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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현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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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시선 10권. 양문규 시집. 양문규 시인은 ㈜실천문학사 기획실장으로 일하다가 1999년 낙향한 이후 천마산 중화사와 천태산 영국사에 머물다 2008년 천태산 은행나무 옆 자락 작은 토담집을 얻어 '여여산방(如如山房)'이라 스스로 이름 붙이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꿈꾸며 살아왔다.

양문규 시인의 여여산방 생활은 "애원하지 않아도 농사가 시와 노래가 되는 풍경"으로 "살아가는 길이 한평생 꽃만 같아서 벌 나비도 훨훨 붕붕거"렸다. 또한 "천 년 은행나무 아래 은행잎처럼 쌓이고/쌓이고 쌓인 책을 잠을 자다가 읽고/밥을 먹다가 읽고/똥을 누다가 읽고/신발을 신다가 읽고/읽고, 읽다가 또 책을 쌓고/또 하루가 쌓이고/몸의 중심에 쌓인 또 다른 책이/또 나를 불러 또박또박 읽"는 생활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을과 절집과 우편배달부와 등산객이 한데 어우렁더우렁 꽃이 되고 별이 되고 흥성흥성 노래가 되는" 이웃이 있었으니 "돌아갈 곳이 어딘가 묻"지 않아도 "소담하게/꽃이 열"리는 무한공간이었다. 양문규 시인은 "오랫동안 여여하면서 여여하지 않을 때 많았지만 또한 여여하지 않았던가. 꽃이 피고 지고,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쳤다. 그리고 그 자리 또 꽃이 피지 않았던가." 적고 있다.

: 각박한 현실이 천태산 은행나무를 옥죄지만 지혜롭게도 양문규 시인의 시집에는 화초와 수목, 곤충과 짐승이 가득하다. 돌단풍이나 노루귀에서 머루와 다래, 은행나무와 미루나무, 호랑지빠귀에서 부엉이, 개구리에서 벌과 나비 등 자연 사물이 셀 수 없이 등장한다. 이런 생물들은 구름과 바람, 바위와 산과 어우렁더우렁 어울리고 흥성흥성 노래를 한다.
비와 햇살, 달빛과 별빛 아래서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교섭하며 화엄을 이룬다. 은행나무는 천수천안관세음이며, 얼레지꽃은 시인이 흘러간 봄날을 돌아보게 하는 회상의 매개이고, 상사화는 여든이 넘어서도 이별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감정이다. 늙은 나무들은 늙어가는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밤하늘 별들이 비안개 속에서도 구름을 개고 산길에 꽃을 무더기로 뿌려놓은 그 길을 여여하게 걸어가는 시인의 모습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 양문규 시인은 나무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가 지키는 충북 영동 천태산 은행나무는 고향의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책이다. 시인은 「겨울나무」에서 한달음에 선시를 쓰듯 “허공에 기대어 천 년//한겨울 눈 속 천수천안관세음(千手千眼觀世音)//영국동 은행나무”라 정의하였다. 그래서 시인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태산 은행나무 언덕에 기대어 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크고 선하고 맑다. 그러나 안타깝고 서러워라. 이 시집은 그 여여(如如)한 나무 밑 공동체를 떠나야만 하는 ‘나무 사람’의 만가(輓歌)인 것을. 이제 산사에 개발 바람이 불어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능구렁이 울음 같기도 황소울음 같기도 한 소리를 내는 수령 1,300년 된 은행나무를 시인 혼자 지키기에는 벅차게 되었다.
시집에는 은행나무와 함께한 천태산 한 귀퉁이에 작은 토담집 들여 이름한 여여산방(如如山房)을 떠나야 하는 시인의 울음이 가득하다. 삶의 고비마다 “몇 번이나 강가를 다녀”온 사내가 입산하여 나무를 지키는 아름다운 삶을 천직으로 받들다가 예순 고개 바라보는 나이에 산방에서 떠나야 하는 비애가 짙다. 시인이 늙은 나무에 깃들여 사는 구름과 바람과 비와 햇살에게, 풀과 꽃과 까치와 다람쥐와 애기벌레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절이 보이는 산모롱이에 홀로 앉아서 “가만 절할 때”(「찔레꽃」), 우리도 그 ‘여여하였다’는 마음이 다시 나무 밑 공동체를 세울 것임을 믿어보는 수밖에.

최근작 :<내 멋대로 생생>,<여여하였다>,<천만 촛불바다> … 총 16종 (모두보기)
소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여여하였다』.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이 있다.

양문규 (지은이)의 말
불혹의 나이에 에움길 돌고 돌아 천태산 은행나무 품에 안겨 살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삶터를 찾아 떠나야만 하는 비애가 컸다. 그것은 각박한 현실의 세파에 밀려 쫓겨난 눈물이 아니라 꿋꿋하게 지탱하던 마음의 집이 한순간에 허물어진 것이었다.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게 자연의 순리라 믿는다. 때가 아닌 때에도 떠나야 하는 것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긴다. 내게 영국사와 천태산 은행나무와 여여산방이 그러했다.
오랫동안 여여하면서 여여하지 않을 때 많았지만 또한 여여하지 않았던가. 꽃이 피고 지고,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쳤다. 그리고 그 자리 또 꽃이 피지 않았던가. 시집 『식량주의자』 이후 7년여 만에 펴내는 『여여하였다』 역시 그러하다.
지금 여기 삼봉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산지 어느새 1년, 첫눈이 소복하게 내리고 있다.

2017년 소설(小雪)
삼봉산 여여산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