 13일국무회의, 북한 동향 등 시국상황 점검
합동수사본부, 김대중 등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작성 완료 -
5월 14일전국 37개 대학총학생회 비상계엄해제 요구 가두투쟁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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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서울지역 대학총학생회 ‘서울역 회군’ 결정 후 가두시위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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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전남대 등 광주지역 대학들 야간 횃불 시위
비상계엄 전국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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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육군본부, 소요사태대비 사전정찰 지시(수도군단, 3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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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육군본부, 11공수와 13공수여단 수도권으로 이동 지시(육작명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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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11공수여단, 강원도 화천에서 경기도 김포(1공수여단) 도착과 동시 훈련
· 2군사령부, 7공수여단을 2군지역 운용 확정(전남북지역 작전계획 포함) -
5월 10일국방부, 대침투작전태세 강화 지시(작상전 제0-192호).(북한군남침설 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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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2군사령부, 7공수여단을 전교사 지역에 배치 지시(전남대, 조선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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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국방부, 대침투작전태세 강화 지시(추가)(대간전제49호, 육본작상전 0-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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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육군본부 ‘소요 진압 본부’ 설치, ‘소요 사태 진압부대 투입’ 준비 지시
3공수여단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이동 배치
계엄사령관 → 2군사령관, 전북 금마 주둔 7공수여단에 전북대, 충남대, 전남대, 조선대에 각 1개 대대씩 출동 준비 지시
7공수여단, 500MD(헬기) 합동훈련 실시(가스 공중살포 훈련)
31사단, 96연대 1대대 병력을 광주 MBC, CBS, KBS, 전일방송 등에 배치
전국 37개 대학 가두시위 시작, 전남대 5천여 명 금남로 진출 -
5월 15일20사단 61, 62연대를 서울 잠실체육관과 효창운동장으로 이동 배치
전남도청 앞 1만여 명 민족민주성회, 대회 후 야간 횃불 시위
‘서울역 회군’, 서울대 등 가두시위 중지
31사단, 전남대와 조선대 운동장에 숙영 천막 24개 동 설치 -
5월 16일3만여 시민, 학생들 민족민주성회 후 야간 횃불 시위
전두환 → 주영복 국방부 장관, ‘비상계엄 전국확대’ 안건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 및 대통령 재가 받아줄 것 요구
전남도청 앞 1만여 명 ‘민족민주성회’. 교수 400여 명 거리 행진 참여 -
5월 17일국방부,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결의
전두환 →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 ‘밤 10시를 기하여 예비검속’ 지시
2군 → 전교사 및 7공수여단, ‘5월 18일 00:01부로 충정작전, 대학 점령은 5월 18일 02:00 이전, 불순분자 체포는 04:01 이전 완료하라’ 지시
21:42 제42회 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8분소요)
23:00 김대중 등 전국에서 2,699명 ‘예비검속’. 광주 505보안부대, 전남지역 체포 대상자 22명 중 정동년 등 12명 체포
처음부터 잔혹한 유혈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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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계엄포고령 제10호 발령, 비상계엄 전국 확대 전에 계엄군이 대학을 점령했음. 10시-11시 경
☞ 계엄포고령 제10호
: 모든 정치활동 중지,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 일체금지, 일반 집회 신고(종교 행사 제외), 정치 발언 금지, 언론 출판 보도 사전검열, 각 대학(전문대 포함) 당분간 휴교 조치, 정당한 이유 없는 태업·파업·직장 이탈 금지, 유언비어 날조 유포금지 및 아래 사항 금지(전현직 국가원수 모독 비방, 북괴와 동일한 주장 및 용어 사용과 선동 행위, 공공 집회에서의 목적 외 선동적 발언 및 질서 문란 행위), 경제활동 국내 여행 보장 -
01:007공수 33대대(전남대), 35대대(조선대)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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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07공수 31대대 전북대 난입, 전북대생 이세종 학생회관 옥상에서 추락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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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5수도군단 33사단 101연대, 국회의사당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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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전남대생 69명, 조선대생 43명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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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7공수여단, 전남대 정문, 200여 명 학생 강제 해산. 시위대 금남로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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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학생 300여 명 연좌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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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시위대 충장파출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 파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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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육·해·공군 참모총장 회의, 광주에 11공수여단 추가 파병 결정(육본작명 19-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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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광주 대인동 공용터미널과 한미쇼핑 사거리 사이 헬기 저공비행으로 시위대 위협하며 해산 시도.(공지협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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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31사단장, 전남대와 조선대 주둔 7공수에 시내 투입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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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7공수 33대대 수창초등학교 및 공용버스터미널, 35대대 도청 및 충장로 일대 진압작전 시작. 진압봉과 대검 등으로 유혈진압. 첫날 연행자 405명(일반인 184명 포함)
청각장애인 김경철, 제일극장 부근에서 공수부대에 구타당하여 실신(다음 날 03:00경 적십자병원에서, 국군광주병원으로 이송 후 사망) -
16:30최규하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국가보위를 위한 계엄 확대 불가피성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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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11공수 본부대대와 61대대, 광주공항 도착 후 조선대로 이동하면서 시내에서 위력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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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전남대 문화패 활동가들, 유인물 제작하여 시내에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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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계엄사령부, 광주 지역 야간 통행금지 밤 9시까지로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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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2군사령관, ‘소요자는 최후의 1인까지 추격·타격·체포 지시’ 전파
봇물처럼 터져 나온 시민들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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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011공수여단 62, 63대대, 광주역 경유 조선대 숙영지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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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11공수, 7공수 33대대 및 31사 61연대와 임무 교대, 시내 주요 거점에 병력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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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11공수 2개 대대 병력 금남로 출동, 시민 합세한 2,000여 명 시위대 가톨릭센터 앞에 집결, 학생 구타 목격 군인에게 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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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미국 CBS 촬영기자 3명 광주 동구청 부근 금남로 현장 취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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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무장 군인 약 25명, 동구청 앞 시민 학생 해산 위해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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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충금지하상가 일대 일반 시민 참여한 시위대 200~300명, 군인에게 투석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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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금남로 상공에 헬기 2대 선회하며 시위 해산 종용 선무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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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장갑차 2대, 군용트럭 15대 11공수병력 가톨릭센터 앞에 추가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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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중앙여고, 대동고, 광주일고 등 600~2000여 명, 교내 시위
