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작가에서 매해 간행해 온 ‘오늘의 시’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루어진 시단의 성과와 그 특성을 증언하는 가장 명징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해마다 각별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에도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억에 남았던 좋은 시와 시집을 모아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하 『2020 오늘의 시』)를 내놓는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되었던 시편 가운데 안희연 시인의 「스페어」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스페어’의 열린 존재성, 가능성, 필요성을 흥미롭게 개진하고 있는데, ‘스페어’에 주목할수록 “진짜라는 말”의 허구와 억압이 환기되면서, “단 하나의 무언가”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경계를 넘어서 살아 숨쉬고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었을 것임을 노래한다. “단 하나의 무언가”가 아닌 다양한 가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들을 통해 가치의 다원화와 탈중심을 웅변처럼 내세운 사유를 흥미롭게 개진하였다.
100명의 시인,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 좋은 시 74편(시조 19편 포함)을 선정, 수록하였으며,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시집 가운데 ‘좋은 시집’으로 평가되는 16권의 시집(시조집 2권 포함)들도 선정하여 소개하였다. 그리고 기획위원들의 「2020년 한국 시의 미학」이란 주제의 좌담은 우리 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진 우리 시의 동향을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과 작품집을 함께 검토함으로써, 동시대 한국시의 미학을 제시하는 좌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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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문화일보 2020년 3월 9일자
수상 :2023년 윤동주문학상, 2020년 소월시문학상, 2020년 김달진문학상, 2019년 소월시문학상, 2017년 김삿갓문학상, 2017년 유심작품상
, 2016년 공초문학상, 2004년 편운문학상, 1997년 현대불교문학상,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최근작 :<그래, 네 생각만 할게> ,<행복한 사람>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 … 총 302종 (모두보기) 소개 :
수상 :2023년 공초문학상, 2018년 통영시문학상(청마문학상), 2015년 목월문학상, 2013년 육사시문학상, 2005년 현대불교문학상, 2003년 천상병시문학상, 1996년 소월시문학상, 1976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매일, 시 한 잔> ,<매일, 시 한 잔 : 두 번째> ,<어른을 위한 바우솔 시 그림책 세트 - 전4권> … 총 90종 (모두보기) 소개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다산의 처녀』, 『나는 문이다』, 『응』, 『지금 장미를 따라』, 『작가의 사랑』 등 다수의 시집과 장시집을 비롯해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등의 에세이집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청마문학상, 목월문학상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 상을 수상했...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다산의 처녀』, 『나는 문이다』, 『응』, 『지금 장미를 따라』, 『작가의 사랑』 등 다수의 시집과 장시집을 비롯해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등의 에세이집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청마문학상, 목월문학상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 상을 수상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14권의 시집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수상 :2020년 대산문학상, 2016년 미당문학상, 2015년 전봉건문학상, 2009년 노작문학상 최근작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 총 51종 (모두보기) 소개 :1999년 〈현대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있고, 산문집으로 《에로스와 아우라》, 《천사의 멜랑콜리》, 《사랑하기 좋은 책》 등이 있다.
시인, 평론가, 동료문인 100명이 선정한 시 74편, 시집 16권 수록
‘2020 오늘의 시 수상작’은 작년 최고의 시, 안희연의 「스페어」
도서출판 작가에서 매해 간행해 온 ‘오늘의 시’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루어진 시단의 성과와 그 특성을 증언하는 가장 명징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해마다 각별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에도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억에 남았던 좋은 시와 시집을 모아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하 『2020 오늘의 시』)를 내놓는다.
2020이라는 숫자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퍽 멀기만 했는데 어느새 일상적 국면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2020년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2010년대 한국문학의 현상이랄까 성취랄까 하는 것을 천천히 돌아볼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가령 이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전혀 새로운 경험을 가진 작가와 시인들의 등장과 주류화를 경험한 때이고, 사회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성세와 함께 소수자들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와 형상화 의지가 강하게 대두한 때이다. 이 소수자 담론은 일국 차원의 노동, 성, 종교, 언어, 육체 등에서 갈라지는 범주 외에도 국경을 넘어서는 탈북자, 난민,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 여성 등 다양한 인적 구성을 포괄하였다. 한국문학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범주의 형상적 성취로 성큼 나아간 것이다.
