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꼬리 1.
늦가을 풍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시선 옮기기
하나를 본다. 전후좌우로 시선을 조금씩 옮기며 그 하나 곁에 어떤 녀석들이 꿈틀대는지 살핀다.
눈에 걸려든 모든 것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낙엽의 추락 — 안개의 방해 — 노을의 승리 — 바람의 개입 — 가을비의 기도 — 구름의 증언 — 태양의 후회 —연기의 연기 — 벌레의 변신 — 달팽이의 관심사 — 뉴턴의 사과 — 연아의 충고 — 뿌리의 힘
꼬리 2.
인간이 발명한 위대한 혹은 위험한 녀석들
— 시선 비틀기
사물 하나에 능력 하나만 심어져 있는 건 아니다. 시선을 비틀면 처음 눈에 보이는 능력과 모순된 또 다른 능력이 보인다.
둘을 나란히 놓아본다.
시계의 초능력 — 소주의 초능력 — 화장지의 핵심 — 연필깎이의 일생 — 손톱깎이의 일생 — 양말과 모자 — 안경의 자기반성 — 안경의 변호인 — 보다 — 칼의 발견 — 총의 발끈 — 활의 늙음 — 자동차의 한계 — 비행기의 착륙 — 이런 발명품이 있을까 — 가족의 동의어
꼬리 3.
자신을 백설공주로 착각한 토끼가 있었다는데
— 파고들기
목에 깁스를 한다. 하나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그 하나 속으로 조금씩 깊숙이 파고든다.
줄줄이 엉킨 이야기들을 고구마 뽑듯 차례로 뽑아낸다.
토끼의 첫 데이트 — 쿵 — 눈 내리는 소리 —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 찾아볼까, 내 매력 — 무대와 상대 — 풀리지 않는 궁금증 — 패배 후유증 — 승리 후유증 — 금토끼 은토끼 — 관전평 — 경주 다음은 경주 — 바보 첨성대 — 존경, 포석정 — 하지만 포석정 — 다보탑 유감 — 두 번째 데이트
꼬리 4.
그땐 그랬다지만 지금도 꼭 그럴까
— 도둑질하기
격언, 명언, 속담 뭐든 닥치는 대로 훔쳐온다. 훔쳐와 비틀고 흔들고 뒤집는다. 패러디하고 재해석한다.
경찰을 두려워하면 손에 쥘 수 있는 건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 친구를 알려면 사흘만 함께 여행하라 —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펜은 칼보다 강하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 강물도 쓰면 준다 — 먼저 핀 꽃이 먼저 진다 — 웃으면 복이 와요 —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꼬리 5.
‘잡’이라는 글자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방법
— 국어사전 펼치기
국어사전은 꼬리 물기 교과서. 단어 하나를 찍은 다음 위아래 단어를 노려본다. 단어 꼬리만 살짝살짝 바꾸면
뱀보다 길게 생각을 연장할 수 있다.
잡 — 잡념 — 잡곡 — 잡음 — 잡상인 — 잡담 — 잡다 — 잡범 — 잡식 — 잡채 — 잡티 — 잡문 — 잡스 — 잡기 — 잡탕
꼬리 6.
한 사람에겐 몇 가지 이야기가 살고 있을까
— 잘라 보기
하나를 하나로 보지 않는다. 토막토막 잘라 열을 본다. 그러니까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면
열 가지 이야기가 이미 찾아온 것이다. 먼저 우리 몸부터.
발 — 등 — 귀 — 눈 — 손 — 입 — 목 — 코 — 뺨 — 뼈 — 뇌 — 혀 — 이 — 맘 — 위 — 몸
꼬리 7.
도시의 오후를 풍경화 몇 장으로 그린다면
— 그림 그리기
글자로 그림을 그린다. 귀에 대고 말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려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다.
받들어 휴대폰 — 건널목 현수막 — 할머니의 전단지 — 엄마의 유모차 — 노점상의 꿈 — 축구공의 잘못 — 낮술의 위력 — 신호등의 색깔 — 아파트의 표정 — 놀이터엔 노인 — 하늘을 보는 사람 — 카페의 자유 — 잠긴 화장실 앞에서 — 미세먼지가 아니라
꼬리 8.
