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는 1919년 3월 1일, 한국의 거국적인 독립운동에 협력하고 지원한 유일한 외국인으로서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진정한 한국인’이다. 그는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사랑한 엄격한 스승이자, 따듯한 선의를 베푼 청빈한 선교사이자,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한 촉망받는 학자이자, 정의를 실천한 참된 지식인이었다.
스코필드는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1916년 11월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으로 있던 에비슨(O. R. Avison)이 초청하여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로서 한국에 오게 된다. 스코필드는 한국에 방문한 순간부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 하에 있던 한국인을 동정하고, 또 깊은 마음으로 사랑했다.
1919년 3월 1일, 역사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난 날 스코필드는 한국에서 벌어진 참혹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평화적인 독립운동을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한 학살로 진압한 일제의 만행을 사진에 담아, 일제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며 한국의 실상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일제의 반감을 사 불이익을 받고, 쫓기듯 한국을 떠나야 했다.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사랑한 지식인, 스코필드 교수-정운찬
한국 방문 이전의 생활: 굳은 신념의 촉망받는 수의학자 / 첫 번째 한국행: 세브란스의전 재직 시기 / 두 번째 한국행: 서울대학교 재직 시기 / 자애로운 한국의 교육자 스코필드
캐나다교회의 한국 선교와 스코필드 교수-탁지일
이주민 스코필드 / 기독교인 스코필드 / 선교사 스코필드 / 한국을 사랑한 선교자 스코필드
스코필드 교수의 학문세계-천명선
연구자로서의 첫 걸음 / 세브란스연합의학교 시절: 인플루엔자 연구 / 온타리오 수의과대학 시절 / 다시 한국으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 성실하고 도전적인 연구자 스코필드
세브란스의 독립운동과 스코필드 교수-신규환
세브란스 독립운동의 전개 / 스코필드의 내한과 한국에서의 활동 / 인류애를 추구한 세브란스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