이제 빈번해진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과 행사 등으로 인해 세계화라는 의제는 제 철을 만난 듯하다. 활발한 인적 교류와 함께 작가들의 해외 진출도 늘어나면서 한국문학은 세계무대의 변방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출판시장의 불황과 디지털 혁명에 의한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문학의 수요는 급감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미학적 정예들의 활발한 성취는 한국문학의 눈높이를 훤칠하게 해주었다. 시단에서는 2000년대 ‘미래파’와는 또 다른 의미의 미학적 전위들이 나타났고, 소설에서는 장편 창작이 크게 늘어났고 표절 논쟁도 뜨거웠다. 출판사들의 잇따른 팟캐스트 출범은 작가들을 마이크 앞으로 불러냈고, 비평 현장은 새로운 매체인 유튜브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른바 본격문학이 정체하는 동안 다양한 모습의 장르문학이 강세를 띠기도 했다. 담론적 측면에서는 문학의 정치와 윤리가 표나게 강조되었고, ‘세월호 사건’으로 비롯된 죽음과 기억과 애도의 형식으로서의 문학의 역할이 적극 성찰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해석에서 첨예한 이견이 제출되기도 했고, 제주4․3사건이나 5․18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역사의 분수령에 대해서도 가열한 논쟁과 증언이 잇따랐다. 이때 한국문학은 근대사에서 빚어진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다시 설계하는 쪽으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갔다. 그 점에서 이 시대는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한국문학의 전환기이자 난숙기로서 모자람이 없다.
이러한 시기에 2020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는, 지난 한 해 동안 역작을 남긴 시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한 번 시단의 조감도가 되기에 충분한 선집을 꾸렸다. 여러 모로 우리 시대의 감각과 사유를 정점에서 보여준 수많은 가편들을 수록하였다. 많은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시와 시집은, 완결성과 개성을 아울러 갖춤으로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성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되었던 시편 가운데 안희연 시인의 「스페어」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스페어’의 열린 존재성, 가능성, 필요성을 흥미롭게 개진하고 있는데, ‘스페어’에 주목할수록 “진짜라는 말”의 허구와 억압이 환기되면서, “단 하나의 무언가”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경계를 넘어서 살아 숨쉬고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었을 것임을 노래한다. “단 하나의 무언가”가 아닌 다양한 가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들을 통해 가치의 다원화와 탈중심을 웅변처럼 내세운 사유를 흥미롭게 개진하였다.
좋은 시를 선정하기 위해 『2020 오늘의 시』는 100명의 시인,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 좋은 시 74편(시조 19편 포함)을 선정, 수록하였으며, 작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시집 가운데 ‘좋은 시집’으로 평가되는 16권의 시집(시조집 2권 포함)들도 선정하여 소개하였다. 그리고 기획위원들의 「2020년 한국 시의 미학」이란 주제의 좌담은 우리 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진 우리 시의 동향을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과 작품집을 함께 검토함으로써, 동시대 한국시의 미학을 제시하는 좌담이 될 것이다. 또한 말미에 붙인 안희연 시인 인터뷰는 ‘2020 오늘의 시’ 수상작 안희연 시인의 시 「스페어」에 대한 매혹적인 해석을 선사한다. 양경언 평론가는 “(안희연 시인은) 눈으론 보이지 않는다 해도 감쪽같이 일어나는 마음의 일이 사람을 얼마나 다른 상태로 바꾸어낼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며 “그런 당신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 안희연의 시”가 있으며 “그 ‘남겨진’ 무언가가 오늘의 일부가 되어 내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기도 함을 일러주는 시”라고 평한다.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이는 카(E. H. Carr)다. 이러한 비유적 정의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흐름이나 국면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지난 시간의 그것들이 유력한 참조항이 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2020년대는 2010년대가 남긴 미완의 의제를 반복하고 그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면서 새롭게 펼쳐져갈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시대의 이러한 과제에 대해 유추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수상작
스페어
안희연
진짜라는 말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단 하나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태도 같은 것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 같은 건 없다
식탁 위에는 싹이 난 감자 한 봉지가 놓여 있을 뿐
저 감자는 정확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싹이 아니라 독이지만
저것도 성장은 성장이라고,
초록 앞에선 겸허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싹은 쉽게 도려내지는 것
먹구름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흐린 것은 흐리고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
아직일 수도 결국일 수도 있다
숨겨 놓은 조커일 수도
이미 잊혀진 카드일 수도 있다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내 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가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안희연 시인은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이 있다.
PS: 안희연 시인의 「스페어」 조해진 작가의 「완벽한 생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 오늘의 시, 소설, 영화’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시상식은 오는 5월에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