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대 근미래 대한민국, 세계 최초의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중고등학교 ‘학당’이 문을 열고 이제 학생들은 모두 자신만의 ‘아바타’의 모습으로 실제 학교와 똑같은 모습의 ‘학당’에 등교한다.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모습이 종종 목격되고, 그 유령의 정체는 ‘학당’의 두 번째 입학식 날 놀라운 사건과 함께 밝혀지게 되는데.
선천성 근위축증으로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본 작가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소외된 존재들을 위해 세상에 던지는 질문!
“그런데 왜 유령이어야 하죠?”
선천성 근위축증으로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본 작가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소외된 존재들을 위해 세상에 던지는 질문!
“그런데 왜 유령이어야 하죠?”
<슈뢰딩거의 아이들>은 ‘학당’이라는 가상현실 교육 시스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0대 인물들의 성장 서사를 다룬 경쾌한 소설이다. 각각 개성을 지니고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행동하고 말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정체성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 조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뛰어난 SF는 현실을 기울이고, 다른 각도로 접고, 세계의 가려진 뒷면을 드러내 독자의 인지적 확장을 유도하는데, 그러한 기준에서도 이 소설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달리 바라보게 만드는 SF로서 성공적이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
고(故) 문윤성 작가는 1965년 한국 최초 SF 장편소설 《완전사회》를 발표해 당대 문학계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자·과학 전문 일간지 <전자신문>과 SF 전문 출판사 <아작>은 문윤성 작가를 기리며 한국 SF의 도약과 문학의 다양성, 세계화를 이끌어갈 작가 여러분의 소중한 작품을 기다립니다.
-왜 SF를 쓰는가.
▲'왜'가 오랜 습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왜'라는 질문으로 어른들을 고통 받게 한 전력이 있다. 애매모호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것이 마음 편하다.
처음에는 SF가 단순한 장르에 불과했지만 알고 보니 나와 인연이 꽤 깊다. 어렸을 때 뭔가를 무서워해 트라우마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SF다. 인공지능, 로봇, 에일리언, 좀비 등등. 어렸을 땐 SF가 주는 경이감을 몰랐다. 그 떨림을 꺼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SF를 사랑한다.
+ 더 보기
SF는 새로운 시각도 선물했다. 그중 하나가 장애다. 고백하자면, 나는 장애인이면서 장애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도 되도록이면 장애를 피했다. 그러나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자 그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지금은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려고 공들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 SF란 실험용 도구, 만능 도구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SF는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기승전결' 중 '전'을 향해 가는 것 같다. 물을 탔다. 'K'를 붙이는 한국형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현재 K-SF는 어떤 고유의 성질을 체득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아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SF를 쓰시는 분들은 그 아픔을 문자 그대로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과연 그것이 빛을 발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 접기
▲'왜'가 오랜 습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왜'라는 질문으로 어른들을 고통 받게 한 전력이 있다. 애매모호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것이 마음 편하다.
처음에는 SF가 단순한 장르에 불과했지만 알고 보니 나와 인연이 꽤 깊다. 어렸을 때 뭔가를 무서워해 트라우마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SF다. 인공지능, 로봇, 에일리언, 좀비 등등. 어렸을 땐 SF가 주는 경이감을 몰랐다. 그 떨림을 꺼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SF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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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새로운 시각도 선물했다. 그중 하나가 장애다. 고백하자면, 나는 장애인이면서 장애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도 되도록이면 장애를 피했다. 그러나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자 그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지금은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려고 공들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 SF란 실험용 도구, 만능 도구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SF는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기승전결' 중 '전'을 향해 가는 것 같다. 물을 탔다. 'K'를 붙이는 한국형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현재 K-SF는 어떤 고유의 성질을 체득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뜻하는 바는 아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SF를 쓰시는 분들은 그 아픔을 문자 그대로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과연 그것이 빛을 발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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