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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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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베아트릭스 포터는 자신의 친구이자 전 가정교사의 아들이 아팠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낸다. 엄마의 당부를 어기고 맥그래거 아저씨네 정원으로 몰래 숨어드는 장난꾸러기 꼬마 토끼.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토끼'인 <피터 래빗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꼬마 토끼의 모델은 그녀의 반려동물이자 "다정다감한 동반자, 그리고 조용한 친구"였던 토끼, 피터 파이퍼였다.
그림 편지를 다시 엮어 쓴 이 원고는 수많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와 '꼬마 토끼' 독자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정식으로 프레더릭 원 출판사와 계약된 이 책은 발매되기도 전에 초판 8,000부가 전부 팔리는 큰 성공을 거뒀고, 그녀는 놀라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은 정말 토끼를 좋아하나 봐요! 이렇게나 많은 피터가 세상에 나오다니!" 베아트릭스가 서른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피터 래빗 이야기>는 1902년 출간 후 1년 만에 5만 6,000부 넘게 인쇄되었고,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1억 5,000만 부 넘게 판매되며 독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그녀가 쓴 동화책들의 탄생 과정, 작품 소개, 동화 속 삽화와 원화 스케치 등을 통해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여성에게는 참정권조차 없던 1900년대의 영국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동화작가, 농부로서 자신의 삶을 꾸려간 그녀,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서문 1 일상에 기쁨을 불어넣는 관찰, 그리고 상상의 힘 : 《피터 래빗의 정원》을 다 읽고 나서 베아트릭스 포터와 내가 같은 비밀 단체의 소속이란 걸 알게 됐다. 비밀단이라 이름을 공개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관찰파’라는 단체다. 우리의 사명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조용히 세상을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세밀하게 그려보고, 우주의 틈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각자 마음에 드는 전문 분야를 선정한 다음 (베아트릭스 포터의 경우엔 토끼와 버섯이었지) 평생, 조용히, 그 안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평생 아마추어 예술가처럼, 아마추어 인간처럼 살아간다. 우리는 세상에 무뎌지지 않고, 낡지 않는다. 관찰파에 관심이 생기는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라. 여기 관찰에 대한 모든 비밀이 숨어 있다. : 나는 그림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던 시절, 무작정 베아트릭스 포터의 그림을 베껴 그리며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나갔더랬다. 의인화된 동물 그림이야 세상에 널리고 널렸건만, 유독 그녀의 그림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베아트릭스 역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미대는커녕 여성에게는 그 어떤 활동도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 혼자서 치열하게 생쥐, 토끼, 나비 날개 패턴 따위를 연구하며 그려댔다. 그리고 그 유명한 《피터 래빗 이야기》를 비롯해 많은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이 책과 함께 나는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이 어째서 그토록 특별했는지, 왜 그토록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조금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하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여전히 나의 등불이다. 이 책은 지치고 게을러진 나를 치열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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