계엄군과 시위대 격렬한 투석전 대치. 시위대 200여 명 조선대로 강제 연행 -
11:15계엄군이 시민 15명 정도를 금남로에서 팬티만 착용시키고 무차별 구타 후 차량으로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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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11공수, 무등고시학원 수색하여 학생들 구타 후 31사단으로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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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11공수, 점심시간 조선대로 철수 후 경찰이 도청 부근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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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가톨릭센터 앞 5,000여 명 분노한 시위대 차량 방화 등 격렬한 시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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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기독교방송국(가톨릭센터 7층)을 시위대가 점거, 공수부대가 진압, 10여 명 체포
광주시교육청, 광주 시내 고등학교 휴교령(귀가 조치)
계엄사령관,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 광주 증파 계획 대통령에 보고 -
16:00광주 상황 보고 및 조치가 미흡하다는 전두환의 지적에 따라 보안사 홍성률 대령을 광주로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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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불로동 다리 근처에서 시위대를 쫓던 계엄군 2명 시위대에 포위된 채 하천으로 추락, 적십자병원에서 응급치료 후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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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광주고와 계림파출소 사이, 장갑차에서 M16 소총 최초 발포(김영찬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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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육군본부, 3공수여단을 광주에 추가 투입하도록 2군사령부에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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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31사단장 주재 작전회의(11공수여단장, 전라남도 경찰국장 등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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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2군사령부, 충정작전 지침 하달(군중 10인 이상 집결 방지, 편의대 운용, 과감한 타격, 통행금지 연장, 총기 피탈 예방, 선무활동 강화 등)
‘저항’에서 ‘항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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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3공수여단, 서울 청량리역 → 07:00 광주역 도착 → 전남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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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31사단 병력, 시내 일원에 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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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광주 서동 전남주조장(광주공원 부근)에서 김안부 시신(총상사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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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31사단, 광주 시내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실탄 군부대로 회수. 미회수 총기는 공이와 노리쇠 제거, 탄약은 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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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강한 비가 내려 오전 중 시위 소강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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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정호용 특전사령관, 윤흥정 전교사령관 만나 강경 진압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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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3공수여단, 광주 시내 배치(광주교대, 시청, 황금동, 양동사거리, 광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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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시위대가 금남로 2∼3가에 5천여 명, 금남로 4가에 3천여 명 운집, 공수부대와 일진일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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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무등경기장 앞 택시 40여 대 집결, “계엄군을 밀어버리자” 구호 제창 후 광주역경유 도청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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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차량시위(버스 3대, 트럭 1대, 택시 200여 대), 시위대 2,000여 명 금남로에서, 2,000여 명 노동청 앞에서, 1,000여 명 전남매일신문사 앞에서 군경과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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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1공수여단과 경찰기동대, 차량 시위대 해산 작전 개시. 도청 앞 대치선, 11공수여단 엄청난 가스탄 발사 후 차량 안으로 진입, 연행.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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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공용터미널 쪽에서 1만여 명 시위대, 수십 대의 차량을 앞세우고 금남로 시위대와 합세 시도. 공수부대와 경찰은 시위대의 도청 진출을 필사적으로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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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대의동 문화방송국 앞 5,000여 명, 저녁 8시 뉴스에 광주 상황을 보도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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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공용터미널, 광주역, 광주고속터미널 방향 시위대 금남로로 집결, 차량으로 계엄군 저지선 공격하며 격렬한 시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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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광주 MBC 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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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노동청 앞 시위대, 고속버스 돌진으로 경찰 4명 사망하고 7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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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광주 MBC, 광주 KBS 방송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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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5횃불 시위대 200여 명, 광주역으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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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0최세창 3공수여단장, 실탄 지급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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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최세창 3공수여단장, 3공수여단에게 광주역으로 집결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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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도청 부근 11공수 61대대, 62대대 중대장들에게 실탄분배 (15발 탄창 1개씩 지급. 위급한 상황 시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사용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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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공수 15대대장, 광주역에서 시위대 차량을 향해 권총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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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53공수여단 11대대 공용터미널에서 10,000여 명과 대치. 12대대 광주역에서 5,000여 명과 대치. 13대대 광주시청 앞에서 5,000여 명과 대치. 15대대 광주 KBS 앞에서 3,000여 명과 대치. 16대대 전남대 입구 사거리에서 2,000여 명과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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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최세창 3공수여단장, 광주역 3공수여단 병력에 경계용 실탄 지급 지시. 