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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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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계급과 성별, 지위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그리고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한국·베트남 전쟁의 기록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없다. 언론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나 전쟁을 수행하는 남성들만 이야기 했을 뿐, 여성들에 관해 묻지 않았다. 오랫동안 전쟁의 기억을 글로 복원해 온 저자가 여성들이 겪어낸 전쟁의 참상과 상처를 듣고 기록했다. 가부장제와 군사문화가 결합한 성차별 의식이 어떻게 여성을 소외시켰는지 들여다봄으로써, 이 사회가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알게 하고, 일상 폭력에 대항하는 감수성 훈련을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추천의 말: 할머니에게, 전쟁 _이길보라(작가, 영화감독)
: 할머니는 한국 전쟁 당시 피난 생활을 하며 낙동강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대신 다섯 식구의 살림을 책임졌다. 할머니는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할머니의 그 문장을 들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몰라. 전장에 있지 않았잖아.”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화자인 내가 이십 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전쟁과는 동떨어진, 심지어 군대도 가지 않는 ‘어린 여자’라는 것 말이다. 궁금해졌다. 여성의 시각으로 그전쟁을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그렇게 공적 언어가 아닌 사적 언어, 비남성적 시선으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기억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만난 것은 통계와 수치가 아니었다. 기존의 공적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사적 기억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전쟁 서사와 공적 기억에 대항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비로소 전쟁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 역시 찾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의 시선으로 전쟁을 읽는다는 것, 그 한가운데 있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것은 가려져 있는 전쟁의 수많은 얼굴을 마주하고 평화를 논할 수 있는 움직임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성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쟁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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