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을 맞이하여 김영환 장군의 삶을 알리고 장군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영웅임을 알리고자 한다. 비행기를 유난히 좋아한 김영환 장군이 공군이 되어 나라를 빛낸 영웅이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김영환 장군은 군인 가족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이 모두 군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가 군인의 길을 가는걸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장군이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한 달 봉급이 되는 큰 돈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온 아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항공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고,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맛보지도 못한 채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이런 위험한 시기에 김영환 장군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군은 호기심과 상상력,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별력과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침착하고 느긋했으며 멋쟁이였다. 그래서 그가 탄 비행기도 다른 비행기와 달리 화려했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조종사 시신을 찾지 못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김영환 장군은 눈에 확 띄는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형수의 빨간 치마로 ‘빨간 마후라’를 만들 아이디어를 냈다. 그 빨간 마후라가 우리 공군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미처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과 그 이전에 남한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합류해서 유격전을 벌였는데 이들이 빨치산이다. 빨치산들은 주로 지리산 인근에서 활동했다. 빨치산들이 해인사에 숨어들자 사천기지에 있던 김영환 장군은 작전명령을 받는데….
내 꿈은 조종사 /6
The Dream of Yeong-hwan
공군 창설 7인회 /19
Seven Founders of the Korean Air Force
국민 성금으로 마련한 ‘건국기’ /29
First Korean Fighter Planes: Funded by the People of the Nation
6·25 전쟁 /40
The Korean War
빨간 마후라 /58
Red Scarf
사천비행장으로 집결하라 /68
Gather at Sachon Airfield
해인사 그리고 팔만대장경 /77
Haeinsa Temple and the Tripitaka Koreana
공군 작전 명령 제34호 /100
Air Force Operation Order No. 34
김영환의 마지막 비행 /117
Yeong-hwan's Final F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