참새 이야기도 듣고 매미 이야기도 듣고
— 입장 들어보기
동물도 말을 한다. 짹짹 말을 하고 맴맴 말을 한다. 그런 소리 하나하나에 자기 입장이 있다.
일리 있는지 없는지 판단은 나중에. 무조건 듣는다.
참새의 호소 — 독수리의 굴욕 — 갈매기의 진심 — 기린의 배려 — 사슴의 항의 — 들개의 항복 — 개의 변론 — 소의 반론 — 쥐의 참견 — 고양이의 등장 — 하마의 하마 — 코끼리의 소신 — 원숭이의 슬픔 — 앵무새의 죄 — 매미의 큰일 — 귀뚜라미의 질문 — 호랑이의 포효 — 사자의 위엄 — 바람 가라사대
꼬리 9.
커피에게 마이크를, 가위에게도 마이크를
—가까이에서 찾기
생각보다 많은 녀석들이 지금 내 손이 닿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 멀리서 생각을 찾지 말고 손을 뻗어 그들을 만난다.
그들 이야기를 듣는다.
커피, 걱정하다 — 설탕, 혼자 놀다 — PC, 한가하다 — 옷걸이, 의자를 보다 — 손수건, 조언하다 — 키보드, 한숨 쉬다 — 오타의 순기능 — 가위, 반론하다 — 연필, 고요하다 — 지우개, 으쓱하다 — 도자기, 실패하다 — 젓가락, 찾다 — 만년필, 반격하다
꼬리 10.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 글자는, 왜
—질문하기
엉뚱한 질문, 괴팍한 질문,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질문,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일수록 좋다.
물음표를 자꾸 던져야 느낌표를 건질 수 있다.
포유동물 고래가 왜 바다에서 살까 — 멸치는 왜 몸집이 작을까 — 고래와 멸치에게 공통점이 있을까 — 슬픈 질문 하나 하고 지나갈게 — 까치는 정말 좋은 새일까 — 누구의 유언일까 — 도마뱀은 왜 멸종하지 않았을까 — 바퀴벌레에게도 미덕이 있을까 — 삼각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고슴도치는 왜 고슴도치일까 — 새는 왜 하늘을 날까 — 우리가 생선회 맛을 알까
꼬리 11.
연필 내려놓고 뚜벅뚜벅 거리로 나가면
—발걸음 옮기기
앉아서는 잡히지 않는 생각, 발이 잡아준다. 책상을 떠나 거리로 나간다. 발이 데려다주는 모든 곳 이야기를 듣는다. 발로 듣고 발로 생각하고 발로 쓴다.
편의점이 보였어 — 세탁소도 보였어 — 은행도 보였어 —로또 판매점도 보였어 — 당구장도 보였어 — 꽃집도 보였어 — 밥집도 보였어 — 빵집도 보였어 — 앗, 반찬가게 — 버스정류장도 보였어 — 화장실도 보였어 — 택배 오토바이도 보였어 — 육교도 보였어 — 동냥그릇도 보였어 — 서점은 보이지 않았어
꼬리 12.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온도 높이기
생각에도 온도가 있다. 사랑 긍정 희망 위로 감사 믿음 배려 같은 성분 위에 앉아 생각을 하면 글 온도가 올라간다. 읽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고맙습니다 연습 — 박카스 한 병, 고맙습니다 — 형광등, 고맙습니다 — 천장, 고맙습니다 — 종이, 고맙습니다 — 종이컵, 고맙습니다 — 어둠, 고맙습니다 — 국어사전 마지막 페이지, 고맙습니다 — 꽃님, 고맙습니다 — 나, 고맙습니다 — 가로등의 준비 — 분수의 기다림 — 자전거의 견딤 — 도를 아십니까 — 담벼락 낙서 1 — 담벼락 낙서 2 — 담벼락 낙서 3
안녕