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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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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본다 15권. 1999년 서른여덟의 나이에 도쿄로 유학을 떠났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고운기 교수의 진짜배기 도쿄 이야기.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자주 도쿄를 방문하면서 도쿄와 한국 사이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던 저자이기에 팽팽한 그 긴장감으로 한 권의 책을 완성하였다.
특히나 그는 2008년부터 근 10년 동안 매년 '설국문학기행'의 맨 앞자리에 서서 '설국의 안내자'로 도쿄 곳곳에 생생히 살아 있는 일본문학 속 그 현장을 눈으로 보고 발로 누벼왔다. 눈으로 보이는 코스를 따라 문학의 페이지가 함께 열리는 진귀한 경험 속에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도쿄 이야기이며 지금부터 우리가 알아나갈 도쿄 이야기가 되어줄 것이다. 도쿄를 걸어온 그 걸음걸음을 '산보'라 칭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보폭과 그에 따른 설명은 가벼우나 결코 만만찮은 발자취로 이 과정을 기억하게 되는 건 아마도 고전 중에서도 특히 문학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감추지 않는 그의 겸손한 '태도'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PROLOGUE 재떨이 … 6 : 못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깨달음으로 적당히 포장한 비슷비슷한 소재의 글이 끊임없이 발표된다. 아름다운 기억도 있겠지만, 대체로 기억은 그렇게 쉽게 미화될 성질의 것도, 잠언화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기억의 시화詩化에는 오늘의 불안한 현실을 살고 있는, 매순간 떠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초상이 담겨야 한다. 예술가에게 기억은 세상과의 불화와 화해 사이에 떠도는 유빙遊氷이며, 따라서 그것의 시화는 깨달음으로 귀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으로 오늘의 현실에 무섭도록 치열하게 각성의 신호로 기능해야 한다.
고운기 시인은, 그의 어떤 시에서, 남은 자나 떠난 자나 매순간 아득하고 불안하고 지쳐 있는 상태에, 비록 산화散華한다 해도 그 흔적조차 애처롭거나 아름답지 않다고 노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은 포기와 좌절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무엇으로 옮아가게 하는 아름다운 무력한 힘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산문 또한 비유와 상징, 작법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기보다 그저 읽고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고운기 시인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8년 1월 19일자 '문학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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