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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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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휴먼다큐 사랑] '시간을 달리는 소년 원기', KBS [인간극장] '우리 집에 어린왕자가 산다'에 소개되면서 그 사연이 널리 알려진 소아조로증 환아 원기. 노화 속도가 일반인보가 7~8배 빠른 소아조로증이라는 병은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핵심 소재로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현재 국내에서 소아조로증을 앓는 사람은 원기 한 명뿐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 희귀질환인 만큼 지금은 원인만 밝혀졌을 뿐 마땅한 치료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학보고서에 따르면 열두 살인 원기에게는 길어야 5~7년의 시간만 남아 있다. 100센티미터가 겨우 넘는, 앙상한 팔다리로 구부정하게 걷는, 손발톱조차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원기는 그러나 누구보다 밝고 명랑하다. 이 책은 원기 아빠인 저자가 원기와 그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고통의 기록이자 위로의 이야기다. 춘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원기의 병명을 알게 되었던 때부터 원기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시간들, 그리고 조로증재단이 개발한 임상약에 희망을 걸고 보스턴까지 건너갔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순간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삶의 가혹했던 기억들을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절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담아냈다. 들어가는 말 : 사랑을 말하는 건 쉽다. 사랑으로 사는 일은 어렵다.
빠르게 시간을 건너뛰는 아이 몸에 하루를 공들여 채워주고, 담아내려 한 부모의 기록. 아빠 새끼손가락을 잡고 오늘도 씩씩하게 걷는 원기를 보며 사람의 손이 하는 일 중 가장 좋은 일이 무언지 배운다. 사랑으로 사는 일은 어렵지만 누군가는 그걸 해낸 뒤 조용히 그 의미를 가슴에 품고 또 다른 하루를 만들어낸다. 힘든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이 곁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웃음의 무게. 사람들이 이 책에서 눈물보다 그 미소를 먼저 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책등에 말이 아닌 손을 얹는 마음으로 원기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 작은 키, 작디작은 손, 톡 튀어나온 머리, 호리호리한 몸. 작고 여린 몸이지만 그에 비해 제일 크고 건강한 예쁜 마음을 지닌 원기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본 원기는 내 우려와 달리 상당히 활달하고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해피 바이러스를 가진 아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지녔음에도 꿋꿋하게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부모님까지 챙기는 효심 깊은 아이, 때로는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아이였다. 원기는 희귀병을 앓고 있음에도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아는 듯했다. 삶의 풍파 속에서도 원기는 매순간을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시 써내려갔다. 그렇게 살아가는 원기가 참으로 대단하고 놀라웠다. 이 소년의 삶이 많은 사람의 메마른 마음에 희망과 꿈과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애벌레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 원기의 소중한 추억들이 멀리, 또 높이 훨훨 날아가 보물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유학 중인 아이들을 만나러 미국에 가면 도착하자마자 ‘며칠 뒤면 아이들과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별을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과 일상을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소아조로증을 앓는 원기와 가족은 ‘떠나는 날’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산다. 내가 경험하는 이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크고 아픈 이별을…. 책을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눈물이, 어떤 대목에서는 폭소가 나왔다. 그러다 한 가지 부러운 게 생겼다. 원기 가족이 나누는 대화, 예를 들어 “아빠, 닥쳐!” 같은 대화다. 고통으로 찢어졌다가 ‘진짜 가족’이 되어 나누는 ‘진짜 대화’를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다. : 프로그램 출연 섭외를 위해 원기네를 처음 찾아갔던 날, 나는 시름에 잠겨 있는 부모, 웃음 잃은 아이를 상상했다. 그런데 내가 목격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치는 아이와 가족의 끊이지 않는 웃음이었다.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지? 그날 이후 촬영하는 내내 그 웃음의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기 아버지로부터 뛸 듯이 기쁜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피디님, 원기한테 머리카락이 났어요!” 그다음 날 두피 전체에 새로 돋아나는 머리카락을 찍을 생각에 신이 나 달려갔다. 하지만 원기 두피에서 돋아난 머리카락은 달랑 한 올이었다. 실망한 피디와 달리 원기네 가족은 그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 순간, 웃음의 이유, 행복의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얻은 답과 독자들이 얻은 답이 같지 않을 순 있지만 확실한 건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삶이 전과는 달라질 거란 사실이다. 내 삶이 그랬듯이.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는 아빠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사랑이 필요하다. 용기가 필요하다. 담담하고 소박한 일기로 써나간 원기 아빠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아들이 되어보기도 하고 아빠가 되어보기도 하자.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잡아주고 놓아주며 사랑하는 삶의 여행자 아닌가. 이 땅의 아빠들이 하루하루가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자녀의 숨소리를 소중히 듣고 기억하고 마주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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