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드라마 구성과 전개, 플롯 구성의 방법”이 담겨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하 『시학』)이 현대지성 클래식 제35권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던 ‘비극’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시의 본질과 원리를 제시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는 비극, 희극, 서사시, 서정시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플롯은 여러 행위와 사건을 깁고 엮어 통일된 전체로 구성한 것이며, 비극은 플롯을 바탕으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거쳐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미덕의 삶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플라톤은 감정을 깎아내렸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로 표현되는 감정에 인간의 성격과 사상이 나타나므로 미덕 실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카타르시스(정화)를 경험하고, 그러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비극의 고유한 목표라고 누차 강조했다. 비극을 통해 그러한 감정을 경험하면 실제 삶에서도 감정을 조절하여 선한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비극과 서사시가 단순한 유흥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 체계인 윤리학 및 정치학과 닿아 있음을 발견한 그는 이 비극 요소가 삶에서 철학의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인간의 행위라고 보았다. 『시학』은 인간이 살아가며 본능적으로 행하던 것 속에서 진리와 선의 실체를 발견하고,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인 진정한 ‘행복’(εὐδαιμονία, 유다이모니아)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진가를 찾을 수 있다.
첫문장
시는 무엇이고, 갈래는 몇 가지이며, 각 갈래에는 어떠한 특징과 효과가 있는가?
최근작 :<아테나이인의 정치체제> ,<동물발생론> ,<아리스토텔레스 대도덕학> … 총 2651종 (모두보기) 소개 :그리스 북동부 칼키디케 반도 스타게이로스(Stageiros) 출생. 별칭으로 ‘스타게이로스의 사람’으로 불렸다. 마케도니아의 왕 아뮨타스 3세의 시의(侍醫)였던 아버지 니코마코스 덕에 어린 시절 펠라의 궁전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17세가 되던 기원전 367년 아테네로 간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플라톤이 죽는 347년경까지 20년 동안 플라톤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한다.
플라톤이 죽고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미아의 새 원장이 되자 몇몇 동료와 아테네를 떠난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에 의해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위탁받은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 원정을 준비하던 335년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아폴론 신전 경내에 뤼케이온이라는 학원을 설립한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아테네에 반 마케도니아 기운이 감돌기 사작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 칼키스로 갔고, 이듬해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저술들을 주제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논리학적 저작으로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 『토피카』,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등이, 이론철학적 저작으로 『자연학』, 『형이상학』, 『혼에 대하여』 등이, 실천철학적 저술로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대도덕학』 등이 전해진다. 또한 언어학적 철학 저작인 『수사술』과 예술 이론적 저작인 『시학』이 전승되었고, 생물학 관련 작품으로 『동물 탐구』, 『동물의 부분들에 대하여』, 『동물의 운동에 대하여』 등도 전해진다.
최근작 :<매튜헨리주석 08 : 욥기> … 총 218종 (모두보기) 소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우신예찬』(에라스무스)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솝 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공감하는 글쓰기를 위한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통찰을 담은 본격적인 이야기 구성론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즐거움과 여운을 남기는 글과 이야기가 있다. 분명히 내용은 비극이고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닌데, 어느새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확 빠져드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도, 그럴싸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보게 된다.
『시학』은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던 “비극”을 집중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시의 본질과 원리를 제시한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는 비극, 희극, 서사시, 서정시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한 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하게 하던 이야기 구성의 원칙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감하는 글쓰기, 플롯 구성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당시에 널리 읽히던 여러 희곡과 서사시 등을 예로 들며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당시 아테네에는 그리스어로 ‘테크네’(τέχνη)라고 불리는 전문기술과 실용학문이 지식인 사이에 유행했다. 소피스트들은 이 테크네를 대중화했지만, 실용성과 눈앞의 효과에만 집착하여 궤변과 자기모순에 빠질 때가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테크네를 “어느 분야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토대로 그 분야와 관련된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정의하고, 철학, 논리학, 형이상학은 물론 정치학과 법학, 의학과 시학과 수사학도 모두 ‘테크네’에 속한 것으로 보았다. 현대적 개념의 학문과 실용성 통합의 실마리를 이미 2,4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공한 것이다.
『시학』은 이 테크네를 ‘비극’과 연관하여 대중적인 코드를 철저히 분석하여 제시했다. 지금 개념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얻는 즐거움과 유익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왜 저 드라마가 떴는지”, “왜 사람들은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이 소설(이야기)에 열광하는지”를 인류 최초로 체계화한 걸작이다.
성공하고 살아남는 이야기와 서사에 담긴
“비극→정화→즐거움” 코드
『시학』에서는 시의 구성요소 중에서 플롯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플롯은 비극에서 여러 행위와 사건을 깁고 엮어 통일된 전체로 구성한 것이며, 비극은 이 플롯을 바탕으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거쳐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미덕의 삶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시인에게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잘 소개하는 것보다는, 필연성이나 개연성 있는 일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로 표현되는 감정에 성격과 사상이 나타나므로 미덕 실천 과정에서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감정은 즐거움이나 고통을 수반해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데, 비극은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정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여기에서 유명한 카타스시스(정화)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관객은 실제 자기 삶이 아니라 비극적인 주인공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적당한 수준으로 공포와 연민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이렇게 하면 감정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여 인격과 성품이 미덕을 갖추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비극을 통해 그러한 감정을 경험하면 실제 삶에서도 감정을 조절하여 선한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의 주요 역할은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와 사건을 모방해서 비극으로 제시하는 데 있었다.
감정의 정화를 통한 성숙한 인격과 미덕 향상을 위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5권으로 소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은 그리스어 원문을 직접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16쪽에 달하는 친절하고 상세한 역자 해제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책을 집필할 때의 역사적 배경과 기본 개념, 구성 등을 소개하여 더욱 깊고 입체적인 독자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 100여 쪽이 넘는 『시학』 본문에 200개가 넘는 상세한 각주를 달아 연구자가 검토하기에도 손색이 없게끔 완벽한 해설에 도전했다.
시학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제1부(1-5장)는 시 일반을 다루고, 제2부(6-22장)는 비극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제3부(23-26장)는 서사시를 비극과 비교하면서 글을 맺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비극과 서사시가 자신의 철학 체계인 윤리학 및 정치학과 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비극과 서사시를 단순한 유흥거리가 아니라 삶에서 철학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인간의 행위로 본 것이다. 단지 감정의 정화를 통한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인격과 미덕 향상에도 이바지함으로써,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인 진정한 ‘행복’(εὐδαιμονία, 유다이모니아)을 누리는 하나의 길로 제시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감정 변화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여기서 살아가는 데 놀라운 위안과 인사이트를 얻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그렇게 해왔으니까. 이 책은 대중이 찾고 환호하고 잊지 못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는가를 알려준다. 인생에서 비극을 만나더라도 드라마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