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시각 3권. 새로운 사회공동체 형성을 위한 사회철학과 정치이념에 몰두해온 한 정치철학자가 펼쳐놓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이야기다. 필자는 인간 본연의 도덕감정을 토대로 사회질서가 달성될 때 최선의 국가가 이룩될 수 있다는 스미스의 논지를 빌려, 정신적 공황에 빠져버린 한국사회를 향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이 책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주창자로만 전유되기 이전에, ‘공감과 소통’의 문제를 필생의 화두로 삼았던 도덕철학자로 보아야 한다. 『도덕감정론』은 인간행위의 도덕적 적정성 문제에 천착한, 애덤 스미스 사유의 정수가 담긴 노작이었다. 이 책은 그간 애덤 스미스에게 덧씌워졌던 오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의 시도이자, 인간본성에 토대를 둔 ‘도덕적 감수성’의 회복에 관한 호소의 메시지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도덕감정론』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는 1부에는 애덤 스미스를 읽은 필자의 입장과 그로부터 찾아낸 현실적인 유의미성이 함께 담겨 있다. 『도덕감정론』 강독의 형식을 취한 2부는 텍스트 내부로 진입하여 원서를 목차 순으로 차근차근 따라 읽는 데 주안을 두었으며, 필자가 이해하면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주제들을 엮어 재구성했다.
최근작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맑스와 자본> ,<이기적인 개인, 공감하는 도덕> … 총 15종 (모두보기) 소개 :독일 마부르크(Marburg) 대학에서 칼 마르크스의 정치이론, 정치사상, 정치경제학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와 인하대에서 연구교수 및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논문으로는 「칼 폴라니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기획과 진화’」,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이론에 관한 소고」, 「맑스에 있어서의 언어와 정치」, 「‘노동’과 ‘잉여가치’ 생산의 관점에서 본 Karl Marx의 ‘권력’ 개념」, 『정치경제학비판』의 사회적 소통구조에 관한 일고찰」, 「애덤 스미스와 ‘공감’의 정치」, 「소통담론의 관점에서 본 애덤 스미스의 ‘도덕’과 ‘정치경제학’」,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 나타난 스미스의 정치이론에 관한 소고」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이기적인 개인과 공감적인 도덕』, 『맑스와 자본』,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등이 있다. 역서로는 『현대정치이론』, 『맑스와 정의: 자유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 『정치학:현대정치의 이론과 실천』 외 다수가 있다. 줄곧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과 『국부론』보다 먼저 이해해야 할
애덤 스미스와 『도덕감정론』에 대한 한 통찰
-“인간행위의 적정성과 부적정성을 묻다”
새로운 사회공동체 형성을 위한 사회철학과 정치이념에 몰두해온 한 정치철학자가 펼쳐놓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이야기다. 필자는 인간 본연의 도덕감정을 토대로 사회질서가 달성될 때 최선의 국가가 이룩될 수 있다는 스미스의 논지를 빌려, 정신적 공황에 빠져버린 한국사회를 향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이 책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주창자로만 전유되기 이전에, ‘공감과 소통’의 문제를 필생의 화두로 삼았던 도덕철학자로 보아야 한다. 『도덕감정론』은 인간행위의 도덕적 적정성 문제에 천착한, 애덤 스미스 사유의 정수가 담긴 노작이었다. 이 책은 그간 애덤 스미스에게 덧씌워졌던 오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의 시도이자, 인간본성에 토대를 둔 ‘도덕적 감수성’의 회복에 관한 호소의 메시지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도덕감정론』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는 1부에는 애덤 스미스를 읽은 필자의 입장과 그로부터 찾아낸 현실적인 유의미성이 함께 담겨 있다. 『도덕감정론』 강독의 형식을 취한 2부는 텍스트 내부로 진입하여 원서를 목차 순으로 차근차근 따라 읽는 데 주안을 두었으며, 필자가 이해하면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주제들을 엮어 재구성했다.
