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너와 함께 읽고, 먹고, 여행하고.
송진경 MD
#01
긴긴밤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울었다고 했다. 책 읽으면서 우는 일이 좀처럼 없는 나도 이 책을 읽고 울까 싶었다. 한 번 집으면 단숨에 읽히는 책이 있는 반면, 몇 날 며칠 뒤적이며 읽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였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어린 펭귄이 우정과 사랑으로 함께한 긴긴밤의 이야기는 울컥하게 만들었고, 어둠만 있었던 긴 시간에서 나를 구원해준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02
호호호
영화감독 윤가은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엔 사람이 있고, 여름이 있고, 사유가 있다. 좋은 영화를 만든 그의 책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궁금증이 일어 읽게 되었는데, 영화처럼 금세 매료되었다. 좋아하는 목록이 많은 사람,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써내려간 산문집답게 밝고 좋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삶을 반짝이게 만드는 건 좋아하는 일을 만들고, 열심히 해보는 것이구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 무척 좋았다.
#03
맛있게 먹자
푸드 & 라이프스타일리스트 쿠리하라 하루미의 책을 좋아한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지금은 절판된 <전하고 싶은 일본의 맛>이지만. 있는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팁을 알려준다. 담백한 에세이를 읽는 재미는 덤. 오랫동안 식탁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04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식물과 정원의 푸르름에 반하지 않을 이가 어딨을까. 이 계절에 특히 어울리는 이 책은 친구에게 선물했을 정도로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울프가 글을 썼던 방, 거닐었던 아름다운 정원을 다양한 사진으로 보고, 그와 정원을 둘러싼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었다. 선물받은 이의 환한 미소와 함께 언젠가 꼭 가볼 여행 리스트로 고이 간직하는 중이다.
#05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책의 마지막 문장이자 제목인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그 한 문장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뭉클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비밀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언니의 등장에 안심했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로 연결되는 커다란 이야기에 홀렸다.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이 책에 있다.
#06
츠바키 문구점
단정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 오가와 이토, 하면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주인공 '포포'의 이야기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장소들은 실재하는 곳이다. 책 들고 가마쿠라를 여행했던 그 날의 흥분과 기쁨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은 여행의 추억으로 살지만 언젠가 다시 꼭 가볼 수 있기를 꿈꾼다.
#07
배를 엮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행복한 사전>을 먼저 봤는지, 이 책을 먼저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둘 다 너무 좋았던 기억은 명료하게 남는다. 큰 규모의 출판사에서 사전 편찬을 위해 모인 이들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등장인물들에 몰입하면서 봤다. 주인공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닌, 캐릭터 개개인이 각각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단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의 위대함, 사명과 열정으로 끝내 해내고야 마는 순간의 감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08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였던 시절을 통과하여 어른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인데, 그 시절을 까맣게 잊은 채 어린이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린이 바로 곁에서 어린이를 관찰하고 기록한 이 책은 어린이를 제대로 바라보라고,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가리고 있던 나의 눈을 뜨게 만들어 주었다. 책을 읽기 전보다는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누구든 하게 될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책이다.
#09
명랑한 은둔자
<명랑한 은둔자>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욕구들> <개와 나> 캐럴라인 냅이 남기고 간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 소중하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한 권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명랑한 은둔자>를 택할 것이다. 고독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와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유려함과 위트를 모두 갖춘 뛰어난 필력으로 작품을 남기고 떠난 캐럴라인 냅. 언니다운 언니를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서 이 책은 그 역할을 대신해 주기에 충분하다. 살면서 이런 언니를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10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반까지만 해도 이 책은 광기 어린 한 과학자에 관한 전기로 여겼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덮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도 있었다. 전기인가 역사서인가 과학서인가 철학서인가.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 예측 불가능한 이 책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다면 이 책을 선택한 수많은 독자들과 마음을 같이 하게 될 것이다. 몇 개의 짧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이 책을 통해 과학과 인간, 자연과 삶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오래 기억에 남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