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서 청소년문학 5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플루토 비밀결사대> 시리즈로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한정기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청소년소설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머리에서 공 굴리고 마음속에서 삭히고 삭혀 쓴 작품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글이 밀려나올 때 썼음에도 불구하고 버리고 다시 쓰기를 세 번이나 한 작품이라고 창작 노트에 밝혔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깡깡이 일을 하며 다섯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엄마와 맏딸이라는 이유로 동생들에게 희생한 정은의 모습은 지금의 청소년과 어른 세대를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로 데려다준다. 청소년소설이지만 모든 세대가 읽고 소통하며 마음속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한편의 추억과도 같은 소설이다.
부산 사투리의 자연스런 입말이 살아 있음은 물론이고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빼어나 작품성이 돋보인다. 등장하는 많은 인물의 개성 있는 캐릭터와 섬세하게 드러나는 감정선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이야기 속으로 저절로 몰입하게 만든다.
한정기 (지은이)의 말
『깡깡이』는 여행에서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이옥수와 유은실 작가가 글로 쓰라고 부추겨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영도의 수리조선소와 깡깡이 일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갔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며, 그 공간과 사람들을 세상에 내 보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고 충동질했다.
내 이야기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용기가 없어 외면하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유은실과 이옥수는 잊어버릴 만하면 전화해서 깡깡이 이야기는 쓰고 있는지, 가끔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는 꼭 내가 써야 된다며 격려하고 자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깡깡이는 내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지나간 한 시절과 사라진 공간을 기록해 남기는 거라야 돼!’
유은실과 이옥수 작가가 한 말이 머리를 지나 내 가슴에 비로소 와 닿은 거였다. 내 이야기를 쓰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지나간 한 시절을 복기하는 것은 작가가 져야 할 책임이구나 싶었다. 내게 주어진 그 책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자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이야기가 조금씩 꿈틀대며 자라기 시작했다. (…)
『깡깡이』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기도 하고 전혀 아닌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다 쓰고 난 뒤 내 속에서 무언가 쑥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게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도 지워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장녀라는 의무감으로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