윤수웅 정보참모 등 20명, 실탄 지급 위해 광주역으로 향하던 중 시위대의 저지를 뚫기 위해 M60기관총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사격, 광주시청 옥상에서 기관총 위협사격, 광주역 일대 기관총 및 M16 집단발포. 20일 밤 광주역 일대에서 최소 7명 민간인 사망(총상6, 구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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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도청 일대 11공수 지역 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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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신안사거리, 3공수여단 16대대 소속 운전병, 시위대의 11톤 트럭에 치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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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광주세무서 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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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윤흥정 전교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공수부대 시 외곽으로 철수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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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02군사령부, 발포금지, 실탄 통제, 공수여단을 20사단으로 교체 준비 등 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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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22군사령부, 소요 확산 저지 지침 하달(광주시 외곽으로 나가는 통로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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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3공수여단 12대대, 15대대 장교들, 광주역 앞에서 시위대의 차량 공격에 대응 발포. 많은 시민이 부상 입고 김ㅇ화(남, 25세) 등이 피격 사망(이 시각 광주역에서 다수의 총격 사상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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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국방부, 전두환 이희성 주영복 등 계엄지휘부 긴급대책회의(자위권 등 논의)
집단 발포, 계엄군 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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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광주 전체 시외통화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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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6시위대 3,000여 명이 고속버스 3대로 조선대 정문 돌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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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020사단, 본부와 62연대 용산역 → 광주 송정역 08:58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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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3공수여단, 광주역에서 전남대로 철수(KBS직원 및 31사단 경계병력 함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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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계엄사령부 참모회의(자위권발동, 계엄군 광주외곽 전환배치, 1개 연대 추가투입, 폭도소탕작전 23일 이후 의명 실시 등 작전방침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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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광주 KBS 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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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07:001천여 명 시위대, 광주역 희생자 2명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태극기로 덮은 다음 금남로 광주은행 본점까지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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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11공수여단, 7공수여단 35대대 도청 앞으로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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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농성동 공단 입구, 20사단 지휘 차량 14대 시위대에게 빼앗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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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계엄사령부, 광주 지역에 진돗개 ‘하나’ 발령(무장간첩 침투 시 발령되는 최고단계의 군 경계 태세로 실탄 지급, 자위권 발동을 포함. 지휘관의 지시로 발포 가능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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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시민대표, 도지사면담(12시까지 계엄군 철수, 도지사 사과, 연행자 석방 등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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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시위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바퀴형 장갑차 1대, 군용트럭 10대, 버스 20대 등을 몰고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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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금남로 1가 쪽 시위대 장갑차, 도청 쪽 군 저지선 방향으로 돌진. 공수부대가 최루탄 쏘며 저지, 계엄군 전일빌딩 옆 광주경찰서 방향 사거리까지 후퇴, 11공수여단 1인당 10발씩 실탄 분배, 금남로 시위군중 10만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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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전남대 정문 4만여 명, 후문 1만여 명 3공수여단과 대치·공방
3공수여단 중대장 이상 장교들에게 경계용 실탄 탄창(30발) 2개씩 지급 -
11:00도지사, 경찰 헬기에서 선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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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경찰 헬기, 도청 분수대 광장에서 중요 문서 및 부상자 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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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전남대 앞 시위대 차량 공격 등으로 정문 돌파, 3공수여단이 차량을 향해 총격. 시위대를 신안동 굴다리 부근까지 추격·체포하여 전남대로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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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전교사, 광주 도시권 북부 3개 지역 봉쇄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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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도청 앞, 시위대 장갑차가 계엄군 저지선 향해 돌진, 계엄군 궤도형 장갑차 후진하다가 계엄군 1명 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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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도청 앞 계엄군 장갑차에서 기관총 발사 후 집단 발포 시작. 도청 앞 집단 발포 민간인 사망자 최소 41명(저격병 사격으로 최소 7명 희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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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전남대 앞 평화시장 민가 임산부, 3공수여단 군인의 총격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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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광주천 상공에서 헬기 사격(조비오 신부, 부상자 이광영, 신혁 신부 등 다수 시민이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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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시위대, 나주, 화순, 영암, 해남 지역 지서 등에서 무기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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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전일빌딩, 수협, 상무관, 도청 옥상 등에 배치된 저격수들 사격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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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충금지하상가 사거리에 시위대 총기 20여 정 배분. 같은 시각 광주공원, 학동 석천 다리와 지원동 등에서 획득한 무기 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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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계엄사령관 지시, ‘광주 시위 전국 확산 방지, 지휘 체계 일원화, 시민과 불순분자 분리, 교도소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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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계엄사령부, 전군에 진돗개 ‘둘’ 발령. 20사단, 외곽 봉쇄 작전 배치
공수부대 작전통제권 31사에서 전교사로 전환(31사단장 지휘권 박탈) -
16:00광주 시내의 계엄군 철수 지시.
