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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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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김희재의 《탱크》 등 1996년 제정되어 오랜 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아홉 번째 수상작 《멜라닌》을 출간한다.
총 240편의 응모작 중에서 《멜라닌》은 유일하게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으며 최종심에 올랐다. 7인의 심사위원은 신중한 토론 끝에 “이민사의 굉장한 디테일” “매력적인 문장과 세련된 결말” “주인공 소년이 지닌 정감과 매력” 등을 이유로 《멜라닌》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 하승민 작가는 IT와 금융업에 종사하다 2020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매일 8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3000자 쓰기를 과업으로 삼으며 치밀한 자료 조사와 취재를 병행한 끝에 한겨레문학상을 거머쥐었다. 《멜라닌》은 파란 피부로 태어난 한국 베트남 혼혈 소년이 미국 이민을 통해 디아스포라적 상황을 겪는 성장소설이다. 피부색과 인종으로 인해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으로 취급되는 존재가 학교 친구와 선생님, 이웃들에게 일상적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는 과정이 9·11테러, 총기 난사 사건, 한국 대통령 탄핵 등의 역사적 사건들과 촘촘하게 맞물리며 펼쳐진다. 멜라닌 ![]() : 《멜라닌》의 매력은 현실에 대한 핍진성과 ‘블루멜라닌’으로 대표되는 환상성의 조합에 있다. 작가는 한국과 미국의 도시 변두리에서 성장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서 치밀하게 세공하다가도 불현듯 꿈처럼 환상적이고 애틋해지는 장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읽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인물 하나를 오롯이 세워놓는 일, 그런 창조가 《멜라닌》에서는 일어난다. : 이 소설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주인공 재일과 뭐든 ‘함께하는’ 몰입의 경지에 도달한 독서를 즐기게 된다. 책 속 종이와 잉크를 재료로 탄생한 존재와 ‘함께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슬그머니 선물하기. 소설 쓰는 기술이 있다면, 그것만큼 고난이의 기술도 없을 것이다. : 성장기 내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불운은 파란 피부 이주민 소년 주인공이라는 고유한 설정을 넘어 서사의 안팎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핍진하게 포착해낸 차별과 혐오는 이 서사가 가닿을 눈부신 성취를 가리키는 역설적 위치에 있다. :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이미 전 지구적인 시대에, 우리의 자유란 한없이 왜소하고, 새로운 출발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멜라닌》은 이 명백한 불행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인류를 기반으로 그들과 함께해야 할 공동체를 상상하게 한다. 죽고 사라지고 상처받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인류가 되고자 하는 꿈, 《멜라닌》은 이 원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다. : 온갖 차별과 폭력을 통해 혐오의 문화사를 ‘꼬인 시선’ 없이 펼쳐내는 한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대신 모든 곳에 속하지 않는 자유가 주어지는 게 과연 개인에게 충만함을 안기는 일인지를 묻는 이민자 청소년의 마음을 강단 있게 그려낸다. : 《멜라닌》의 인물들은 단일한 어휘로 도식화할 수 없는 모호함과 충만함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재일이 그렇고, 그의 모친인 응우옌 우 녹이 그러하며, 클로이와 셀마가 그렇다. 수치에 무너지지 않는 힘. 이로써 한국 소설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새로이 얻게 되었다. : “기피 대상”이자 “관심과 보호의 표적”인 파란 피부 소년 재일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희박한 희망의 탐색자가 되어 세계를 떠돌기를 선택한다. 《멜라닌》을 통해 한국 소설은 차별과 혐오를 가리키는 인상적인 또 하나의 고유명사를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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