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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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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오영아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그녀에게 동의와 양해를 요구한다. 잘 웃고 잘 배려하고 잘 참는 게 장점이었던 오영아는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들의 가치관을 동경하며 또한 존중한다. 오영아는 환경과 동물과 연인을 사랑하는 건 ‘바람직하기’ 때문에 동참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오영아는 주변과의 갈등을 피하려 억지로 웃고 사과한다. 취미와 습관도 바꾼다.
무리하던 오영아는 결국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웃는 법과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는다. 주변의 걱정에 힘입어 오영아는 심리치료를 결심한다. 뇌 시술을 연구하는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오영아는 4주 동안 효과가 지속되는 ‘정서 조절’ 시술을 받는다. 그 여파로 통제력이 완전히 사라진다. 스프링처럼 눌려 있던 욕망. 자기 합리화, 분노, 억울이 폭발적으로 튀어 오른다. 그녀는 파괴적인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속으로 ‘시발 새끼’라는 욕을 한다. 담아뒀던 말을 토해낸다.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책과 더불어 쏟아지는 건 강렬한 해방감이다. 오영아는 당황하고, 이 시술의 정체를 알기 위해 다시 센터를 찾지만 시술 효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답을 듣는다.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해방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기 시작하는 오영아. 그녀는 자신을 ‘선함’으로 이끌어 준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묵은 감정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정성 들여 쌓아 올린 ‘관계’라는 감옥을 부수려는 시도. 하지만 시술의 효과가 사라지는 날은 매정하게 다가온다. 그녀에게는 과연 어떤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추천의 말 ![]() : 여기 웃음을 잃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억지로 웃는 사람. 귀찮고 민망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단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최선을 다해 배려했으나, 무심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그래서 또 사과하는 사람. 아, 지긋지긋한 인생. 그녀는 변화를 원한다. 이 모든 게 다 뒤집히기를 바란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 그 순간, 도파민이 폭발한다. 억눌려 있던 그녀의 잿빛 마음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진심으로 끝내주게 웃는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근래 이렇게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듯, 탐욕스럽게 읽어 내려간 소설이 또 있었던가. 날렵하고 노련한 문장과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플롯. 무시무시하고 저돌적인 기세. 대담한 인물 설정과 날카로운 시선. 감탄을 거듭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충격적인 결말에 도달해 있었다. 쾌감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내가 쥐고 있는 건 오렌지일까, 빵칼일까. 아니, 내 손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 웃음이 나온다. 진심으로. 청예 작가 덕분이다. : 삶은 힘들고, 불편과 불만과 불쾌로 가득 차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건 ‘평범’이다. 그 평범함을 참지 못한 개인은 유별나고 나쁜 사람으로 인식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거기에 대한 항의를 세상에 던진다.
“시발 새끼.” 그 항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피곤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유쾌한 필체로 유려하게 쓰여가는 이야기가 공감을 넘어 그것을 마치 내 얘기라고 받아들이게 한다. 소설 속의 ‘나’는 드디어 진짜의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모든 세상이 ‘네!’를 외쳐야 마땅하다고 강요할 때 ‘아니!’라는 소리를 내지르는 주인공을 보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다른 사람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는 이 세상이 과연 맞냐고 독자에게 따져 묻는다. 하지만 평범을 넘어 본능의 갈망을 좇아 사회의 중앙선을 침범하면 그것이 바로 금기라는 점까지 놓치지 않고 말하는 작품이다. 죄책감 없이 행해지는 본능이야말로 인간의 진면모라고 말하는 거짓은 소름 끼친다. 읽는 내내 너무 공감이 갔다. 문장이 재미있고 시원해서 히죽거리며 웃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한다. 오늘 하루, 쳇바퀴 속에서 똑같이 달린 자신의 모습에 지친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 표지의 상큼한 색깔과 얇은 볼륨으로 즐겁게 읽기 시작했던 책이 점점 무거워졌다.
_ (@book_readingwhale) : 물론, 이렇게 터프하고 단호한 이야기를 예상하지는 않았다. 오렌지는 상큼하고 빵칼은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으니까. 아, 그래서 오히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걸지도. 걱정 말고 탑승하셔도 좋습니다. 다소 안전한 편입니다.
_ (@kim_zer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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