전남대 주둔 3공수여단, 연행자 100여 명을 트럭에 태운 후 적재함을 밀폐하고 최루탄을 터뜨리며 교도소로 이송. 최소 10명 사망. -
16:35국방부 장관 주영복, 진종채 2군사령관,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 등 회의 개최. 계엄군 광주 외곽으로 전환 재배치, 1개 연대 추가 투입, ‘폭도 소탕작전’을 5월 23일 이후에 의명 실시, 자위권 발동하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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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 도청에서 조선대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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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계엄군, 광주 외곽 봉쇄 배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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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7공수여단, 주남마을로 이동 중 시위대의 총격으로 차량이 전복되어 1명 사망, 6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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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담양 사는 민간인 2명, 광주교도소를 지나다가 계엄군 총격으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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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기독병원에서 헌혈하고 집에 돌아가던 박금희(여고 2년), 계엄군 총격으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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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계엄사령관, 군의 자위권 보유 천명 방송(접근하면 하복부 지향 발사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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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계엄사령부, 20사단 60연대 광주에 추가 투입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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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송암동 남선연탄 앞 20사단 61연대 5중대, 시위대 차량에 총격. 최소 5명 사망, 부상자 다수 발생
고립된 광주,
시민 스스로 질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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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시위대 전남 남서부 지역으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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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시위대, 계엄군이 철수한 도청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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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광주공원에서 시민군, 차량에 일련번호 부여하고 의료, 연락, 보급, 수송, 지휘통제, 순찰, 전투 등의 임무 부여. 시내 주요 지역에 시민군 차량을 배치하여 경계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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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임옥환 등 일행, 조선대 뒷산을 넘어 화순을 지나다 계엄군 총격받은 후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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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전남대 이학부 뒷산, 암매장된 광주상고 이성귀 시신 수습하여 도청으로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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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윤공희 대주교, 조비오 신부 등 10여 명. 사태 수습대책위 구성 방안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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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송암동, 20사단 병력의 총격으로 왕태경 사망, 동승자도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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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3공수여단, 광주교도소를 지나가던 시위대에 총격. 이명진, 이용충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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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3공수여단, 광주교도소 앞을 지나던 김성수 일가가 탄 트럭을 세워 검문, 광주로 돌아가라고 한 후 총격. 4살 딸과 아내 등 일가족 3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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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전교사령관 윤흥정에서 소준열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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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박충훈 신임 국무총리 서리 전교사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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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시민군, 각 병원의 시신을 도청으로 이송·입관하여 도청 앞 광장 분수대 주변에 임시 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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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남동성당에서 홍남순 변호사, 이성학 장로, 김성용 신부, 조아라 YWCA 회장, 이애신 YWCA 총무, 이기홍 변호사, 명노근 교수, 송기숙 교수, 윤영규 선생, 위인백 선생 등 사태 수습 방안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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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계엄사령부, ‘광주 완전 봉쇄’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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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차가 시내를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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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전두환, 중앙언론사 대표들과 신라호텔 간담회 ? 광주 상황 왜곡하여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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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수습대책위, 전교사 방문하여 연행자 석방과 계엄군 투입 금지 등 7개 사항 요구(무기 반납시 선별 석방하겠다는 약속. 848명 연행자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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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20사단 62연대, 통합병원 확보 작전 개시. 화정동, 내방동 일원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 집 안에 있던 이매실 등 8명 사망, 50여 명 부상, 3명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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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20사단 60연대, 송정역 일대 진압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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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각 병원의 시민 시신을 도청으로 이송·입관하여 도청 앞 분수대 주변에 임시 안치 후 궐기대회 개최, 수습대책위원회 전교사 방문 결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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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학생수습대책위원회 결성(질서유지, 무기 회수, 헌혈 활동 등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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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7공수여단, 화순군청 2.5톤 트럭에 불을 질러 너릿재터널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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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박충훈 국무총리서리 특별담화문 발표, “광주는 치안 부재 상태, 불순분자들이 관공서 습격·방화, 무기 탈취 후 발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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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수습대책위원회 계엄사 측과 2차 협상(계엄사가 무조건 무기반납 요구하여 협상 결렬)
외곽 봉쇄지역에서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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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0해남군 우슬재, 31사단 해남 대대, 차량 시위대에 기관총 사격하여 김귀환 등 2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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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남녀 고등학생들 중심 광주 시내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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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극단 ‘광대’ 단원들과 ‘들불야학’ 강학들 YWCA에서 홍보물 제작. ‘송백회’ 회원을 비롯한 여성들 ‘녹두서점’에 모여 현수막 검은 리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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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도청 뒷마당에서 시신 신원과 가족 확인 시작. 신원이 확인되면 전라남도 경찰국 민원실 복도에서 입관한 후 상무관에 옮겨 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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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25인승 미니버스 주남마을, 11공수여단이 집중사격 하여 손옥례, 백대환 등 최소 11명 사망. 중상자 채수길, 양민석은 계엄군 주둔지까지 이송 후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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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3공수여단, 광주교도소 주변에서 시위대 차량에 총격을 가해 안병섭 사망. 10:30경 소방차에 탑승하고 있던 시위대 5명 체포하여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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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해남군 황산면 복평삼거리에서 31사 해남 대대, 차량 시위대에 총격. 1명 사망, 수십 명 부상과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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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31사단 11경비대, 광주변전소 확보 작전 중 민간인 김상태 등 1명 사살 후 31사단 군부대로 이송했다가 암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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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계엄사령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행동 조치 발표. “···자위권을 발동해야 할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전 국민이 공동 노력을 경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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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전두환이 “다소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광주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줄 것”, “공수부대를 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라는 친필 메모를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통해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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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도청 앞 분수대를 중심으로 5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제1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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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광주변전소 경계를 위해 투입된 31사단 11경비대, 주변 정찰 및 수색 중 도로와 주택가에 총격, 집 안에 있던 오정순 등 3명 사망
계엄군 오인사격,
민간인 보복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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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0‘광주 재진입 작전’ 준비를 위해 외곽의 공수부대를 20사단으로 교체 명령 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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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0광주톨게이트, 31사단 96연대 병력과 전교사 기갑학교 병력 간 오인 교전. 31사 병력 3명 사망, 9명 부상. 근처에서 어린아이와 민간인 등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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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주남마을 주둔 공수부대, 20사단과 임무 교대. 11공수여단과 7공수여단 광주 비행장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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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광주교도소 주둔 공수부대, 20사단과 임무 교대. 3공수여단 광주 비행장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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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송암동을 지나던 11공수여단, 도로 양쪽에 무차별 총격하여 중학생 방광범, 국민 학생 전재수 사망. 다리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박현옥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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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송암동 효천역 부근, 공수부대와 전교사 기갑학교 교도대 병력 오인 교전, 계엄군 9명 사망, 38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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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오인 교전 후 공수부대가 인근 주택가를 수색하여 집에 있던 청년 권근립 등 3명을 현장에서 사살.
