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규 (낮은마음교회 담임목사) : 아픔은 아픔으로써만 치유된다는 것을 저자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픔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아픔은 이동하거나 변화할 뿐 결코 저절로 소멸되거나 증발하지 않는다. 내가 당한 상처를 마음속에 그대로 품고 있으면, 그 아픔은 내 영혼에 그대로 남아 나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 내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면, 그 사람이 나 대신 고통을 당한다. 아픔은 이동하는 것이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아픔을 끌어안고 그 아픔을 느끼기까지 사랑하면, 아픔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는 영적인 신비를 저자의 따뜻하고 진솔한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이 영적인 신비를 믿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교회와 세상을 위해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정갑신 (예수향남교회 담임목사) : 나는 김병년의 글보다 김병년을 추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편이다. C. S. 루이스가 말한 바 ‘갈망하나 이룰 수 없는, 갈망을 멈출 수 없으나 성취에 다가갈 수 없는 고통스런 기쁨, 서러운 즐거움, 희열 가득한 어떤 고통, 그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슬픔으로서의 기쁨’이 책보다 김병년 안에 더 고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단지 따뜻하기만 하지 않고, 삶과 뒤섞이고 삶에 마주서고 삶에서 떨어져보려 몸부림하고, 삶을 부여안고, 안에 담긴 세밀한 결을 정밀하고 다정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이 좋다. 그의 글에서 춘녀와 춘돌이와 막둥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몸짓들이 좋다. 그들의 ‘무례한’ 자유를 속상해하면서도 사랑스러워 죽겠는 마음이 가득한 김병년의 영혼이 좋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고통의 손을 잡고, 그 손을 온 세상 가득한 서러움까지 뻗치는 성실함이 좋다. 그의 글을 통과하면서 안식을 누린다.
강승회 : 오해와 수치를 감수하면서도 자기를 묵묵히 내어주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임을 이 분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 하며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던질 것 같은 질문에 한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로서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효숙 : “얘들아, 아빠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아빠는 절대로, 맹세코 지금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았어. 상상도 안 해봤어. 그런데 엄마가 쓰러졌을 때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 매일이 너무 고단했고, 평생 절망스럽고 슬플 줄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너희를 키우면서, 일상적인 삶과 씨름하면서 아빠의 가슴 깊은 곳 굳게 닫힌 샘이 열리면서 아빠의 시야도 달라진 거야. 그때까지는 늘 크고 거대한 그림만 바라보던 아빠의 시야가 사방팔방으로 열리면서 가까이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고 감동하고 감사하게 되었지. 풍성한 선물이 날마다 아빠에게 주어졌단다. 고마워, 얘들아!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목사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아울러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고통의 삶에서 신비로운 비밀을 길어 올리는 비결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