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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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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시삼', 말 그대로 도시에서 4일을 살고 시골에서 3일을 살겠다는 건 작가에게 크나큰 결심이었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오십 중반이 되어서 삶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 반절짜리 귀촌을 선택한 작가는 시골에만 가면, 빽빽한 빌딩숲을 벗어나 나무와 흙냄새 나는 시골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그 생활도 숨 가쁘긴 매한가지였다. 관성을 뿌리치며 일터인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매주 오가는 것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살면서 부러 외면하고 떨어뜨려 놓았던 본질과의 밀당이 본격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는 때론 집요하게 때론 무심하게 나를 되찾기 위한 작가의 본질 회복 에세이다. 집요하게 살았다. 무심해지려고도 애를 썼다.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라는 본질은 금형 프레스에 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작가는 살기 위해 귀촌을 선택했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꽉 채웠던 자연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리라 믿었다. 에세이를 읽으면 볕이 잘 드는 마당에 앉아 따스했던 옛집의 풍경을 떠올려보고 나라는 존재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 시(詩)가 한 사람의 얼굴이라면 에세이는 한 사람의 몸뚱이다. 에세이에서 착하고 아름다움이 드러나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된다면 그 사람은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무리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본인을 철저히 위장할 수는 없다. 눈 밝은 독자는 그 위장마저 다 가려내 그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마련이다. (중략) 글을 읽는다는 것이 지식을 더한다거나 생각을 바꾼다거나 하는 변화를 촉발하는 동인(動因)이라면 그것은 너무 바람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한순’의 에세이는 최소한 나를 변화시켰기에, 성공한 글이다. : 작가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피어오르기 위해 태어난 꽃의 일부임을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목련꽃 봉오리처럼, 진달래꽃처럼, 언젠가는 분명히 피어오를 존재가 되는 듯한 느낌에 행복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람과 삶과 세상을 온몸으로 꼭 껴안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도심 속에서도 월든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복잡한 문명 세계 속에서도 꽃과 나무와 숲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따스한 위로와 슬기로운 일상 가꾸기의 레시피를 담뿍 얻어가기를. : “너와 나의 호흡이/깃들 수 있는 공간을 두는 일”의 가치를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부지런히 집을 짓는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건축자재로 활용된다. 책을 한 권 기획하고 펴낼 때마다 벽돌이 한 장 또 놓여지고, 꽃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벽엔 꽃무늬가 새겨진다.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온기는 이 집을 데워주고 식혀주는 연료다. “조화롭게 섞이는 자연의 법어”를 따라 지어가는 집. 눈송이도 빗방울도 바람 소리도,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 하나하나 오롯하게 제 무늬를 남기는 집. 이 책은 “서울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토닥토닥 투닥투닥 우당탕쿵쾅” 마음으로 완성해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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