효천 삼거리 주택가에서 무장 시위대 체포 과정 중 김종철 사살. -
15:00도청 앞 광장, 시민 3만 5천여 명 제2차 궐기대회 개최, 전두환 화형식
시민항쟁위원회,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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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이희성 계엄사령관, 광주 재진입 작전 계획 수립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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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도청에서 ‘독침조작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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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YWCA에서 재야 원로와 민주인사들 회의, 새 수습대책위원회 구성 필요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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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전교사 폭약전문가, 전남도청 무기고의 폭약과 수류탄 뇌관 밤새 제거 후 부대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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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홍남순 변호사 등 재야 원로, 남동성당에서 계엄군에 제시 할 3가지 요구사항 재확인 ‘비상계엄 해제, 김대중 석방, 정치 일정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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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시민 5만여 명,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하자’는 결의문 채택 후 ‘계엄 해제’ 현수막 들고 시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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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11명의 기존 수습 대책위원회를 개편하여 홍남순 변호사 등 재야 원로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항쟁지도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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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최규하 대통령 광주방문, 전교사에서 담화문 발표
안병하 전남도경찰국장, “경찰이 시민에게 총부리 겨눌 수 없다”며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무력진압 요구 거부
내란목적 살인,
광주 재진입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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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광주 외곽의 계엄군, 시내 쪽으로 전진 배치하여 시민군을 압박하기 위해 장갑차 앞세우고 시내 쪽으로 이동(화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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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수습 대책위원들, 계엄군 탱크 막기 위해 ‘죽음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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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시민 3만여 명,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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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항쟁지도부와 시민군, 기동타격대 편성(7개 조, 4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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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안병하 전남도경국장, 광주공항에서 치안본부로 연행되어 합동수사본부 조사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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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시민 2만여 명,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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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윤상원 대변인, 광주 상황을 알리는 외신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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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기존 수습 대책위원들, 희생을 막기 위해 무기 반납하고 투항하자고 의견 모음. 윤상원 대변인과 박남선 상황실장 등 항쟁지도부 끝까지 도청 사수 천명(청소년과 기존 수습 대책위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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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광주 거주 외국인 207명 광주공항 집결 후 비행기로 서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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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정호용 특전사령관, 광주 비행장에 도착하여 공수특공대 격려. 광주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장비(섬광탄 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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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 지휘로 YMCA에서 대기 중인 시민군 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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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시내 전화 두절, 계엄사령부 시민군에게 최후통첩
광주재진입작전,
시민군의 최후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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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7, 3, 11공수특공대 일반 군복으로 바꿔 입은 후 도청을 향해 이동 시작(03:30 작전명령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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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03공수여단 조선대 뒷산에 중간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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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20사단(광주교도소), 31사단 96연대 외곽에서 도청 향해 이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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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민주시민 투쟁위 홍보부 박영순,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방송. 이경희 등은 광주 시내를 돌면서 마지막 거리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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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0헬기로 전일빌딩 위협 사격(특공대 도청 진입 직전 헬기사격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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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도청 안 모든 전등 꺼짐. 3공수여단 특공대 도청 포위 후 공격 개시. 도청 안에서 저항하던 윤상원, 문재학 등 15명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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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31사단, 전남대와 전남방직 등에서 특공작전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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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11공수여단, 전일빌딩, 관광호텔, YWCA에서 특공작전 개시. YWCA에서 박용준 등 2명 사살. YMCA 앞에서 김종연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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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20사단, 전차 18대 및 병력수송장갑차(APC) 5대 출동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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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전교사령관, 계엄사령관에게 작전 성공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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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07공수여단 광주공원 특공작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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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3,7,11공수특공대, 20사단에게 인계 후 광주 비행장으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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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전교사 기갑학교, 탱크 14대와 장갑차로 시내 무력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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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KBS 방송으로 경찰과 공무원 근무지 복귀 지시
진상규명, 새로운 투쟁의 시작
전두환, 광주학살 위에 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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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광주지검의 검시와 505보안부대의 확인을 마친 민간인 사망자 시신 126구 청소차에 실려 망월동 공원묘지 3묘원에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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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서강대생 김의기, “광주학살 항의”하며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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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5·18광주의거유족회’ 결성(초대 회장 송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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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의장 최규하 대통령, 상임위원장 전두환), 계엄사, 광주사태 전모 발표(사망 170명, 부상 280명, 연행 1,740명), “김대중 광주사태 배후 조종 혐의, 무력진압 불가피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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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20사단 61연대 수색대, 주남마을 가매장 예상지역 수색(부패한 시체 1구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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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국보위 광주사태조사단(단장 이광로 소장) 13명 광주 파견(6.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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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노동자 김종태, 이화여대역 사거리에서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나라”고 외치며 분신 후 6월 14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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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천주교 광주대교구 사제단, 광주사태 진상 요구 농성(신부 8명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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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전두환 제11대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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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전남북계엄분소, ‘광주사태’ 관련 군법회의 회부 616명 중 404명 기소, 212명 불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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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5·18구속자 가족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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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 5·18구속자 1심 선고(기소된 404명 중 선고유예 149명, 255명 유죄 선고, 정동년 외 사형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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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강제 언론통폐합, 언론인 강제 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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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가톨릭농민회 회원 5명,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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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 5·18구속자 2심 선고(유죄 163명 중 80명 형집행면제 및 집행유예 석방, 정동년 외 3인 사형)