『도덕감정론』-『국부론』보다 17년이나 먼저 쓰인 책
『국부론』이 출간되기 17년 전, ‘도덕철학자’ 애덤스미스는 『도덕감정론』(1759)을 출간한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질서의 토대로서 인간의 도덕감정에 관해 다룬다. 이는 어떤 도덕감정을 토대로 사회가 구성될 때, 가장 적정한 사회질서를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논의들이다. 그는 ‘공감’이라는 도덕감정을 논의의 핵심으로 삼아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인간행위의 적정성과 부적정성 그리고 사회정의의 문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인간과 사회 전반에 걸쳐 당대의 윤리학 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물론 『도덕감정론』은 사람들에게 『국부론』 만큼의 유명세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이론적ㆍ실천적 연관성을 공유하는, 공식적으로 동일한 철학이 두 형태로 표출된 한 책과 마찬가지다. 『국부론』의 이론적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도덕감정론』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전제에 입각해 자본주의의 국부(國父)라는,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독과 편견을 바로잡고자 했다.
내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를 위하여
『도덕감정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쇳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 인간감정의 (비)도덕성 여부를 판단하는 추(錘)로서 ‘공정한 관찰자’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철학적인 설명을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현실에서 발견되는 존재는 아니다. 당연히 실제적이고 법률적인 집행 권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인간의 감정과 행위의 적성성을 판단할 때 그 준거가 된다. 스미스는 ‘내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텍스트에 빈번하게 등장시킨다.
또한 ‘공정한 관찰자로서의 나’는 일종의 ‘일반화된 타자’로서, 사회규범 혹은 사회도덕과 맥락을 함께한다. 즉, 인간 본연의 도덕감정에서 출발한 스미스의 논의가 사회적 관계로 확장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자다. 『도덕감정론』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는 여러 가지 덕성들-자제, 정의, 자혜, 신중함 등-과 도덕규칙들은 이 공정한 관찰자의 판단에 따르거니와, 필자는 사회가 있기 위해 요청되는 사려와 정의의 일반규칙들 그리고 사회의 번영을 증대시켜주는 자혜로운 행동들이 모두 여기에 터를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상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 우리가 애덤 스미스를 기억하는 건 ‘보이지 않는 손’이란 저 유명한 메타포를 둘러싼, 자유방임주의자.국가불간섭주의자.시장지상주의자.자유무역옹호론자 정도의 맥락 없는 수사들에 불과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고 한들, 글로벌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혹은 폐해)의 맹아를 그로부터 잡는 인식 정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설명이 스미스와 그 사상의 궤적을 지극히 제한한 것에 불과하고 본다. 사회적 행위의 출발점이 개인화된 인간의 이기심이라거나,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이 역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호소를 통해 발생한다거나, 여러 차원에서 개인 간 이해관계의 추구로부터 공동체의 이해관계가 만족된다든지, 국가는 치안 위주의 소극적 차원에서 단지 시민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보존하는 데 그 존재의 필요가 있다고 보는 등의 자유방임주의적 해석에 따를 경우, 예컨대 스미스가 강조하는 ‘정의’ 개념은 합법성의 관점에서 ‘교환적 정의’에만 한정돼버린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가 진정으로 의도했던 바는 상업사회(초기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사회의 이해관계에 우선한다거나 그 반대라는 종류의 논의가 아니다. 스미스에게 가장 중요했던 명제는 ‘개인과 사회의 균형 발전’이었다. 그에게 개인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도덕감정을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회 혹은 공동체 속의 개인이었다. 개인과 사회는 부분과 전체 같은 도식적인 관계를 넘어, 공감이라는 기제로써 소통하는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한다.
