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시선 81권. 이중희의 첫 시집. <우자천려>에는 자연에 관한 시가 많다. 이중희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순수와 순백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삶(타인의 뒤를 따르지 않는)에 대하여 깊고 넓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이중희 (지은이)의 말
누군가가 시는 마음이 설렐 때 써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꿈이 많고 마음이 설렐 때가 많았던 젊었을 때 나는 먹고살기에 바빠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마음이 설레기보다는 사랑스럽고 그리운 것만은 젊었을 때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늙을수록 마음이 여려지기 때문인지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에도 때로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을 잘하는 편이다. 사랑스럽고 그리운 건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거다. 그런 감정으로 글이라도 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정작 시간이 많아지니 나도 모르게 나태해져 어영부영 시간만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밥만 축내는 늙은이가 될 것 같아, 언제부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여 컴퓨터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 나의 글쓰기이자 취미였다. 뒤늦게 열을 내어 돌을 다듬고 연마하여 보석을 만드는 보석기능공처럼 나도 백련천마(百鍊千磨)의 정신으로 쓰고 버리고 또 쓴 것이 바로 이 책에 있는 글들이다.
돌이켜보면 운이 좋아 문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나는 시에 대한 기본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문구의 절제와 운율(韻律)의 조절은커녕 감정이나 의미를 감추기조차 싫어하는 사람이다. 다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내가 가진 것은 오직 용기 하나뿐이다. 그러기에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 느낀 것을 꾸밈없이 시라고 써왔다.
그나마 머릿속에 남아있는 몽당연필처럼 짧아진 생각을 약 주머니로 약을 짜듯 짜고 또 짜고, 가슴속에 있는 말라붙은 감정을 끊어진 실을 잇듯 잇고 또 이어 시랍시고 써보았다. 그러다 보니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것처럼 본질은 잊고 언뜻 떠오르는 생각으로만 썼기에 시라기보다는 푸념만 늘어놓은 꼴이 돼버렸다. 시를 쓴다고 어리석은 사람이 울림도 없는 생각만 많이 했기에 책의 제목도“愚者千慮 우자천려”라고 정했지만 전문가의 눈에는 신변잡기로 보일지 모를 일이다. 다행이 의욕만큼은 남 못지않아 여태껏 써놓은 글이 1000여 편이 넘는다.
비록 서투른 습작수준의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그냥 버리자니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고, 놔두자니 성을 쌓고 남은 돌(築城餘石 축성여석)처럼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았다. 그런 갈등 속에 살다가 어느새 나이 팔십이 되었다. 그 동안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야 오죽하였으랴마는,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가 때를 넘기면 안 될 것 같아 부랴부랴 서둘러 만든 것이 이 책이다. 막상 책을 펴내자니 어설픈 몸을 자랑하고 싶어 옷을 벗은 아이처럼 보일까 싶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눈에 거스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늙은이의 푸념으로 이해하시고 너그럽게 보아주시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