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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

• P.67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면 졸리다. 눈이 내리면 하늘은 잿빛이 된다. 그러면 왠지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진다. 평소엔 하지 않았던 이러저런 루틴이 생긴다. 눈이 내리면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용서하고 싶어진다. 눈이 내리면 밟고 싶어져서 그 길로 동네를 산책하고 싶어진다. 또 눈이 내리면 음악 없이 걷는다. 그러면서, 눈송이가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잘 지낼까, 라테를 마실까, 무슨 영화를 볼까. 눈은 모든 감정을 다림질해서 그가 오면 깨끗해진다. 안부에서 설렘으로 그리움으로 이해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날엔 해를 보기 힘들어서 아주 맛있는 케이크를 혼자 먹고 싶어진다. (<겨울어 사전>)

• P.20

  안녕, 적요하고 포근한 나의 밀실 나의 동굴. 숨이 차지 않고 무거운 목덜미를 가뿐히 내려놓을 수 있는 요새. 집이라고 내뱉는 순간 열이 내린다. 머리카락과 양 볼, 코끝에 바람 냄새를 잔뜩 묻히고 돌아왔다. 숨을 깊숙이 들어마시면 먼지 쌓인 방의 창문을 여는 느낌, 겨울바람에는 박하향이 난다. 오래된 연못처럼 고요하게 낡은 이 집을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이야. 중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호박한 거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 (<크리스마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