신군부 내란 세력, 제5공화국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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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김대중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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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1980년 5월 17일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령 전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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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전두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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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전두환, 제12대 대통령 취임(∼1988.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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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대법원, 5·18구속자 83명 전원 상고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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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구속자 83명 특별사면(감형) 등 복권조치(사형 3명, 무기로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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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5·18민주화운동 제1주기 추모제, 경찰 저지로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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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서울대생 김태훈, 5·18위령제 중 서울대 도서관 6층에서 “살인마 전두환 물러가라” 외치며 분신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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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관련자와 함께 5·18구속자 2차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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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광주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광주 사태 피해자 구호 성금’으로 ‘광주 어린이대공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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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5·18구속자 모두 석방(형집행정지)
1982년
5·18희생자 묘지이장 책동, 비둘기 시행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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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문부식, 김현장 등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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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강원대학교 미국성조기 소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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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광주 의거 2주기 추모제’, 진상 규명 등 요구하다 18명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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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횃불회 사건’ 기종도, 고문 폭로 후 옥중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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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5·18광주의거부상자회’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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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비둘기 시행계획’(망월동 희생자 이장 계획)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 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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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박관현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옥중에서 단식 투쟁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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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광주 미국문화원 방화사건(2차)
1983년
5·18 피해자 단체 회유·분열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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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김영삼 총재, 5·18진상규명과 정치활동 규제 해제 요구하며 단식농성(23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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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18광주의거유족회, 5·18묘지 이장 책동 규탄 성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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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고교생 1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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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서울대생 황정하, 군사독재 지원하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시위 중 추락(8일만에 사망)
1984년
학원 자율화 투쟁,
대학가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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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광주사태 관련 제적 학생 복학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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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서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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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광주 방문, ‘광주 메시지’ 남겨 광주 문제를 국민에게 환기시키는 큰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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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제4기 5·18광주의거 추모제 개최, 금남로에서 시위 중 4명 연행
서울 동부 지역 4개 대학 2,500여 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광주학살규탄대회” 후 교문 밖 진출 시도 -
10월 12일박관현 열사 추모 집회 저지를 위해 경찰이 5·18광주의거유족회원들을 납치하여 대구, 삼척, 여수 등으로 강제 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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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전두환 방문(진도군 연육교 준공식 참석) 앞두고 5·18유족회원들 자택 연금 및 강제 격리당함
1995년
학살 책임자 처벌 국민운동,
5·18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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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서울중앙지검, 5·18수사결과 발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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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후“현행법으로 처벌 할 수 없으면 특별법을 제정하여 처벌하자”라는 구호아래 전국민적인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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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5·18학살자 재판 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이하 5·18공대위) 공식 구성, 도청 앞 광장에 천막 농성 및 학살자처벌 국민 서명운동 시작.
5·18유족과 부상자 등 150여 명 명동성당 농성 시작. -
8월 10일‘5·18공대위’, 5·18특별법 제정 촉구 서한과 입법청원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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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18 학살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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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 노태우가 비자금 4,000억 원을 조성했다고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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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노태우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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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헌법재판소, ‘검찰의 5·18 공소권 없음 결정은 부당하다.’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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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대검, ‘12·12와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설치(수사본부장 최환 지검장), 본격적인 재수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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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검찰, 소환을 거부한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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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대검,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기소(2,900여억 원 뇌물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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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국회,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제정으로 전두환, 노태우 집권 기간 동안 공소시효 정지. 학살 책임자 법적 단죄의 길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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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5·18사건 특별 수사본부, 광주 현장 조사팀 구성. 광주 12곳 현장 조사와 피해자 등 참고인 조사 시작
1986년
직선제 개헌 요구와
5·18정신계승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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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청주대 졸업생 장이기, 군과 경찰 조사를 받다가 고문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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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5·18광주의거청년동지회’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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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전남대 교수 43명, 시국 선언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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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학생·노동자·시민 5천여 명,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인 지부 결성대회' 전 경찰과 격렬한 충돌 시위 (5·3 인천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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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남동성당에서 5·18 희생자 6주기 추모 미사 후 연좌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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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전국 주요 대학, 광주민중항쟁 계승과 희생자 추모 집회 후 시내 진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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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망월동 제3묘원에서 제6주기 추모제 개최(6천여 명 참여) 후 시내 진출 시위
명동성당 청년 신도 1천여 명, 진상규명 대회 및 추모 미사 뒤 가두 시위 -
5월 20일서울대생 이동수, "광주학살 책임지라" 외치며 분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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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사회운동가 강상철, 목포역 광장에서 분신 사망
1987년
민주화를 향한 5월 정신계승,
6월 민주대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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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서울대생 박종철,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에 물고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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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서울교대 박선영, 유서 남긴 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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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전두환 대통령, ‘4·13호헌조치 특별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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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전국 62개 대학, 5·18추모제와 정신 계승 대회 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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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망월동 5·18묘지에서 제7주기 추모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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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5·18민중항쟁 제7주기 추모 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범인 조작 사실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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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노동자 황보영국, 분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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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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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연세대생 이한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 직격 최루탄에 맞아 실신(7월 5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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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전국 20개 도시에서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개최(6월항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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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최루탄 추방과 직선제 개헌 쟁취 국민대회’ 개최. 전국 16개 도시 247개소에서 150만 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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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전국 34개 도시에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위한 국민 평화 대행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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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 ‘6·29선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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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이한열 민주 국민장’ 거행, 서울시청·전남도청 앞 노제 후 5·18묘지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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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18명 및 광주사태 관련자 17명 등 시국사범 2,335명 사면, 복권 단행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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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제9차 헌법개정 국민투표 실시(94.5% 찬성으로 헌법 개정안 최종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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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목포대생 박태영, 분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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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제13대 대통령 선거, 노태우 대통령 당선
