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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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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문학동네, 2022)으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고명재 시인의 첫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출판사 난다에서 펴낸다. ‘사랑’이라는 이상한 리듬을 말하기 위한 무채색에 얽힌 백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무채색은 색상과 채도가 없고 밝고 어두운 차이만 있는 색을 말한다. 흰색에서 회색을 거쳐 검은색에 이르는 무채색은 그 자체로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색. 있고 없음 사이에서 존재하는 비존재의 색이다. 시인이 살펴본 무채 속 풍경은 사랑이라는 밥솥에서 끓어오르는 밥물과 같다. 누군가를 먹이고 돌보려 먹이는 하얀 밥, 흰살 생선, 밀가루, 두부, 멸치의 은빛, 능이버섯, 간장, 양갱…… 고명재 시인은 이 첫 산문집에서 우리에게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늘어난 속옷처럼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다시 보면 우아한 우리의 부피” 같은 사랑을. 정현우 선정 2023 올해의 책 고명재의 첫 산문집을 넘기면 겨울 하늘에서 쌀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흩어진 쌀알을 다시 주워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깊고 맑은 시인의 겨울이 궁금했다. 비구니와 손을 잡고 세상을 배워나간 그의 언어를 보면서 나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한 채 숨죽인 채 있었다. 멸치의 빛깔 속에서 덜 가난한 기분을 느끼는 소년이 있고, 할머니의 백발 속에서 사랑을 헤아리는 시인이 있고, 죽은 개들과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의 슬픔을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무채색으로 덧칠하는, 그 시절의 그 소년의 눈빛을 보고 싶다. 내게는 여전히 겨울은 폭설을 삼킨 눈보라의 밤이 가득한데, 이 시인의 내리는 눈 속은 따스하고, 매우 선명하며, 영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리는 것이다. 무채색의 햇빛을 가득 꽃처럼 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깍지를 끼기도 하고, 배추를 절이기도 하는, 검버섯을 꽃이라고 보는, 사랑이 가득한 이 시인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국을 떠먹는 엄마를 보고, 슬픔이 아니라 사랑과 시가 문을 열고 나오는, 잊혀진 장면들이 일제히 환해지는. 나는 이 시인의 겨울 속에서 오래도록 눈을 맞고 서 있고 싶다. 눈송이 한 움큼씩, 눈이 시리도록. ![]() : 고명재의 첫 산문집을 넘기면 겨울 하늘에서 쌀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흩어진 쌀알을 다시 주워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깊고 맑은 시인의 겨울이 궁금했다. 비구니와 손을 잡고 세상을 배워나간 그의 언어를 보면서 나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한 채 숨죽인 채 있었다. 멸치의 빛깔 속에서 덜 가난한 기분을 느끼는 소년이 있고, 할머니의 백발 속에서 사랑을 헤아리는 시인이 있고, 죽은 개들과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의 슬픔을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무채색으로 덧칠하는, 그 시절의 그 소년의 눈빛을 보고 싶다. 내게는 여전히 겨울은 폭설을 삼킨 눈보라의 밤이 가득한데, 이 시인의 내리는 눈 속은 따스하고, 매우 선명하며, 영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리는 것이다. 무채색의 햇빛을 가득 꽃처럼 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깍지를 끼기도 하고, 배추를 절이기도 하는, 검버섯을 꽃이라고 보는, 사랑이 가득한 이 시인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국을 떠먹는 엄마를 보고, 슬픔이 아니라 사랑과 시가 문을 열고 나오는, 잊혀진 장면들이 일제히 환해지는. 나는 이 시인의 겨울 속에서 오래도록 눈을 맞고 서 있고 싶다. 눈송이 한 움큼씩, 눈이 시리도록.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동아일보 2023년 6월 17일자 '책의 향기/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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