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한 고미숙의 인문처방전. 언제부터인가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끊임없이 들린다. 마치 경제만 풀리면, 더 노골적으로 돈만 있으면 우리가 지금 겪는 삶의 어려움들이 모두 해결될 것처럼. 하지만 정말 그런가? 고미숙의 자문(自問)은 여기에서 출발하여 우리시대 우리 삶의 문제들과 하나씩 부딪혀 간다.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이 시대에 어째서 이렇게 자살과 우울증과 타인에 대한 혐오와 자기 파괴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끊이지 않는지, 열심히 쌓는 스펙이 왜 인생을 구원하지 못하는지, 왜 삶의 현장을 다루는 정치와 경제가 삶의 근원인 ‘몸’과 만나지 못하는지, 장수의 축복이 어째서 노년도 청년처럼 사는 것으로―중년 이후의 삶이 ‘안티 에이징’을 향해서만 달려가게 되었는지….
이 삶의 문제들을 장자와 동의보감 등 동양고전은 물론 들뢰즈와 스피노자 등 서양철학자들의 사유와 함께 풀어 나가며 저자는 삶을 위한 정치, 생명과 통하는 경제는 어떻게 가능한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 자신의 삶의 경험과 함께 말한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기업가, 언론인, 교육자 등 각계각층의 모든 이들이 틈만 나면 이 구호를 외쳐 댄다. ‘문제는 경제’, 아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문제는 돈’이라고. 경제가 살아나면, 돈만 들어오면 만사형통이라고. 한때 나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살아 보니 그건 픽션이고 판타지였다. 의식주의 기본을 제외하고 돈으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타인의 마음을 살 수도, 마음을 치유할 수도, 운명의 비전을 탐색할 수도 없었다. 돈으로 가능한 건 소비와 상품뿐이었다. 그것이 길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를 제목으로 삼게 된 이유다.
이 말의 청자는 나 자신이다. ‘문제는 경제야’라는 풍문에 휩싸여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이제야 비로소 길을 찾은 것이다. 적막 뒤에 오는 환희는 역시 짜릿하다.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