1988년
조작과 왜곡으로
점철된 5·18 국회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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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노태우 당선인 ‘민주화합추진위원회’ 발족. 광주사태를 ‘학생·시민 민주 투쟁’으로 규정(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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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육군본부, 육군위원회 설치, 5·18광주진압작전을 진압군 입장에서 실제 상황과 다르게 재정리(2월~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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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노태우 정권, 5·18의 성격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규정하고 유감 표명, 광주사태 치유 대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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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여소야대 국회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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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국방부, 511연구위원회 설치(5·18진상규명 요구 대비 국회대책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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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서울대생 조성만, 투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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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망월동 5·18묘지와 전국 주요 도시에서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 및 5월 학살 원흉 처단과 진상 규명을 위한 범국민 궐기 대회’ 개최(20만 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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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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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숭실대생 박래선, 분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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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국회, 광주특위 구성(청문회 준비)
보안사, 511분석반 발족(국회 청문회 증언자료 종합정리, 육군대책위원회가 정리한 5·18당시 광주진압작전일지를 바탕으로 왜곡 논리 생산) -
9월 1일헌법재판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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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국회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시작
1989년
청문회, 성과 없이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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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국회 5·18진상규명특위, 최규하와 전두환 동행명령장 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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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광주MBC, 5·18민주화운동 관련 최초 다큐 ‘어머니의 노래’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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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조비오신부, 국회 광주특위 출석 헬기사격 증언(이후 청문회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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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광주KBS, 5·18민주화운동 관련 다큐 ‘광주는 말한다’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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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조선대 교지『민주조선』 편집장 이철규, 변사체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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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5·18묘지에서 9주기 추모제 개최. 금남로에서 15만여 명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 및 노태우 정권 퇴진' 집회 및 시위
광주, 전남지역 7개 대학 교수 854명,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 요구 성명 발표 -
6월 20일미국, 5·18관련 미국성명서 우리 국회 광주특위에 전달(1988.11 국회 광주특위가 미국 국무성에 보낸 질문서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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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노동자 김병구, 투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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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전두환, 국회 5공특위와 5·18진상조사특위 연석 청문회에 출석 증언
1990년
5·18보상법 날치기 통과,
피해자에게 보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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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 보수대연합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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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41개 단체 연합, 5·18 진상규명 촉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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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민자당,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보상법 기습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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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 9월 15일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 추가 신고 접수(1차 보상)
1991년
목숨 건 노태우 정권 퇴진 투쟁과 분신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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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명지대생 강경대, 백골단에 집단 구타 당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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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전국 60개 대학, '고 강경대 열사 폭력 살인 규탄과 공안 통치 분쇄를 위한 범국민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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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신 정국강경대 학생 사망사건 이후 8월까지 ‘공안정국 분쇄와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 과정 중 대학생, 고등학생, 주부, 노동자, 사회운동가들이 공안 통치와 폭력 살인 규탄, 노태우 정권 퇴진, 노동악법 철폐와 임금협상, 전교조 합법화 등을 주장하며 분신, 투신하여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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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5·18민중항쟁 제11주년 기념식 망월동 5·18묘지에서 개최
'공안통치 분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명지대생 강경대 ‘민주국민장’ 개최
1992년
5월 제 단체 연합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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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망월동 5·18묘지에서 12주기 추모제 개최 후 금남로에서 '광주민중항쟁 계승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범국민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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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제13대 국회 임기 종료(5·18진상규명 미완상태로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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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5·18관련 11개 단체 ‘5·18민중항쟁연합‘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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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 김영삼 당선
1993년
문민정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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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5·18 위령탑 건립및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광주 5·18 문제 해결 5대 원칙’(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집단 배상, 명예 회복, 기념 사업) 등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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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문민정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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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김영삼 대통령, ‘5·18정신계승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담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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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5·18추모제와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민·관 공동으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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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5·18민중항쟁연합 소속 단체 회원 200여 명 ‘진상규명 촉구’ 상경 시위
1994년
광주학살 책임자 고소,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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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5·18민중항쟁연합’, 광주학살 책임자 35명 서울지검에 고소,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는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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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전국적으로 `광주항쟁 책임자 고소, 고발 운동'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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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망월동·18묘지에서 추모제 및 기념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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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5·18기념재단 설립
1995년
학살 책임자 처벌 국민운동,
5·18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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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서울중앙지검, 5·18수사결과 발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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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후“현행법으로 처벌 할 수 없으면 특별법을 제정하여 처벌하자”라는 구호아래 전국민적인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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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5·18학살자 재판 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이하 5·18공대위) 공식 구성, 도청 앞 광장에 천막 농성 및 학살자처벌 국민 서명운동 시작.
