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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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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대표하는 작가 우밍이의 첫 한국어판 소설집으로 상가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생명력 가득한 80년대 타이베이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책에는 타이베이의 랜드마크로 불리다 1992년 사라진 상가 건물 ‘중화상창’을 배경으로 한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육교 위의 마술사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는 사라진 순간을 소환하는 작품이다. 우밍이의 펜 끝에서 탄생한, 쓸쓸하고 신비하고 따뜻한 타이베이 이야기는 독자들을 그 비바람 불던 시대로 데려다 놓는다. 그 시대의 타이베이는 불을 환히 밝히고 있는 고독한 배였다. 빛은 찬란하지만 그 속에 외로움이 투영되어 있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마법 같은 책이다. 모든 세대가 폭력적이고 각박한 언어에 길들여져 있는 이 시대에, 믿음 대신 미움에 더 익숙하고 시대를 향한 멸시의 눈빛이 자랑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오래전 중화상창에 그 시대의 질감과 온도를 그대로 재현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한 소년이 있었음이 무척 다행스럽다. 우리는 그의 선량하고 너그러운 눈을 통해 그 시대와 그 시절의 생활상을 회고하고 타인과 우리 자신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처럼 진실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만난 건 무척 오랜만이다. 타이베이의 지도에서 사라진 지 20년이 된 중화상창은 ‘육교’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공간이었다. 중화루와 철로 주변에 길게 이어져 있던 상가 여덟 동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은 아마도 중화상창과 타이베이 최대 번화가였던 시먼딩에 향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독자들은 이 아홉 편의 성장 스토리 속 주인공과 함께 집을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30여 년 동안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였던 ‘중화상창’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이유는 그곳이 현대화 과정에서 타이베이의 사춘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밍이는 몇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30년의 기억을 섬세한 필치로 소환했을 뿐만 아니라, 소시민이 겪었던 시대와 사회의 변천을 회상하고 그들의 애환을 이야기했다. : 우밍이의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렇게 입체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소설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진솔한 생활을 통해 생생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도권 교육만 받고 자란 작가라면 결코 이런 소설을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평면적인 문단에서 홀로 우뚝 선 훌륭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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