개인과 사회의 균형 발전 역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달성된다. 이 개념은 정치?경제의 영역에서 폭력과 강제, 임의성과 자의성을 배제한다. 그리고 언제나 행위의 도덕적 적정성과 이에 기반한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손 속에서 구성원들 간의 상호 공감과 배려가 작동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공감, 그 ‘도덕적 감수성’을 찾아서
애덤 스미스에게 공감이란 도덕률의 토대이며, 인간은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는 생명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도덕성 속에는 공동체적 삶이 내포되어 있다. 공감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자의 입장에서 특정한 상황을 이해하게 만드는 기제로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로부터 형성된다. 공감을 향한 욕구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보다 가치판단의 원천이 되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타인과 자신에 대한 이해 과정은 인간의 감각을 문명화시킨다.
사실 가장 적정하고 본래적인 의미에서 공감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기쁨에 대한 동포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포감정을 의미한다. 비탄에 대한 공감은 어떤 의미에서는 기쁨에 대한 공감보다 더 보편적이다. 비탄의 정도가 지나치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에 대해 동포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필자는 스미스가 『도덕감정론』 서두에서 강조한 문장이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는 것은 너무 명백해서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다”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기획이 아니라 ‘자연의 작품’
스미스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도덕감정이 과도하게 자신을 뽐내는 이성보다 더 좋은 안내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자연적 자유’에 의지한다면, 인간은 스스로 안정적이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건전한 사회질서를 가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질서에 대한 그의 관념은 무엇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가들의 의도적인 기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익한 사회질서는 도덕적 행위의 적정성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학문적 탐구는 이렇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간행동의 자연적인 원칙들을 확인함에 있었다.
따라서 도덕이라는 단어 속에는 자연 개념이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미스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생활할 때, 즉 가장 ‘내적인 충동’을 따를 때 도덕적이다.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 이것이 도덕이다!” 스미스의 단언은 이렇다.
그렇다면 국가에게 도덕은?-『도덕감정론』 적극적으로 읽기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자유방임주의적인 국가가 스미스의 지향은 아니었다. 국가는 개인과 사회의 방종을 그대로 두어선 안 되며,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후반부에서 방종의 체계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미스에게 사회 혹은 ‘가장 큰 사회(국가)’는 개인들의 공감, 선행, 정의, 사회적이거나 비사회적인 열정 그리고 이기적 열정 등이 행동의 적정성과 부적정성의 원리 속에서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공동체다. 스미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도덕감정에 위배되는 비사회적.이기적 인간행동들을 비판하면서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과 개인의 행복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했다.
이 토대 위엔 국가의 권한과 역할이 엄연히 존재한다. 국가 역할에 대한 스미스의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다양한 도덕감정들 중에서 특히 ‘정의’라는 덕성을 사회의 기본적 토대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정의감정을 근거로 근대국가는 시장 독점을 저지하고, 소비자들에게 질 높은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법들을 보장해야 한다.
스미스는 “완전한 자유와 정의의 자연적 질서”를 의미하는 국가의 공적 정신은, 상인과 기업가의 도덕적 적정성을 넘어선 탐욕스러운 행위가 타인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한다면, 국가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즉, 국가의 간섭은 자연적 자유체계와 정의사회의 실현을 위해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권한들이 행사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즉, 위정자는 항상 도덕적 적정성에 입각해 판단하고, 치밀함과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위정자가 이러한 점을 무시하거나 과도하게 권한을 밀고 나갈 경우, 그 권한은 도리어 자유와 안전 그리고 정의에 파괴적인 요인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자연스러움에 바탕을 둔 행복한 삶의 철학
필자의 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좇아 스미스가 강조한 덕성 중에서 자제와 정의, 보상과 처벌 등 사회적인 덕성과 기능에 비중이 쏠리기는 했지만, 이 책(제2부)에서는 신중함의 덕성을 근거로 마음의 평온을 구하는 자들의 행복, 지혜로움, 자혜와 양심 그리고 자기성찰 등 스미스가 언급한 도덕감정의 다양한 양상들과 『도덕감정론』의 마지막 두 장에서 체계화된 ‘도덕철학체계’의 엣센스가 정갈하게 망라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