5·18유족과 부상자 등 150여 명 명동성당 농성 시작. -
8월 10일‘5·18공대위’, 5·18특별법 제정 촉구 서한과 입법청원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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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18 학살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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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 노태우가 비자금 4,000억 원을 조성했다고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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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노태우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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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헌법재판소, ‘검찰의 5·18 공소권 없음 결정은 부당하다.’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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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대검, ‘12·12와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설치(수사본부장 최환 지검장), 본격적인 재수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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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검찰, 소환을 거부한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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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대검,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기소(2,900여억 원 뇌물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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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국회,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제정으로 전두환, 노태우 집권 기간 동안 공소시효 정지. 학살 책임자 법적 단죄의 길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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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5·18사건 특별 수사본부, 광주 현장 조사팀 구성. 광주 12곳 현장 조사와 피해자 등 참고인 조사 시작
1996년
5·18학살책임자를
법정에 세운 ‘세기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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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검찰, 5·18사건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전두환, 노태우 등 5·18학살책임자를 내란 및 군사 반란 혐의로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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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전두환과 노태우의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 사건’ 첫 공판 개정, 소위 ‘세기의 재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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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처음으로 민관 합동 추모제 개최, ‘5·18광주민중항쟁‘ 명칭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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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의 내란 및 군사 반란 사실 등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라고 판시하고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 6개월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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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서울고법 형사 1부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 전두환에게 무기징역, 노태우에게 17년 언도
1997년
5·18국가기념일 지정,
본격적인 기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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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대법원,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 사건’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형 확정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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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5·18민주화운동 국가기념일’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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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5·18민주묘지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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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정부 주관 첫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거행(5·18민주묘지), TV로 전국에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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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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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정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제안을 받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한 5·18관련자 19명 특별사면 석방
1998년 ~ 2009년
실질적인 명예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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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2.30‘5·18기념공원’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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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5.04‘5·18자유공원’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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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85·18민주화운동 제20주년 기념식에 김대중 대통령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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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5·18기념문화센터’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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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2망월동5·18묘지 무명열사 11기 유전자 검사 위해 개장. 11기 중 6기가 행방불명자 가족과 유전자 일치하여 신원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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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1국회,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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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7‘국립5·18민주묘지’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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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85·18민주화운동 제23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대통령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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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85·18민주화운동 제28주년 기념식에 이명박 대통령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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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5·18민주화운동 제29주년 기념식 개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식순에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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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5·18구속자회’, ‘기동타격대동지회’ 등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 반대 농성 시작
2010년 ~ 2024년
다시 시작된 왜곡과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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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5·18민주화운동 제30주년 기념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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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2지만원, 『솔로몬 앞에 선 5·18』 왜곡도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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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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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탈북자, 5·18때 광주에 북한군특수부대 600명 개입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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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85·18민주화운동 제33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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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옛 전라남도청 광장 앞 5·18상징 시계탑 복원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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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지만원, 대한민국 500만 야전군 ‘5·18역사의 진실 대국민보고회’(1차, 프레스센터) 후 부산(4월 17일), 대구(6월 8일) 등에서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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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0뉴스타운, “5·18은 광주-북한 손잡고 일으킨 내란 폭동” 왜곡 보도 호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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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305·18왜곡 합동 대책회의(광주민주변호사회, 시청, 5·18단체 왜곡대응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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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옛 전라남도청 원형 보존을 위한 농성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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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전일빌딩에서 1980년 당시 총탄 흔적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조사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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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일빌딩 건물 내외부에서 수 백발 탄흔을 발견했다고 감정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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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전두환 회고록』 출간(전두환을 고 조비오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고발 및 회고록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광주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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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 출간(왜곡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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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 참석, '5·18정신의 헌법 수록' 약속,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복원. 헬기 사격 진상 규명하겠다고 천명하고 조사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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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관련 특별조사위원회’ 출범(대통령 지시, 국방부 내에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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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5·18민주화운동 때, 당시 헬기가 시민을 향해 사격을 했고 전투기가 폭탄을 장착한채 대기했다”고 조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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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특별법」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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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5·18단체와 시민단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력을 조사하라”며 본격적인 대응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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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5·18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 출범. 조사 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로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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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7국방부 장관, ‘5·18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에 관한 사과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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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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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5·18민주화운동 제40주년 기념식(5·18민주광장에서 개최)에 문재인 대통령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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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9「5·18민주화운동특별법」개정안(일명 5·18역사왜곡처벌법),「5·18진상규명특별법」개정안,「5·18유공자예우및단체설립법」개정안 국회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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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0옛 전남도청 복원 공사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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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6‘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결과「국가보고서」제출
님을 위한 행진곡 에코백
이벤트 대상 도서 포함국내도서 2만원 이상 구매 시 선택
i 꼭 읽어주세요!
- - 이벤트 기간 : 5월 13일 ~ 소진 시까지
- - 이번 주문으로 발생할 예상 마일리지에서 우선 차감됩니다.
- - 예상 마일리지로 부족한 금액은 기존에 보유한 적립금, 마일리지 순서로 차감됩니다.
- - 보유 적립금/마일리지가 부족한 경우, 남은 금액은 추가로 결제하셔야 합니다.
- - 참고서, 중고도서, 외국도서, 전자책 주문금액은 제외됩니다.
5·18 문학상 수상작
서평 대회
5·18문학상은 5·18기념재단, 한국작가회의,
계간 문학들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오월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품을 선정하여 매해 5월 시상합니다.
- 시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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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수상(1명) : 알라딘 적립금 250,000원
· 우수상(3명) : 알라딘 적립금 50,000원
- 대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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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4개년 5·18문학상 본상 수상작
· 2026 백무산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 2025 한정현 소설집 <쿄코와 쿄지>
· 2024 김해자 시집 <니들의 시간>
· 2023 김형수 평론 <김남주 평전>
· 2023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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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 기간 : 2025년 5월 13일 ~ 5월 26일
· 당선작 발표 : 2025년 6월 5일
- 응모방법
- 알라딘 '마이리뷰'에 리뷰 등록 시 자동 응모
- 리뷰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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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0자 이내 권장
· 서평 내 도서 인용은 10% 이내 권장
· 표절 또는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 시 당선 취소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추첨을 통해
적립금 1,000원을 드립니다.
(518명 추첨 / 당첨자 발표 및 적립금 지급일: 6월 2일)
적립금
1,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