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문학평론가) : 거칠게 질주하는 박휘의 문장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여성과 약자의 절규를 의미한다. 그녀들은 유모차를 끄는 노인이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환멸로 괴로워하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비혼 여성, 남자의 목소리로 ‘남자’의 민낯을 폭로하는 상처받은 여성, 일상에 촘촘히 스민 계급성과 욕망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폭로하는 ‘아줌마’, 무한한 애정이 아닌 부모의 이기적 욕망에 갇혀있는 무력한 자식들로 변전한다.
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입을 빌려주는 작가의 붓끝은 어둠 속에 있는 존재들을 호명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호흡에 의해 살아난 이 ‘생명’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룬다. 아파트 보일러 연통에서 나온 새가 새로운 주인에게 안기면서 초점 인물이 바뀌고, 화자가 ‘개’로 바뀌는 것은 인간 중심을 탈피한 작가의 사랑의 시선의 소산일 것이다. 어둠을 파헤치는 작가의 필치는 또한 ‘늧, 가린스럽다, 느루’와 같은 망각의 언어에 영혼을 불어넣기도 한다. ‘장터의 스피노자’를 꿈꾸는, 이 민감한 작가가 뿜어내는 정념이 더 멀리, 더 넓게 퍼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